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국인들은 심경이 복잡하다. 유럽대륙을 떠나 독자적인 대영제국의 영광을 꿈꾸며 국민투표로 선택한 브렉시트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메이 총리가 EU지도부와 논의해서 마련한 브렉시트 협상안은 432 대 202라는 압도적 표 차이로 부결되었다. 집권당이 하원에서 230표 차이로 패배한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한다.

메이 총리는 식물총리가 되어 버렸지만 총리직 자체가 누구도 받고 싶지 않은 독이 든 성배가 되어 버렸고, 영국 정치 자체가 맥을 못 추고 있다. 브렉시트를 선동하던 무책임한 우파 정치인들은 유럽에 별장을 가지고 부유하게 사는 사실이 밝혀져 망신을 샀다. 대안이 되어야 할 노동당도 권력투쟁에만 몰두하는 모습이어서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정치는 갈수록 개그콘서트가 되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과 펠로시 하원의장이 연방정부를 셧다운 시켜놓은 채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데, 돌아가는 모양새가 가관이다. 한 달 가까운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생활고를 겪는 공무원들이 속출하고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펠로시 하원의장이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가 해결되지 않아 보안문제가 있다는 핑계로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를 연기시켜 버렸다. 그러자 트럼프는 펠로시 하원의장의 해외출장에 군용기를 쓰지 못하게 하는 보복을 했다. 민주당은 하원 다수당이 되면서 트럼프 혼자 서 있던 무대에 올라 트럼프만 미국정치의 골칫거리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있다.

일본도 정상은 아니다. 일본은 올 7월 지방선거와 참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자민당의 고전이 예상되고 있었는데 아베 총리는 선거에 이기기 위해 한일관계를 내던져 버리기로 한 모양이다. 한국이 북한 선박 구조과정에서 쏘아 보낸 레이더 탐지 문제로 시비를 걸더니 한걸음 더 나아가 초계기로 한국 함정 주변을 위협비행을 하며 지지도 몰이에 나서고 있다.

지난 해 9월 3선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역대 어느 총리보다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역대 최장기 총리에 도전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숙원인 개헌은 임기 중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져서 곧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 보통국가’로 아시아에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한-일 간의 레이더 갈등은 보통국가 일본이 주변국과 열어 갈 불안한 미래를 암시한다.

시진핑은 힘겹게 대처해 가던 미중 무역전쟁의 휴전을 이끌어 냈다. 무역전쟁의 원인을 시진핑만이 제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 등장 이후 극한대결을 마다하지 않는 미국사회가 미중 무역전쟁에 대해서만은 이견이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걸 보면 미국은 이번 기회가 유일강대국 지위를 위협하는 중국을 밟아버릴 마지막 기회라고 보는 듯하다.

중국은 미중무역전쟁에서 결국은 자신들이 승자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기축통화를 쥐고, 셰일오일을 바탕으로 경제체력을 비축한 미국은 중국을 마지막 전장인 금융전쟁으로 몰아 부칠 것으로 보인다.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한 시진핑은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의 미국과의 경제전쟁이라는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지구상 강국이라 자부하는 나라들 마다 이런 저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높고 험한 파도 속에서 정치인은 방향타를 쥐고 국가를 이끌어 간다. 정치는 그 사회의 명줄을 쥐고 있어 중요한 것이다. 정치문제가 설 연휴 밥상머리에서 갈비와 함께 올라오는 이유가 아닐까.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