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유 명절인 설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이 차려진다. 그리고 그러한 음식이 잘 소화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야깃거리다. 설 연휴를 앞둔 시기가 되면 많은 정치인들은 그러한 이야깃거리가 되기 위해 분주하다. 특히 다음 대선을 준비하는 정치인이라면 설 연휴 대목을 놓칠 수 없다.

지난 1월21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청와대가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사실상 철회하자 광화문 일대를 광장으로 조성하겠다는 설계도를 들고 나왔다. 이 과정에서 행정안전부 김부겸 장관은 ‘박원순 시장의 광화문광장 설계안을 절대 받을 수 없다’며 불쾌감을 표시했고, 이에 박원순 시장은 ‘절대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냐!’며 계획대로 광화문 광장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서울시장 재임 9년 차를 맞은 박원순 시장이지만, 최근에는 ‘서울시장으로 해놓은 것이 뭐가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당초에는 자랑스러웠던 3선 서울시장이라는 타이틀도 마냥 달갑지만은 아닌 상황이다. 여권의 대권 후보 중에서는 이낙연, 유시민에 밀려 3위로 처진 상황이다. 반전이 필요했던 박원순 시장의 입장에서는 광화문광장 추진은 자신의 정치색과 추진력을 보여주는 역작이었음에 틀림없다.

문제는 그러한 상황을 다른 경쟁자들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원순 시장의 또 다른 경쟁자인 김부겸 장관이 그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평상시라면 박원순 시장을 적극 도와드리겠다고 말했겠지만, 마치 정적을 대하듯 박원순 시장의 계획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도 더 밀려서는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어쨌든 박원순 시장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광화문광장 구상을 명절 상에 올리는 데는 성공했다. 김부겸 장관은 ‘손 안 대고 코풀 듯’ 여권의 대권주자 중 한 사람임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설 민심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깃거리는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회자될 것이다.

한편,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선 설 이후에 치러질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대표로 선출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지지도가 하락추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민심을 반영한 새로운 당대표를 잘 선출하면 내년 총선에서 제1당도 바라볼 수 있다.

정치적 재기가 필요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 홍준표 전 당대표, 정치인으로서의 연착륙이 필요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 정치인으로서 체급을 올려야 하는 정진석 전 원내대표, 정우택 전 원내대표 등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한결같이 언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그들이 새로운 얼굴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엄중한 시대에 보수의 재건을 할 수 있는 명분과 역량이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자칫 그들의 이야깃거리는 명절 상에 오르지 못해 보수의 진짜 위기가 시작될 수도 있다.

연동형비례대표제로 공동전선을 형성해 온 군소 3야당은 명절 상에 자신들의 이야깃거리가 오르는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설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 지을 순간이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은 자유한국당과의 보수합당에 대해 조만간 결론을 내야 한다. 민주평화당은 호남에서의 독자생존이 가능할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정의당은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이 불가능하게 됐을 때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할지 냉정한 판단이 요구된다. 설이 지나면 정국은 급격하게 요동칠 것이다. 준비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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