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과 ‘북핵’ 갈림길에 선 진보세력


북한의 핵실험이 국내 진보세력들을 ‘핵’딜레마에 빠지게 했다. ‘반전’과 ‘반핵’을 평소 철학으로 내세우던 이들이 북한에서 핵실험을 강행하자 이를 옹호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반핵(反核)철학’이 훼손된 것이다. 이들은 북한 핵실험 이후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 핵실험은 미국의 핵위협에 기인한 것이며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며 비난의 화살을 미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보유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핵보유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할 뿐 ‘반핵’을 외치던 목소리는 사라진 것이다.
사실 북한의 핵보유 원인이 미국의 경제제재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국민들 사이에서도 찬반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국이 ‘비핵화’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에는 대부분의 국민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따라서 일부 진보세력들이 핵보유의 원인을 따지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반전반핵’이라는 평화적 가치에 대해서 먼저 일관적인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핵문제’도 내재적 접근법으로(?)

핵문제에 대한 진보세력의 딜레마는 이들의 또 다른 딜레마인 북한인권 문제와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진보 세력은 그 동안 인권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70, 80년대 민주화 운동 주축 세력 중 하나인 이들은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의 인권탄압에 앞장서서 저항해왔다. 당시 운동권 세력은 민족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 해결책에 따라 NL(National Liberty: 민족해방)과 PD(People Democracy: 민중민주) 양대 계파로 나뉘었으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냈었다.
그러나 2000년 무렵부터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 것. 북한인권문제는 내재적 접근법으로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 내재적 접근법이란 서구 사회나 남쪽체제의 잣대로 북쪽을 판단하지 말고 그들의 체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자는 이론으로서 재독학자인 송두율 교수가 이 이론의 대표적인 주창자이다.
그러나 내재적 접근법의 결정적 한계는 인권 등에 대한 보편적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센터 김요한 사무국장은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내재적 접근법으로 봐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전 세계적인 인권개념이 북한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진보세력의 딜레마가 있다. 내재적 접근법으로 인권문제를 다룬다면 70, 80년대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 다른 나라의 세력들은 내정간섭을 한 것이 돼버리는 셈이다. 또한 우리나라 진보세력이 비판했던 중국의 ‘천안문사태’ 역시 중국정부의 손을 들어줘야 옳을 것이다.
즉, ‘인권은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는 그들의 주장이 유독 북한에만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의견 엇갈리는 진보세력
북한의 핵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반전반핵을 외치던 ‘극좌’성향의 진보단체들이 북한 핵은 용인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
시민단체들 중에도 참여연대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환경운동연합 등은 “한반도 주민 안전을 볼모로 한 북한의 핵실험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있는 단체들이다.
그러나 통일연대나 범민련 등은 여전히 북한에만은 자신들의 ‘반핵반전’주장과는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이유다.
최근에는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핵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핵 결의문 채택과정에서 ‘북핵반대’라는 문구를 넣는 것에 대해 찬반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것.
이같은 진보세력 내의 ‘북핵’ 딜레마에 대해 바른사회시민회의 조종근 사무처장은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 엄연한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며 “오히려 ‘북핵실험 강행에 대한 미국책임론’을 통해 핵실험으로 조성된 한반도 위기를 오직 미국의 탓으로 돌려버리고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범민련 이규재 의장은 “미국이 한반도 밑에 핵잠수함을 가지고 와서 실험하는 등 북한의 자위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장은 다만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에 대해서는 유감”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보유로 인해 동북아 지역이나 전 세계적으로 핵확산 움직임이 인다면 진보세력의 딜레마는 더 커지게 된다. 많은 국가들이 핵을 보유하려 들면서 ‘반전반핵’의 가치가 위협받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북의 핵실험과 이로 인한 핵확산 움직임으로 인해 딜레마에 빠진 진보세력. ‘반전’과 ‘빈핵’을 외치던 그들의 고민이 커져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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