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드디어 ‘링’에 등판했다. 여의도 정치권에선 황 전 총리의 당권 도전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분위기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보수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며 몸값을 한껏 끌어올린 황 전 총리다. 친박과 비박, 각 진영 당권주자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당장 정우택·김진태 의원 등 친박 당권주자로 꼽히는 인사들은 어떤 식으로든 교통정리를 할 수밖에 없게 됐다. 교통정리를 한다면 명분상으로도, 확률상으로도 보수 민심에 가장 근접해 있는 황 전 총리가 구심점이 돼야 당권 탈환에 유리해 보인다. 문제는 ‘맷집’이다. 황 전 총리는 정치 신인이다. 유력 대권주자이자 현실 정치에 뛰어든 정치 신인 황교안에 대한 여의도 정치권의 살벌한 검증 공세를 견뎌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 세력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게 보수의 맹주 자리를 허락했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정치 신인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며 중도하차했다. 황 전 총리가 반기문 시즌2가 되느냐, 황교안 시즌1이 되느냐는 결국 그의 ‘각오’와 ‘의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 “黃 당권 잡으면 보수대통합 빨간불? 주객전도·적반하장… 번지수 한참 잘못 짚었다”
- 황교안 움직이자… 與 ‘적폐 프레임’ 씌우기 시동

황교안 전 총리가 지난 15일 자유한국당에 공식 입당했다. 이날 황 전 총리의 기자회견에선 그의 정치적 내공이 엿보였다. 계파 논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사면·복권, 보수대통합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송곳 질문에 노련하게 답변했다.

정치 신인 답지 않은 ‘내공’
제2의 이회창 ‘호평’

먼저, ‘2월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 “입당 첫날이다. 한국당원, 국회의원, 당협위원장님들 말씀, 국민들께서 바라는 점들을 듣고 그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결정하겠다”고 모범답안을 냈다.

‘박근혜 시즌2가 될 것’이라는 지적에도 “저는 계파를 떠난 바른 정치에 함께하기 위해서 입당했다. 계파와 관련된 말을 하거나 그런 입장에 서지는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범이란 의혹이 있는데 대국민 사과 없이 정치를 하는 게 옳은가’라는 질문에는 “지난 정부에서 마지막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 국민들에게 심려 가지게 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다만 그로 인해 함께 일한 모든 공무원이 적폐란 이름으로 몰아가는 것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선 잠룡으로서 범보수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친박 프레임이란 단점이 있다’는 지적에는 “국민 지지에 대해 감사히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점 때문에 보수우파의 후보로 지지하는지 면밀히 잘 살펴서 국민의 기대에 어긋남 없도록 하겠다. 국민 속으로 들어가 말을 많이 듣는 게 답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기자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끈질기게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물고 늘어졌다. ‘박 전 대통령 면회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냐’고 묻자 그는 “신청이나 거절이나 그런 단어가 적절치 않다”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절히 해 왔다”고 피해 갔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질문에 감사하다”면서도 “보수와 진보를 떠나 자유우파에 주력하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통합이다”고 핵심을 피해갔다.

이처럼 그가 정치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을 보이자 정치권 역시 황 전 총리가 이회창 전 총리와 닮았다고 호평했다. 이 전 총리 는 대법관 시절의 ‘대쪽’ 이미지로 김영삼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고, 신한국당에 입당해 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 선대위 의장으로 선거를 지휘했다.

이후 여론조사 1위 지지를 바탕으로 이듬해 신한국당 총재로 당권을 장악하고 대선후보까지 파죽지세를 달렸다. 그런 점에서 같은 법조인-총리 출신인 이회창 전 총리는 그의 롤모델일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 황 전 총리가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날 황 전 총리의 “한국당원, 국회의원, 당협위원장님들 말씀, 국민들께서 바라는 점들을 듣고 그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결정하겠다”는 발언은 ‘정치인 사전’ 번역기를 돌리면 “지금 말할 수는 없지만, 조만간 당원과 국민의 의견을 두루 듣고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겠다”는 뜻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다만 그의 당권 가도가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친박계는 현실정치 경험이 없는 정치신인에 불과한 황 전 총리에게 공천권이 달린 당권주자 자리를 쉽사리 양보할리 없어 보인다.

친박 당권주자로 꼽히는 정우택 의원은 지난 15일 YTN ‘더인터뷰’에 출연해 “이번 전당대회 성격은 대선주자를 뽑는 것이 아니고 총선 승리를 가져오는 당대표를 뽑는 것”이라고 했다.

친박 핵심으로 지목되는 홍문종 의원의 발언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홍 의원은 지난 14일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황 전 총리를 겨냥해 노선을 명확히 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사실 이분이 우리 편(친박)인가 저기 편(비박)인가 이렇게 많은 분들이 고민을 하고 있다”며 “사실 당대표 선거라는 게 계파싸움을 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어느 쪽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이는 황 전 총리에게 어떤 세력을 등에 업고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인지를 분명히 하라는 주문임과 동시에 친박계가 황 전 총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지 않음을 드러낸 대목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가장 큰 목소리를 냈던 김진태 의원조차 16일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입당은 환영하지만 당대표 출마에 앞서 검증부터 거쳐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黃 입당에 요동치는 당권 구도,
친박 교통정리 불가피

하지만 황 전 총리의 입당이 그 자체만으로 전대 출마를 부정해 왔던 유력인사들까지 참전시키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면서 친박계의 교통정리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상황은 황 전 총리에게 회심의 미소를 짓게 하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비박계 대표로, 홍준표 전 대표가 친홍계 대표 선수로 등판한다고 가정했을 때 친박계가 황교안 전 총리, 정우택·김진태 의원 등이 각자도생을 택하는 것은 당권을 고이 헌납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1~2위를 다투는 황 전 총리로의 교통정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민심은 곧 천심’이다”라며 “당내 나아가 여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걸고넘어지며 황 전 총리에게 집중포화를 가한다 하더라도 여론조사에서 독주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을 받아낼 ‘절대 방패’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당권을 잡을 경우 바른정당 출신 바른미래당 의원들의 한국당 복귀에 빨간불이 켜질 것을 우려한다. 하지만 이 역시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었다는 게 보수 세력의 주장이다.

여론조사 기관 알앤써치가 아시아투데이 의뢰로 정례 여론조사 결과 황 전 총리는 전통적인 보수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에서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는 28.1%를 기록,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조사는 19세 이상 전국 성인 남녀 1045명을 대상으로 지난 5~6일 이틀간 실시됐다.

조사 방법은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무선(100%) 전화 자동응답(RDD) 방식으로 이뤄졌다. 응답률은 7.2%이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아시아투데이 홈페이지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TK 맹주’ 거듭난 黃,
어떤 비판·질책 있어도 감당할 몫

태극기집회는 ‘보수의 심장’ TK의 민심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태극기 세력은 지난 탄핵 정국에서 ‘탄핵 7적(김무성·유승민·김성태·권성동·정진석·하태경·이혜훈)’이 한 행동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TK는 이들의 뼈를 깎는 반성과 사과 없이는 보수대통합이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탄핵 7적’에 가운데서도 ‘탄핵 4적(김무성·유승민·김성태·권성동)’의 사과는 받지 않겠다며 정계은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TK의 맹주’로 거듭난 황 전 총리가 한국당의 대표가 됐다고 보수대통합에 대한 우려를 내비치는 것은 주객전도(主客顚倒),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게 한국당의 ‘최대 주주’ TK의 주장이다.

다만 보수 세력은 황 전 총리에게 한 가지 우려가 담긴 질문을 던진다. “깨질 각오가 돼 있나”라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 세력은 반기문 전 유엔총장에게 제때 밥상을 차려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러지는 대선이었다. 물론 반 전 총장 입장에서 그 밥상이 달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밥상이 자신의 생각보다도 더 썼던 것일까. 반 전 사무총장은 보수 세력이 안간힘을 써서 차려 준 밥상을 제 발로 걷어찼다. 그는 8년간의 유엔 사무총장직 수행과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정치에 도전했지만, ‘정치 신인 반기문’은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시작된 실수와 견제, 흔들기를 견디지 못하고 정치 입문 20일 만에 스스로 포기했다.

정치 경험이나 선출직 경력이 전무한 황 전 총리 또한 지금은 여론조사 1위이지만 ‘꽃가마’만 타고 온 관료 출신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기껏해야 무주공산(無主空山)인 친박의 ‘얼굴 마담’으로서 ‘반기문 시즌2’에 머물 가능성도 있다.

결국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은 황 전 총리의 각오와 의지다. 이미 유력 대권주자이자 현실 정치에 뛰어든 정치 신인 황교안에 대한 여의도 정치권의 검증 공세는 시작됐다. 당장 친박계가 비록 황 전 총리가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린다고는 하지만 쉽사리 물러날 리는 없다. 정치권은 친박계가 황 전 총리로의 교통정리보다 그들의 주특기라 할 수 있는 회유와 압박을 통해 양보를 얻어낼 공산이 크다고 분석한다.

설상가상으로 나경원 원내대표는 새해 첫 연찬회 모두발언에서 ‘친황계’까지 언급했다. 여권은 두말할 것도 없다. 황 전 총리의 ‘정체성’을 싸고 공세 모드로 전환할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전대가 가까워질수록 이 같은 당 안팎의 견제와 비판은 심화될 것이 자명하다. 이로 인해 현실 정치를 처음 접해본 황 전 총리가 지난 대선에서 중도 사퇴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같은 노선을 걸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초 대권 직행 가능성을 점쳤다. 당권 도전에 나서 상처를 입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라면서 “그럼에도 그가 전격 한국당에 입당하며 사실상 당권 도전을 시사했다. 전대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고 맷집을 키워 대권으로 가겠다는 공산이다. 깨질 각오가 돼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황 전 총리는 16일 “새롭게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 어떠한 비판과 질책도 당연히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의지를 다졌다. 황 전 총리의 각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