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농협은 횡령·유용사건의 온상이란 오명을 지우기 힘들어 보인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농협이 국내 금융기관 중 금융사고율이 가장 높은 기관으로 파악됐다. 이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횡령·유용건수는 농협중앙회와 농협단위조합을 합쳐 총 83건, 사고금액만 463억원이다. 농협에서는 매해 비슷한 유형의 금융사고 발생이 반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최근 농림해양수산위원회의 열린우리당 한광권 의원은 “농협이 국내 금융기관 중 금융사고율이 가장 높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의 금융기관별 금융사고 현황 조사에 따르면 2001년부터 올해 6월까지 발생한 전체 금융사고는 1,537건으로 약 8,521억원 규모다. 이중 농협중앙회가 34건, 285억원으로 사고율 1위를 기록했다.

더불어 농협단위조합도 49건에 178억원 규모의 금융사고가 발생해 2위를 차지했다. 두 기관을 합쳐 농협전체를 확인하면 횡령·유용사건은 총 83건, 463억원으로 금융사고 전체대비 28%를 차지한다.2003년 금융기관별 금융사고 현황을 살펴보면 농협중앙회는 횡령·유용 15건(124억원), 금품수수 3건(3,000만원), 사적금전대차 3건(8,100만원) 금융실명제위반 4건, 기타 9건(159억원)이다. 또한 농협단위조합은 횡령·유용 33건(138억원), 금융실명제위반 3건(3,000만원), 도난·피탈 5건(1억9,000만원), 기타 8건(37억원)을 기록했다.농협전체 사고 83건 중 횡령·유용에 의한 사고만 따져 봐도 48건으로 263억원 규모로 농협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음을 방증한다. 최근에는 농협 개별 직원들의 금품수수 비리가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다. 바로 전달인 9월 16일, 농림부 김주수 차관이 고교선배인 농협의 김모부장으로부터 골프공 2박스와 만원권 100장을 받은 현장이 감사원특별조사국 감사원들에 의해 적발됐다.

앞서 9월 5일에는 농협중앙회 국제금융과장 신모씨가 파생금융상품 발행과 관련해 100억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에 구속기소됐다. 신씨는 지난 4~6월 KTX공단이 발행한 만기 10년, 10억달러 규모의 파생금융상품을 농협을 통해 발행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과정에서 5억 7,000만원을 받은 혐의다. 이와 비슷한 사건은 지난 2003년 11월 5일에도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농협중앙회 차장 김모씨는 정보인식기 납품관련 청탁과 함께 업자로부터 3,000만원이 든 예금통장과 거래인장을 받아 구속기소됐다. 적발된 농협직원들의 횡령·유용 사례를 살펴보면, 카드빚 상환 등 개인용도로 은행돈을 사용했고, 허술한 전산망을 이용, 조작하거나 고객의 통장을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수법을 보여준다.

그러나 각 사건들은 사전에 엄격한 자체 감사·통제 시스템만 있었다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한 농협관계자는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횡령·유용사건은 직원의 교류를 막는 농협의 인사제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대부분의 지역농협은 노조, 본인의 동의 그리고 조합장들의 합의가 없으면 근무지 이동이 어렵다. 그는 “단위농협의 경우 사실상 인사교류가 중단돼 같은 지점에서 십수년씩 동일 업무를 보는 직원이 많다. 감시하는 사람도 없이 단독으로 업무를 보다보니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술한 전산망도 문제다. 말단직원들도 전산시스템을 자유자재로 만질 수 있고, 서류위조 등의 수작업 행위에 대한 관리 감독도 허술하다.

이를 입증하듯 지난 8월 16일 광주남구 방림동에서는 99년 8월부터 올 4월까지 근무했던 여직원 전모씨가 고객예금 10억원을 인출해 달아난 혐의로 구속됐고, 지난해 8월에도 전북진안의 한 농협에서 여직원이 13억원을 빼돌린 사건이 있었다. 그렇지만 농협에선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시정해 나가고 있다”는 게 농협측의 최선의 대답이다. 이런 안일한 대처에 대해 금융권 일각에선 “농협의 허술한 관리·감독과 사건발생시 우선 덮어두고 보자는 은폐관행 등이 금융사고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최근 심각한 경제난과 카드빚 등으로 인한 개인채무 증가와 그에 따른 금융기관 종사자의 ‘모럴해저드’가 위험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며 “개인으로 인해 불거진 금융사고지만 우리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나아가 국제금융시장에서의 대외신인도 하락 등의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다”며 우려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한광원 의원은 “금융기관 임직원에 대한 철저한 감찰활동과 형사고발 등 강력한 제재조치를 마련해야 하지만 앞서 금융기관 스스로의 윤리 경영 강화가 더욱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역단위 농협선 십수년간 동일업무”
구조적 횡령사건 등 빈번할수 밖에 없어


지난 8월 28일, 서귀포 시내 모 농협에서 공과금 수납업무를 맡았던 고모씨가 5,700여만원을 가로챈 사실이 드러났다. 10년 넘게 근무해온 여직원 고모씨는 개인채무를 갚고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수회에 걸쳐 공금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지역단위 농협에서는 사실상 인사교류가 중단돼 같은 업무를 혼자 십수년씩 보기 때문에 횡령 등의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앞서 올해 3월 11일에는 수원농협 화성군 봉담지점에서는 출납담당 대리 홍모씨가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수십차례에 걸쳐 4,300여만원의 돈을 빼내 개인용도로 썼다.

이 사건만 살펴봐도 농협은 이미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대처를 전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서류조작과 관련된 횡령·유용건도 높다. 지난해 9월 전북김제에서는 한 농협 상무가 23억원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있었다. 그는 20년 가까이 양곡 판매업무를 처리해 오면서 쌀을 구입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돈을 빼돌렸다. 진주서부농협에서는 전 조합장이 2000년부터 2002년말까지 허위매출전표 등으로 조성한 현금을 직원명의의 통장에 비자금으로 예치,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처리해 1억 3,800여만원을 횡령하고 2,9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고객의 통장을 이용해 비자금을 마련하는 케이스도 많아,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고객들도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서광주농협 박모 조합장이 8,000여만원을 횡령했고 올해 3월 24일에는 춘천시 신동농협 모 지점의 이모씨는 고객 6명의 통장에서 8차례에 걸쳐 1억 9,350만원을 횡령했다. 이 사건 이후 농민 박씨는 비관해 목숨을 끊었다. 허술한 전산망 체계가 그대로 드러나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해 7월 4일에는 광주농협 서방지점에 근무하는 최모씨가 최근 4개월간 현금인출기에서 보안시스템 해제 후 3억 2,000만원을 챙겨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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