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뿐만 아니다…빗발치는 체육계 미투
‘쇼트트랙’뿐만 아니다…빗발치는 체육계 미투
  • 강민정 기자
  • 입력 2019-01-18 18:39
  • 승인 2019.01.18 20:04
  • 호수 1290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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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구조에서 빚어진 악습…‘이번엔’ 대안 마련되나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이 지난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성가족부 주관 체육분야 성폭력 등 근절 대책 향후 추진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이 지난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성가족부 주관 체육분야 성폭력 등 근절 대책 향후 추진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심석희(22) 선수는 지난 8일 조재범(38) 전 쇼트트랙 코치로부터 폭행과 함께 17세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유도, 정구 등 다양한 체육 분야에서도 피해 사실이 줄지어 나타나 체육 분야 전반으로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형국이다.

 


신유용 전 유도선수 “코치로부터 수년간 성폭행” 폭로
여가부·문체부·교육부 ‘체육 분야 성폭력 근절’ 한목소리 

 

심석희(22) 쇼트트랙 선수의 체육 분야 미투 이후 곳곳에서 그동안 자행돼 온 악습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한겨레신문은 지난 14일 신유용 전 유도선수가 영신고 재학 중이던 2011년 여름부터 졸업 이후인 2015년까지 유도부 A 전 코치로부터 운동 실력이 부진하다며 수차례 폭행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약 20차례의 성폭력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6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여성 국회의원 일동 및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왜 체육계 성폭력은 반복되는가?' 조재범 성폭력 사태 근본 대책 마련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뉴시스]
지난 16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여성 국회의원 일동 및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왜 체육계 성폭력은 반복되는가?' 조재범 성폭력 사태 근본 대책 마련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뉴시스]

 

쇼트트랙 이어 유도·정구까지
체육계 미투 일파만파

 

신 전 선수에 따르면 A코치가 숙소 청소를 맡은 그를 불러 성폭행을 저지른 뒤 이 같은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취지의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이 밖에도 A 전 코치는 신 전 선수에게 임신 여부를 알아보고자 산부인과 진료를 강요했으며, 지난해 “아내가 의심한다”며 50만 원을 주면서 성관계 사실을 부인할 것을 회유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A 전 코치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성폭행한 적이 없으며 (신 전 선수와) 연인 관계였다”는 입장을 내놨다.

신 전 선수는 지난해 3월 A 전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그는 지난해 11월 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현재 사건은 수사 촉탁으로 인해 시한부 기소중지가 이뤄졌으며, 이후 서울중앙지금에서 피의자 관련 수사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 전 선수의 폭로가 보도된 지난 14일 대한유도회는 “해당 사건은 신 전 선수가 지난해 말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유도회도 당시 이 사건을 인지했다”며 “피해자와 피의자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유도회는

A 전 코치의 범죄사실 여부를 떠나 지도자가 미성년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유도회는 이사회를 통해 A 전 코치에 대한 징계 여부를 논한다는 방침이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정구계에서도 등장했다. 지난 16일 MBN 보도에 따르면 고등학교 정구부 선수였던 B씨는 새로 부임한 C코치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B씨는 “(C코치가) 밤에 술을 마시고 숙소에서 자는 선수를 불러내 쓰레기 소각장 등에서 나를 눕히고 성폭행했다”며 “성폭행은 2년 가까이 이어졌지만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체육 분야 미투가 공론화되자 용기를 내 가해자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가해자는 사과와 함께 합의를 요구한 상황이다. 현재 C코치는 언론과의 접촉을 거부하며 어떠한 의견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은폐·축소 ‘형사처벌’
2차 피해 ‘상향 조정’

 

체육 분야 미투 운동이 잇따르자 정부 차원의 근절 대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체육 분야에서 이 같은 악습이 오랫동안 있어온 만큼 현 시점에서는 확실한 대안이 요구된다는 의견이 대두된다.

젊은빙상인연대,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100인의여성체육인,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8개 체육·시민단체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반복적으로 오랜 시간 학습된 침묵의 카르텔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면서 “체육계 전반의 수직적인 구조가 (폭력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체육 분야에서 지도자는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피해자가 가해자의 요구를 거부하기란 어렵다. 또한 체육 분야는 외부와 차단된 합숙 환경 등의 특성으로 인해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해도 은폐되기 쉽다는 맹점을 지니고 있다.

체육 분야 성폭력의 재발을 방지하고 근절 대책을 세우기 위해 여성가족부(여가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교육부 등 관련 부처가 협의에 나섰다.

여가부는 지난 17일 체육 분야 (성)폭력 등 인권침해 근절 대책 향후 추진 방향을 발표하면서  여가부, 문체부, 교육부 등 3개 부처는 차관과 담당국장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구성·운영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여가부는 성폭력·성희롱 근절을 위한 범정부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여가부 이숙진 차관은 “협의체는 기한을 정하지 않고 운영하며 피해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부분에 특별한 관심을 갖겠다”고 피력했다.

여가부는 관계부처와 더불어 오는 25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향후 대책 추진 방향을 논하고, 2월까지 전문가 간담회와 현장 의견 수렴을 통해 과제를 발굴한다. 이들은 2월 중으로 범정부 차원 체육 분야 (성)폭력 등 인권침해 근절 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또한 3월까지 체육계 1차 전수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해당 조사를 통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까지 포괄해 전반적인 성폭력 및 인권침해에 관한 사항을 살펴볼 예정이다. 또 조사 대상으로 경기단체에 미등록된 초중고 학생 선수 6만3000여 명까지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밖에도 체육단체, 협회, 구단 등의 사용자나 종사자가 성폭력 사건을 은폐·축소할 경우 최대 징역형까지 형사처벌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을 적극적으로 개진한다. 

현재 은폐·축소 행위 금지에 대한 내용을 담은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법안은 직무상 알게 된 성폭력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다.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17일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 비밀을 외부에 유출한 사람에 대해 현행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상향 조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의원은 “성폭력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폭로하더라도 전화번호, 소속 등 개인의 신상이 쉽게 노출되는 등 2차 피해에 대한 정의조차 마련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라며 “2차 가해는 직접적인 성폭력에 버금가는 범죄 행위와 다를 바 없는 만큼 국회는 2차 피해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민정 기자 km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