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경영, 알고보면 檢 수사대비용?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대기업들이 앞다퉈 준법감시(컴플라이언스 compliance)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일부 기업은 컴플라이언스위원회를 신설하고 법조인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영입 대상자 역할론에 대해 갑론을박이다. 단순히 내부 단속이 아닌 외부 단속이라는 주장이다. 갈수록 기업 활동에 대한 사법 판단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법률 리스크가 발생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예방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총수 3·4세들의 경영권 승계 등에 대비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법관 출신 등 거물급 법조인 영입 앞다퉈 진행
  기업들 "투명경영 차원" 주장…못 믿겠다 반응도

재계와 검찰의 악연은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일부 굴지 대기업 총수들은 여전히 검찰 문턱을 넘나들고 있으며 이에 따른 경영악화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코오롱한진부영타이어뱅크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들은 여전히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일부기업에 대해서는 총수를 직접 겨냥한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중이다. 또 올 초부터 시행된 집단소송제와 특허·통상분쟁 등도 줄잇고 있다.

컴플라이언스위원장 면모를 들여다보면

이런 분위기 탓인지 기업들의 최근 인사에서는 공통점이 포착되고 있다. 대법관 출신 등 거물급 법조인 영입을 통한 '컴플라이언스위원회'를 신설·운영 중이다.

재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지난해 4월 출범한 ‘준법위원회’의 명칭을 최근 ‘컴플라이언스위원회’로 변경했다.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을 위원장으로 해 한진그룹 전체의 준법경영을 담당한다.

목 위원장은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를 졸업하고 1978년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 법대와 미국 하버드 로스쿨에서 석사, 연세대 법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 사법시험 19회 합격, 서울지법 부장판사, 대구고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처장, 헌법재판관 등을 역임하며 29년 동안 현직 법관으로 근무했다.

한진그룹의 컴플라이언스위원회는 계열사별 준법 조직 기능 점검, 상법 공정거래법 노동법 관련 감사, 위법사항 사전 점검 및 개선안 마련 등의 업무를 맡는다. 한진그룹이 최근 정치권과 사모펀드 등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변화의 해법을 찾겠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롯데, 한화, 태광 등 다른 대기업들도 명망 있는 법조인을 컴플라이언스위원회 책임자로 선임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민형기 롯데그룹 컴플라이언스위원장은 헌법재판관 출신이다. 그는 인천지법원장으로 재직중이던 2006년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헌법재판관이 됐으며 2012년까지는 근무했다. 중도성향의 '소신파' 법관으로 박근혜 정부 초기 목영준, 이동흡 전 재판관과 함께 한때 헌법재판소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롯데는 이태섭 전 부장판사도 컴플라이언스위원회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롯데는 이와 함께 전 임직원에게 반부패 서약서에 서명하도록 했다. 컴플라이언스 규정을 전사적으로 도입해 전 계열사에 준법경영 헌장, 반부패 준법규정을 도입한 데 따른 것이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이홍훈 전 대법관을 컴플라이언스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외부 위원으로 이정구 전 성공회대 총장, 조홍식 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등도 함께 선임됐다. 나아가 한화그룹 각 계열사 컴플라이언스 조직을 재정비해 전담직원 56명, 겸직직원 62명 등 118명의 인원을 갖춰 명실상부한 조직으로 꾸렸다.

태광그룹은 지난해 12월 임수빈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를 정도경영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정도경영위원회는 9일 신입사원 대상 강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임 위원장은 “오너 부재의 비상상황 속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경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한 관계자들은 "법조계 인사는 전문적인 법률지식과 특유의 통찰력 덕분에 기업 내에서 냉정한 시각으로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향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투명 경영방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경쟁시대에 있어서 기업은 담합이나 비리 등으로 인한 이미지 훼손은 물론 천문학적 배상의 위험에 늘 노출돼 있다”며 “이런 점에서 평소 지속적인 컴플라이언스 추진은 미래 기업경쟁력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이들의 순기능(법조 지식)보다 역기능(검찰 수사 대비)이 우선시되는 것은 그릇된 재계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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