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이 먹을 건데 왜 여성만 힘을 빼느냐”

‘다문화가족과 함께하는 한국전통상차리기’ 행사에서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우리 전통 명절 예절을 배우고 있다. [뉴시스]
‘다문화가족과 함께하는 한국전통상차리기’ 행사에서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우리 전통 명절 예절을 배우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근래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기류를 주도하는 이른바 영 페미니스트(Young Feminist젊은 페미니스트)’의 증가로 명절에 어른들이 적잖이 당황하는 모양새다. 영 페미니스트들이 여성만 일을 하는 명절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영 페미니스트증가···여성만 일하는 명절 분위기에 반기

전문가 중장년 여성남성도 영 페미의견에 동조할 필요 있어

큰형 집에서 명절을 쇠는 A(51)씨는 지난해 추석이 다소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부엌에서 명절 음식 일손을 거들고 있는 큰 조카에게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작은 아버지도 전 좀 부치시죠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A씨는 그 말에 순간 얼어붙었다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형수님 등 주변 사람들이 민망해하며 만류해 자리로 돌아갔지만 내내 눈치가 보였다고 전했다.

영 페미니스트는 미투 운동, 성 차별 수사 규탄 시위 등을 통해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큰 화두로 떠오른 뒤 맞이하는 설날이라 여느 명절 때와 느낌이 다르다고 말한다. 성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낸 이들이 내부로 논을 돌리고 보니 성차별 타파가 가정에도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여성 차별과 혐오를 반대하며 온오프라인 양 측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주축이 바로 이들 세대다.

대학생 B(23)씨는 지난해 추석 당시 일명 프로 불편러(매사 예민하고 별것 아닌 일에도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해서 논쟁을 부추기는 유난스러운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를 자처했다고 했다.

여느 때처럼 부엌에서 송편을 빚다가 친척들이 모여 있는 거실을 향해 다 같이 먹을 건데 왜 우리만 힘을 빼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이다. 상을 치울 때도 여자들이 음식을 했으면 남자들이 치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의견을 피력했다. B씨는 어머니나 큰 어머니, 작은 어머니가 하루 종일 음식을 하고 설거지까지 하는데 집안 어른들 눈치에 아무 말도 못하는 것 같아 내가 나서기로 했다면서 결국 부모님에게 왜 그렇게 버릇없이 얘기하냐는 핀잔을 들어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렇게라도 피력해서 관습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정중하게 표현할

방법 많다

중년 남성들은 조카나 딸들의 지적이 당황스럽다고 표현하면서도 맞는 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종래의 풍속이 변화할 때도 됐다는 이유에서다.

자영업자인 C(53)씨는 친척들 앞에서 어린 조카나 딸에게 지적을 받으면 순간 화가 나다가도 결국 명절에 가만히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어 할 말이 없어진다고 털어놨다.

딸이 있다는 C씨는 보통 어머니와 아내, 처제가 음식을 하고 나는 뒤처리를 도와주거나 명절 후 기분을 풀어주는 방식으로 나름의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면서 나의 딸이 지금의 기성세대 여성들처럼 미래에 똑같은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면 이제는 정말 바뀔 때가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회사원인 D(55)씨는 한 방송사 뉴스에서 명절 성차별을 대대적으로 다루는 것을 보고 세상이 정말 변했다는 것을 절감했다면서 질책하는 듯한 발언이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이 또한 변화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영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 전 표현 방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봤냐는 것이다.

회사원인 E(57)씨는 그들이(영 페미니스트) 이러한 고민을 진정으로 자신의 부모님에게 피력해왔는지가 의문이다. ‘버릇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강하게 표현하기 전, 부모님과 상의를 통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할지등을 심각하게 고민해보고 논의해야 할 것이라며 정중하게 표현할 방법이 얼마나 많은가. 다짜고짜 짜증내듯이 표현하는 게 대화를 하려는 올바른 자세인가. 우리 세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열려있다고 지적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당연히 같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바쁘게 요리하고 설거지 할 때, 누구는 누워서 핸드폰을 하거나 티비를 보고. 더 이상 이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전통과 문화가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변화에 뒤처지는 사람들을 조롱하면 안 된다. 설득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은 아버지가 전을 부치면 어머니가 나물을 하신다. 기름 튀고 뜨거우면 어머니 힘들다면서”, “도와주는 게 아니라 원래 같이 해야 되는 것이다등의 의견이 달렸다.

사회적 서열 낮은

10~20대 의견 묵살흔해

전문가들은 아직 결혼 제도에 속하지 않은 1020대 여성들의 외침에 중장년 여성남성들도 동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명절에는 어머니, 며느리뿐만 아니라 10~20대 어린 여성들도 노동에 동원되지만 이들의 남동생, 오빠는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들이 명절을 모두가 행복한 연휴로 인지하기보다는 성별에 따라 누군가는 힘들게 일하고, 누구는 해오는 음식을 먹으며 대우받는 점을 명확히 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혼, 비혼 여성은 완벽히 결혼제도 안에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명절노동에 대해) 문제제기하기가 쉽지만 그들이 사회적 서열이 낮은 10대 중후반, 20대 초반의 어린 여성이란 점에서 묵살되는 경우가 흔하다면서 “30~40대 여성들도 맞아라고 동조하거나 남성들 중에서도 같이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명절노동과 관련된 문제는 세대갈등, 젠더갈등이 교차하며 발생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노동분담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는 있다면서도 그보다 명절문화를 관념적으로 따르고 있는데 ‘(과연 힘든 노동이 수반되는) 명절을 꼭 쇠어야 하나?’라는 문제의식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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