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경영 간섭에 ‘죄인’ 취급까지…기업 뛰게 한다더니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챔버라운지에서 열린 부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손경식 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사진-뉴시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챔버라운지에서 열린 부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손경식 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사진-뉴시스)

[일요서울|김은경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원칙) 행사를 강조하고,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 필요성을 재차 언급하면서 재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규제개혁 등을 약속하며 기업이 제대로 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선언한 지 불과 일주일여 만에 문 대통령이 기업의 손발을 묶는 각종 제도 적용과 법안 통과를 독려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불통 튈까…“사실상 경영 개입”
은행권, 매서운 감원 한파…은행원 2000명 봇짐 싼다


“경영하기 어렵다.” 여전히 재계에서 떠도는 말이다. 현 정부 들어 친기업 정책이 나올 것을 기대했지만 실상을 보면 과거로의 회귀다. 세계 경기 침체로 수출길이 막히면서 외부 거래가 힘든 시점인데다 검찰수사로 인해 홍역(?)을 치르는 재벌 기업이 늘고 있다.

2월에는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 협력이익공유제 등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법안들이 줄줄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경영계는 경제 활성화를 주문한 정부에서 정작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정책들을 연이어 도입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공정경제 추진전략 회의’에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스튜어드십코드 행사를 강조하고, 기업 대주주 경영권을 약화시키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공정경제를 위한 많은 법안들이 아직 국회에 계류 중에 있다”며 “기업 소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 상생 협력을 위한 유통산업발전법과 상생협력법, 갑을 문제 해소를 위한 가맹사업법과 대리점법, 소비자 보호를 위한 집단소송법과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제정 또는 개정 법안들이 국회의 의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모두 공정경제를 확립하기 위한 시급한 법안들”이라며 “지난해 여야정 국정 상설 협의체에서 여야 5당 원내대표와 함께 불공정 시정과 공정경제의 제도적 틀을 마련하기 위해 상법 등 관련 법안의 개정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국민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국회에 다시 한 번 간곡히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와 같은 발언에 경영계는 당혹스러운 눈치다. 문 대통령이 지난 15일 ‘기업인과의 대화’를 통해 규제개혁 등을 약속하며 기업이 제대로 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해놓고, 일주일여 만에 기업들을 옥죄는 각종 제도 적용과 법안 통과를 독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시행이 예정돼 있는 협력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협력이익공유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추진한 프로젝트에서 사전에 합의한 목표 매출과 이익을 달성할 경우 계약한 대로 이익을 나눠 갖고, 이에 따라 정부가 세금을 감면해 주는 제도다.

재계는 주주 재산권 침해 논란이 상당해 시장경제에 반하는 제도임에도 정부와 국회가 법제화를 밀어붙인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5일 ‘협력이익공유제에 대한 경영계 의견’ 자료를 내고 “이 제도는 기업 경영원리에 배치될 뿐 아니라 협력이익 규모와 업체별 기여도 산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 투명성에만 매몰돼 해외 투기자본 등 악의적 경영권 침해에 무방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경성담합(가격, 생산량, 시장분할 등 중대담합 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담은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 역시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지적이다. 공정위와 검찰의 판단이 다를 경우 공정위가 무혐의로 처리한 사건을 검찰이 고소하는 등 이중조사가 될 것에 대한 업계의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15일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에 일부 기업이 우려하는 대목도 있다”며 “법 개정보다 시장의 자율적 감시 기능을 통해 기업이 변화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업이 투자확대에 매진하도록 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재계의 이 같은 우려와 달리 문 대통령의 발언은 물론 당정청의 목표가 상법·공정거래법에 방점을 두고 있어 논란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다음 타깃 어디?

국민연금의 최근 행보도 재계를 긴장케 한다. 국민연금이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에 본격 나서면서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업들도 자칫 불똥이 튈까 우려한다. 국민연금이 10%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 중 배당률과 배당성향이 낮은 GS건설, 호텔신라, 신세계, 대림산업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3일 열린 공정경제 추친전략 회의에서 “정부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를 적극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이 우려하는 대목은 국민연금이 정부와 정치권, 노동조합 등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시민단체, 노조, 사용자단체 등의 대표자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할 경우 기업운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사실상 정부가 경영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 적극 나설 경우 기업에겐 상당한 부담”이라며 “국민연금은 수탁자 책임원칙에 의거해 경영활동에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시장을 교란시키지 않도록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시중은행에는 새해부터 희망퇴직 감원한파가 강하게 몰아치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금융업무의 디지털화와 정부의 청년일자리창출 정책 등에 따라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5대 은행에서만 봇짐을 싸는 은행원은 약 2000명에 이를 전망이다.

은행권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인터넷·모바일 뱅킹 확산으로 감원 한파가 불어 닥쳤다. 은행권의 계속되는 희망퇴직은 줄어드는 오프라인 영업점포 수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디지털화의 영향으로 최근 5년간 국내 17개 은행의 오프라인 영업점포는 900개 가까이 사라졌다.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지난 14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대상은 부지점장 이상 일반직 중 1960년 이후 출생자나 차장급 이하 일반직 중 1964년생이다.

“연초부터 분위기 뒤숭숭”

우리은행은 지난해 12월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는 1964년생을 대상으로 전직지원을 실시했다. 대상자 500명 가운데 400여 명이 신청했으며, 이들에게는 기존 퇴직금에 월평균 임금 36개월치가 특별퇴직금으로 주어진다.

NH농협은행도 지난해 11월 22∼26일 10년 이상 근무자 중 만 40세 이상 직원과 내년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는 1962년생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명예퇴직 조건으로 월평균 임금의 20∼36개월치 특별퇴직금이 제공됐으며, 최종 퇴직 인원은 597명으로 확정됐다. 

은행권에서는 효율화와 수익성을 위해 점포 축소를 계속해서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신입 직원 채용 확대와 올해 실적 악화가 예상되는 것도 은행권의 희망퇴직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은행 관계자는 “연초부터 대규모 퇴직이 이어져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며 “올해 그만큼 채용은 늘어날 수 있겠지만 떠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씁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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