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청사에 있었지만 법원 측 ‘인지’ 못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뉴시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대법원 건물 안에서 80대 노인이 숨진 상태로 뒤늦게 발견되는 등 청사 보안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법원의 허술한 보안 문제는 자칫 법정 테러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대법원장 차량에 화염병 투척···법정 난동도 어제 오늘일 아냐

대법원 등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전 715분경 청사 서관 5층 비상계단에서 민원인 A(81)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계단을 청소 중이던 환경미화원에 의해 발견됐다. 오전 735분경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원 등이 청사에 도착해 현장을 수습했다.

A씨는 전날 오후 230분경 대법원 동관 1층 안내대에서 방문증을 발급받았다. 서관에 위치한 법원도서관 열람실을 방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통상 대법원 서관은 일부를 제외하고 방문객이 접근할 수 있는 구역이다. 1층 현관에서 신분증을 맡긴 뒤 방문증을 받으면 서관 내 도서관이나 식당 등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A씨는 운영 시간이 지난 뒤에도 방문증을 반납하지 않았다. 출입증 보증 차원에서 A씨의 신분증을 보관하던 법원도 반납이 늦어지는 사정을 확인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청사를 방문한 지 17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는 따로 발견되지 않았다.

법원 관계자는 “A씨가 발견된 장소는 통제 구역이 아닌 방문객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라며 “A씨가 방문증을 반납하지 않았음에도 확인하지 않은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지난 2013년 자신을 치매로 진단한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2심에서 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재판에서 자신이 간이정신상태검사(MMSE) 점수가 높게 나와 정상 수준임에도 의사가 치매로 진단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MMSE 외에도 A시에게 다른 치매 증상들이 있었고 이를 근거로 치매로 진단한 의사는 과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A씨는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지난해 10월 기각된 바 있다.

경찰은 A씨가 4년여에 걸친 소송전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건 경위 등을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테러 이유

재판 결과 불만

지난해 11월에는 김명수 대법원장 출근 차량에 화염병을 던진 70대와 법정에서 난동을 부린 50대가 나란히 구속됐다.

이날 B(75)씨는 현존자동차방화특수공무집행방해화염병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B씨는 지난해 1127일 오전 98분경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출근 중이던 김 대법원장 차량에 인화 물질이 든 500ml 페트병을 투척한 혐의를 받는다.

B씨의 범행으로 김 대법원장 출근 차량 뒷타이어 쪽에 일부 불이 붙었으나 보안요원에 의해 즉시 진화됐다. 김 대법원장은 차량 안에 있던 상태여서 다치지는 않았으며 그대로 정상 출근했다.

B씨의 테러는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돼지 농장을 운영한 B씨는 자신이 제조판매해 온 유기축산물 사료가 친환경인증 부적합 통보를 받자 국가와 인증조사원을 상대로 1억 원 규모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서 패소한 것에 대한 불만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경찰이 송치 당시 적용했던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는 제외했다. 검찰은 당시 김 대법원장이 차량을 타고 출근 중이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직무를 집행하는상태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B씨가 입건됐을 당시 적용됐던 화염병사용 등에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도 같이 제외됐다. 대신 사람이 타고 있는 자동차에 불을 놓은 혐의로 현존자동차방화죄를 적용했다.

검찰은 B씨가 심지 등 발화나 점화 장치 없이 인화 물질을 채운 페트병에 라이터로 직접 불을 붙인 점을 고려했을 때 화염병사용처벌법 적용이 어렵다고 봤다. 해당 법은 화염병을 불이 붙기 쉬운 물질을 넣고 발화장치 또는 점화장치를 한 물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안전장치 소홀우려

초유의 대법원장 화염병 테러가 일어난 지 불과 4시간 30분 후 건너편 서울고법에서는 50대 여성이 법정에서 난동을 부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유도 B씨와 같았다.

C(51)씨는 지난해 1127일 오후 230분경 서울고법 한 법정에서 아들이 제기한 항소심이 기각되자 판사를 향해 걸어나가며 거친 욕설을 내뱉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제지하는 법원 경위를 때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에서 퇴장을 당한 후에는 출입문을 부수는 등 큰 소란을 피웠다.

B씨와 같은 날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C씨는 공무집행방해 및 재물손괴 혐의로 구속됐다.

이처럼 법원에서의 난동과 사건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첨예한 다툼이 있는 법정에서 소송 당사자나 관계자들이 판결에 불만을 품고 과격한 행동을 할 수 있음에도 법원의 안전장치가 소홀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 법원의 허술한 보안 문제는 자칫 법정 테러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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