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사법 농단' 의혹의 핵심 피의자 중 한 명으로 지목받는 박병대(62·사법연수원 12기) 전 대법관이 또 구속영장 발부를 면했다. 이번이 두 번째다.

24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박 전 대법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처장직을 맡았다. 그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재판 개입 등 각종 사법농단 의혹 관련해 깊이 관여한 인물이라는 의혹에 연루됐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법관은 지난 2014년 김기춘 비서실장 공관에서 진행된 일명 '소인수 회의'에 참석했다. 당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 등이 함께한 이 회의에서는 강제징용 재판 지연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검찰은 그가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로부터 국무총리직을 제안받는 등 끈끈한 '유착' 관계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이 밖에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지위 확인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조작 사건 ▲서울남부지법 위헌제청결정 사건 등에 개입한 혐의도 갖는다.

또 파견 법관을 통해 헌법재판소 내부 사건 정보 및 동향을 모으고, 상고법원 등 당시 사법행정에 반대하는 법관과 변호사단체 등에 대한 부당 사찰, '부산 스폰서 판사' 비위 은폐 및 축소,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 및 집행 등 각종 사법 농단 의혹에 관여한 혐의를 지닌다.

해당 사건의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해 12월 박 전 대법관을 상대로 첫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공모 관계 성립에 의문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검찰은 박 전 대법관에 대해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 소송 관련 재판 개입 등 새로운 범죄 혐의를 드러냈고, 아울러 지인의 재판 기록을 불법으로 확인한 혐의(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 혐의 등도 추가로 포착했다. 검찰은 또 공모관계에 대한 보강 수사를 거쳐 지난 23일 200여쪽 분량의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박 전 대법관과 검찰은 전날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한 달여 만에 다시 맞섰다. 검찰은 사법농단이라는 중대한 반(反) 헌법적 범행에서 박 전 대법관이 핵심적인 인물이었음을 강조했고, 박 전 대법관 측에서는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으로 대립각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법관을 상대로 한 구속 심사는 약 7시간가량 진행됐다. 심리를 담당한 허 부장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함에 따라 그는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구치소행을 면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