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이, 대기업 횡포에 빼앗겼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분쟁은 중소기업에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힘과 거대자본이 바탕인 대기업을 상대하기에는 중소기업의 힘이 다소 약하기 때문. 이에 매년 우수한 기술을 가졌음에도 대기업 앞에서 무릎을 꿇는 중소기업의 하소연이 늘고 있다. 최근 대기업 KT(회장 이석채)를 상대로 대학시절 자신의 창업아이템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있다. 이즈메이커 최정회(37) 사장이 주인공. 그 역시 KT에 자신의 특허품 ‘심심이’를 빼앗겼고, 이로 인해 극심한 경영난에 빠졌다. 때문에 최 사장은 KT가 “상생을 외칠 때 눈물을 흘리는 중소인들이 늘고 있다”며 분개한다. 그 이유를 알아본다.

지난해 7월 12일 KT 이석채 회장은 광화문 사옥 올레스퀘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방안과 동반성장을 위한 ‘3불 정책’을 밝혔다.

3불이란 ▲ “중소기업의 자원이 KT로 인해 낭비되지 않게 하고 ▲ 기술개발 아이디어를 가로채지 않으며 ▲ 중소기업과 경쟁 환경을 조성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는 현 시점에 KT의 3불 정책 중 하나였던 ‘기술개발 아이디어를 가로채지 않으며' 항목이 논란이 되고 있다. 중소기업 이즈메이커가 자신의 특허권을 빼앗겼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


대학생의 꿈 빼앗아

이즈메이커 최 사장은 2004년 1월 ‘심심이’라는 채팅로봇을 모바일 사업화해 SK텔레콤, KTF(현 KT), LG텔레콤(현 LG+) 등 이동통신 3사를 통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사업을 통해 KTF와 이즈메이커가 올린 월매출은 200만~300만 원 수준이었다. 당시로써는 큰돈이었다. 특히 이 사업에 전념했던 이즈메이커로서는 더했다. 그러던 중 2004년 7월경 ‘심심이’를 KTF의 전략적인 서비스로 만들자던 제의가 이즈메이커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이즈메이커는 당시 ‘심심이’ 브랜드를 선출원해 등록을 받았기 때문에 KT가 상표를 등록할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특허청도 KT가 출원하려 했던 상표를 ‘이즈메이커의 심심이’라는 이유로 거절했었다. 그러나 대형 특허 법인을 앞세운 KT는 분할 출원 등의 방법을 통해 결국 등록을 받아냈다. 분할출원은 하나의 상표등록출원에 두 개 이상의 상품을 지정상품으로하여 상표등록출원 한 경우 이를 두개 이상의 상표등록출원으로 분할하여 출원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쉽게 말해 이즈메이커는 ‘심심이’를 온라인용으로 출원했고, KT는 ‘모바일용’으로 출원한 것이다.

때문에 최근 스마트폰 열풍과 함께 심심이 모바일 사업은 연 매출 30억 원대로 성장했고 이 사업의 수익은 고스란히 KT의 몫이 되고 말았다. 이후 KT는 운영대행사를 통해 이즈메이커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매출 정산을 중단했다. 운영대행사가 그동안 이즈메이커가 만들어 놓은 심심이 서비스를 그대로 베껴 시스템을 만들었기에 이즈메이커의 역할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아울러 KT측은 “‘심심이’ 상표권 사용 불가를 요구합니다”는 입장을 보냈다. 그야말로 알맹이를 다 빼간 상태에서 버려진 꼴이 됐다. 이후 이즈메이커는 반환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이마저 속수무책이었고 매출에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 회사 존폐위기론까지 겪는 고충이 따랐다.

이즈메이커를 보호해 주겠다던 약속 또한 거짓이었다. 당시 사업 전반을 챙겼던 김 모 팀장(현재 상무 승진)은 “이즈메이커를 보호하기 위해 상표권을 출원한 것이니 우려할 것 없다”고 안심시켰지만 사건 발생 후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최 사장은 눈물을 삼켜야 했고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도 헤어지게 됐다. 매달 들어오던 일정 수익도 떨어지면서 사업이 크게 흔들리기까지 했다.

최 사장은 “대기업을 믿었다. 중소기업의 특허권을 보장해준다는 말을 했고, 사업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향후 변리사를 통한 특허권 신청이 허술하다는 것을 알고 많이 실망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그는 “김 모 팀장이 이 일이 있은 후 승진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우연의 일치 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화가 치밀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KT의 한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이즈메이커의 입장에는 크게 두 가지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허권 신청이 된 것은 2005년이다. 6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특허권을 운운하는 것은 ‘심심이’에 대한 애정보다는 ‘심심이’를 우리(KT)가 키워놓자 되찾으려는 심술이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 심심이를 계약한 건 또 다른 업체 A정보였다. KT도 A정보와 계약을 맺은 것이다. 계약당사자가 A정보인 것이다.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A정보와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KT가 교묘히 법망을 피해 중소기업의 특허권을 취득했다는 의혹을 풀기에는 역부족인 듯 하다.

특허청의 한 관계자 역시 ‘대기업의 전형적인 횡포’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번 사안의 경우)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며 “애석하게도 또 한명의 피해자만 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면서도 법적제도 마련이 없어 보호 받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실제 지난해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특히 분쟁 건수가 5만6025건으로 전년에 비해 31.7%나 증가했다.

중소기업 한 관계자는 “특허 분쟁이 발생하면 대기업들은 돈과 인맥을 동원해 시간 끌기 작전으로 물고 간다”고 하소연한다. 최종판결을 받기 까지 3~5년 정도 걸리기에 온전히 버틸 수 있는 중소기업이 희박하다는 것. 때문에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춰 특허 권리를 헐값에 넘겨 버리거나 아예 기술개발도 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한다고 귀띔한다.

그러나 최 사장은 자신이 대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동거 동락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심심이’의 특허권 및 사업권을 되찾겠다는 입장을 강조한다.

그는 “‘심심이’는 이즈메이커가 독자 개발한 상품이다. 2002년부터 MSN과 웹사이트 등을 통해 서비스해온 브랜드이다. 상표권을 빼앗기고 이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지만, 이름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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