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은 왕위에 오르기 전 자신에게 반대했던 세력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왕후를 폐위시키는 언필칭 폐모살제(廢母殺弟)를 저질러 서인세력에 의해 강제로 폐위됐던 비운의 인물이다. 성리학적 가치에 반하는 반인륜적 행위가 민심 이반을 일으키고 반정의 명분이 된 것이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 2016년 탄핵 정국 때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의결을 앞두고 “험난한 고개를 넘으려면 악마의 손이라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새누리당(현 한국당)내 많은 의원들은 박 의원이 내민 손을 잡고 말았다.

인륜을 어기는 것을 패륜이라고 한다. 패륜아는 천륜이나 인륜적 관계에 해를 가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가지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르거나 그 상황에 침묵하며 자신의 안위를 지켰던 인사들이 또다시 박 전 대통령 이름을 팔아 보수 적극 지지층의 분노를 사고 있다.

한국당 유력 당권 주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TK와 PK를 찾으며 사실상 당대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이 경쟁적으로 TK와 PK를 찾는 이유는 당대표 선거의 당락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책임당원이 이 곳에 몰려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임 당원뿐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의 향수가 아직도 짙게 배어 있는 이들 지역에서 민심을 얻지 못하면 당권을 거머쥘 수 없다는 계산에서일 게다. 그래서 이들은 언제나 그랬듯 박 전 대통령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박근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정치적 빚이 없는 정치인이 TK를 가든 PK를 가든, 그것을 문제 삼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번에 영남지역에 첫발을 내딛은 인사들 대부분은 탄핵 정국을 통해 박 전 대통령과 TK, PK 주민들에게 엄청난 빚을 진 인사들이다.

당이 침몰할 때마다 번번이 박 전 대통령에게 SOS를 쳐 간신히 정치적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정작 그가 ‘국정농단’ 프레임에 갇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보호하기는커녕 되레 폐위(?)시키는 일에 앞장선 씻지 못할 빚이 있다.

또 TK와 PK 주민들에게는 주군을 탄핵하면서 정권교체의 빌미를 좌파진영에 제공한 데 이어 보수진영을 갈가리 찢어 놓은 빚이 있다.

이에 석고대죄를 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무슨 얼굴로 또다시 TK와 PK에서 박근혜 향수를 불 지피고 있는지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진수(眞髓)를 보는 듯하다.

게다가 당권을 잡기 위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인사들과 손을 잡으려는 이른바 친박 주자들까지 있으니 어안이 벙벙할 노릇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정치철학이 “악마의 손이라도 잡아야 한다”는 박지원 의원의 공포스러운 ‘정신세계’와 하등 다를 게 없다.

탄핵 정국에서 눈곱만큼도 자유롭지 못한 한국당 의원들은 이제 더이상 박 전 대통령을 팔지 말았으면 한다. 당에서 내쫓을 때는 언제고 아쉬우니 다시 그를 이용하려는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정치행위는 더이상 하지 말라는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은 그런 인사들을 잊은 지 오래일 것 같다.

툭 하면 보수의 텃밭인 TK와 PK를 찾는 일도 하지 말았으면 한다. 가더라도 탄핵 정국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일련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이 지역 주민들에게 사죄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이반된 이들의 민심을 되돌리기 위한 통렬한 자기반성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이 지역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조기대선이 끝난 지 2년이 다 되어 가고 문 정권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당 지지율이 민주당에 크게 뒤지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녕 모르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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