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결혼·출산 포기한 ‘3포세대’ 넘어 ‘N포세대’ 왔다

빈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이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해 12월과 2018년 연간 고용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빈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이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해 12월과 2018년 연간 고용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요서울|김은경 기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에서 인간관계와 집까지 포기한 ‘5포세대’, 그러다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7포세대’를 넘어 이젠 모든 것을 포기한 ‘N포세대’라고 말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일자리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청년정책은 약 15년이 흘렀지만 청년실업률은 여전히 좋아지지 않고 있다. 아직은 새 정부도 청년 세대의 분노를 달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불신만 심화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늦어지는 취업에 저출산 현상 심화…”애 낳을 돈 없어요”
청년정책 15년 흘렀지만…청년실업률 여전히 제자리걸음

청년 고용률이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고꾸라진 고용률은 최근까지 꾸준히 증가세를 이어 왔지만 유독 20대만 아직도 당시 고용률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N포세대’가 나온 배경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다. 20대 고용 부진은 장기 빈곤계층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어 국가 복지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실업으로 인해 결혼과 출산, 육아 등으로 이어지는 가정 형성도 미뤄지게 돼 저출산 현상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여행·자유·인간관계 포기…돈 많이 들어서

산업연구원(KIET)이 내놓은 ‘최근 연령대별 인구의 변동과 산업별 고용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7년까지 고용률이 회복세를 보였다. 50대와 60세 이상이 가장 빠르게 오르고, 30대와 40대는 이보다 낮지만,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20대는 아직도 당시의 고용률을 회복하지 못했다. 고용률은 취업자 수를 생산가능인구로 나눈 값이다. 20대 청년층의 월평균 고용률은 지난해 1∼10월까지 57.8%로 2009년 수준보다 0.6%포인트 밑돌았다. 2009년을 기준(100)으로 봤을 때 20대 고용률은 98을 조금 웃도는 정도다.

결국 첫 직장을 구하려는 20대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의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확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이에 따라 기업은 구인난, 구직자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일자리 미스매치는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청년층 고용 부진은 우리 경제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떨어지고 인구학적으로도 에코 세대가 20대에 진입하면서 상황이 더 악화한 데 따른 것”이라며 “에코 세대가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시장에 본격 진입하는 향후 몇 년이 청년고용의 중대 고비”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청년 세대는 취업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은 20~30대 구직자 292명에게 취업 위해 포기한 것을 설문해 지난해 12월 27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10명 중 8명(78.4%)이 취업을 위해 포기한 것이 있다고 답했다. 포기한 것은 평균 4개가량인 것으로 집계됐다.

취준생은 취업을 위해 여행(52%, 복수응답)을 가장 많이 포기했다. 뒤이어 자유(44.1%), 인간관계(40.6%), 취미(35.4%), 연애(34.5%), 꿈(33.2%), 돈(30.1%), 희망(24.5%), 결혼(24%) 등의 순이었다.

포기 이유로는 ‘돈이 많이 들어서’라는 응답이 61.6%(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취업에 대한 압박감이 커서’(55.9%), ‘우선순위에서 밀려서’(45%), ‘시간이 부족해서’(44.1%), ‘취업 준비에 방해가 되어서’(35.4%) 등을 들었다.

응답자 76.5%는 취업을 위해 포기한 것들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면, 구직 활동에도 직접적인 영향까지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반수인 53.7%(복수응답)가 포기한 것들 때문에 ‘자주 우울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어 ‘성격이 예민해짐’(48.9%), ‘취업에 자신이 없어짐’(41%), ‘구직 의욕 감소’(34.1%), ‘빠른 취업 위한 묻지마 지원’(31%), ‘구직 집중력 감소’(24.5%) 등 부정적인 영향을 겪고 있었다.

정부가 청년 실업률을 떨어뜨리기 위해 일자리 창출에 고군분투하고 취업을 유도하는 각종 지원금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은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제시하는 대부분의 일자리가 중소기업이고 공공기관 일자리라도 단기 계약직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많은 청년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서 차라리 ‘백수’를 택하는 이유다.

“최저임금 받고 애 낳으라는 건 어불성설”

오는 2월 졸업을 앞둔 취업준비생 김모씨(23)는 “당장 이력서를 내도 서류 합격 연락조차 몇 통 없다”며 “중소기업은 채용 공고에 연봉조차 써놓지 않는 경우가 많고, 막상 연락을 해보면 겨우 최저임금이거나 그조차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이어 “상황이 이런데 연애나 여가생활은 꿈도 못 꾸는 것이 현실이다. 취업 준비에 들어가는 돈도 많아서 버거운데 요즘은 아르바이트 자리도 별로 없다”며 “취업을 한다고 해도 최저임금 받으면서 결혼해서 애까지 낳으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청년 주거 정책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청년들의 월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청년전세임대주택’은 고시원 월세보다 비싼 전세금 대출 이자에 사실상 청년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수도권 행복주택은 청년들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13일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8’을 보면 주거 문제를 겪는 청년 가구는 약 69만 가구로 전체 청년 가구(454만2068가구)의 15.2%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준형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오늘날 청년 주거 문제는 과거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며 “기대수명의 증가, 은퇴 후 삶에 대한 다양한 욕구 등으로 인해 은퇴 이후 필요 자금의 규모가 크게 증가하면서 자녀에게 보유 주택을 상속하지 않으려는 고령층이 지속해서 늘어나는 등 부모 세대의 주거 지원이 예전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외곽에 그린벨트를 개발하거나 신혼부부 희망타운을 만드는 등의 형태가 아니라 서울시 차원에서의 대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국토교통부가 한발 물러서고 서울시에 힘을 실어줘 핵심적인 정책들을 개발하고 지역적으로 고민하는 형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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