[익명비평] 展

[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익명으로 누군가를 비평하고 판단하는 일은 과거에서 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익히 잘 알려져 있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우화처럼 통치자의 몰염치와 대중들의 비웃음이 동시에 작동할때, 대부분의 익명의 비평가는 침묵하고 주저하기 마련이다. 때마다 묵힌 침묵 속 고요함으로 일관된 익명의 시선을 과감히 밖으로 끄집어내어 대중과 공감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다. 전시 ‘익명 비평’은 이제까지 획일화된 의제에 다양하고 성찰적인 속내를 대중에게 과감히 드러내 보고자 기획됐다.

전시는 서울문화재단 삼일로창고극장이 주관· 주최하고 익명의 비평가 7인이 참석해 오는 1월 24일(목)까지 삼일로창고극장 갤러리에서 전시한다.

또한 전시는 기존의 연극 비평에 대한 관심 부족과 기명(記名) 담론이 주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기획됐다. 특정 연극의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갖거나 젊은 비평집단 팀이 책을 발간하는 등 최근 연극분야에서 생겨나고 있는, 비평에 대한 젊고 다양한 관점의 연장선상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일곱 명의 익명 비평가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기존 연극계를 바라본다. 각각의 비평 내용은 ▲‘서울 및 경기지역 17개 공공 문화예술기관 관리직 인사 성비 및 임명 횟수’를 통해 보여주는 공연예술계에서 소수인 여성 리더 현황 ▲특정 매체를 분석해 시각적으로 동시대 연극비평을 되비추는 관성적 비평 언어 수집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가장 보통의 문제를 담은 편지 ▲온라인 매체에 실린 글을 인용해 코멘트를 달아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글 ▲동시대 연극계로부터 거리를 두고 실제 무대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하는 글 ▲관행· 기금·선한 동료의 악함 등 연극계 여러 현상을 마피아 게임에 빗대 지적하는 글 ▲포스트드라마 연극에 대한 심도 있는 비판과 분석을 담은 주제비평 등으로 다양하다.

관람은 1층에서 1.5층으로 이어지는 동선에 따라서 특색 있게 시각적으로 재해석된 비평문을 마주하게 된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조명에 둘러싸여 바닥에 빼곡히 들어찬 글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투명한 판에 인쇄되어 겹쳐보아야 완성되는 글,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려 듣는 편지, 5미터의 투명한 필름을 종이로 삼아 인쇄된 글, 오래된 벽보처럼 붙은 비평 등이 이어진다. 관람객은 전시 공간에서 문서의 형식이 아닌 시각적 ·청각적으로 구현된 텍스트를 접하게 된다. 전시장 출구에서는 인쇄된 일곱 개의 비평문 전문을 원하는 대로 모아서 가져갈 수 있으며, 전시를 관람하고 떠오른 생각을 작성할 수도 있다. 연극인이 참여해 전시된 비평문을 메타비평하는 부대 프로그램도 개최될 예정이다.

전시 관계자는 “상호 간에 이뤄지는 비평문화는커녕 존재에 대한 인정문화도 없는 현실에서 ‘익명비평’전이 누군가의 말문과 글문이 트이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익명의 폭로는 유리창을 깨는 것이기도 하지만, 잔잔한 호숫가에 조약돌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동조자와 자신의 진정성을 돌아보는 일일 수도있다. 또한 익명성은 나의 ‘이름’을 걸고 해야 했던 업무들, 지켜야 했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게 한다. 늘 마주쳤지만 말하지 않았던 불편함에 대해 정교하게 서술하거나 원론적이어서 굳이 공개적으로는 하지 않았던 글쓰기를 할 수도 있다. 이름을 걸고 하는 말에 실리는 힘이 있다면 얼굴 없는 손은 비밀을, 비극을, 비참한 상황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한다. 이 때의 ‘비평’은 급진적이거나 긴급할 수 있고, 동시에 기초적이거나 전면적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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