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조달가 등 영향 '주목'...'당장 부작용 없다지만...'

1997년 2월26일 사우디아라비아 호우타의 알-호우타 유전에서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한 직원이 원유 채굴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할리드 알-팔리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지난해 8월 23일 아람코의 상장 계획이 취소됐다는 보도와 관련해 아람코 상장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AP/뉴시스】
1997년 2월26일 사우디아라비아 호우타의 알-호우타 유전에서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한 직원이 원유 채굴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할리드 알-팔리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지난해 8월 23일 아람코의 상장 계획이 취소됐다는 보도와 관련해 아람코 상장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AP/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국내 정유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매섭다. 28일 현대중공업지주는 보유한 현대오일뱅크 지분 최대 19.9%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1조8000억원에 인수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제없는 거래다. 다만 아람코가 국내 또 다른 정유업계 에쓰오일의 최대주주라는 점은 눈여겨볼만하다. 국내 정유시장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오일뱅크 지분 매각, 아람코가 2대 주주 된다...정유업계 반응은
 아람코 원유 판매가 인상 시 국내 정유사 '비상 걸릴수 있다' 우려도


아람코는 1933년 5월 사우디 정부와 미국 스탠더드오일이 공동 설립한 회사다. 1980년 사우디 정부가 지분을 전량 인수해 국영화했다.

아람코는 하루 130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석유 회사다. 아람코가 보유한 유전의 원유 매장량은 3000억배럴로, 각각 400억~500억배럴의 원유 매장량을 가진 엑손모빌, 로열더치셸, 셰브론, BP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가 상장되면 기업 가치가 2조 달러(약 228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7500억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 지분 5% 정도만 공개하고 나머지 자금으로는 국부펀드를 조성해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현대重, 2兆 가까이 자금조달

국내에서는 에쓰오일의 최대주주로 알려져 있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아람코의 자회사인 A.O.C가 에쓰오일의 주식 63.41%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 아람코가 이번에는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인수 소식을 알렸다.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지주는 현대오일뱅크 지분 15~20%를 아람코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아람코는 국내 3위(시장점유율 기준) 정유업체인 현대오일뱅크 기업가치를 10조원 수준으로 평가했다.

매각 가격은 1조5000억~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아람코는 현대오일뱅크 이사회 의석을 확보해 경영에 참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이르면 28일 이사회를 열어 지분 매각 안건을 의결할 계획이다.

회사 측은 "이번 투자와 관련된 주주의 권한, 회사의 경영 등 주요합의사항들은 양사간 계약에서 다뤄질 예정"이라며 "투자 추진에 대한 합의는 양사간 주식인수계약 및 주주간 계약의 체결을 통해 완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거래가 마무리되면 국내 정유업계에서 외국계 영향력이 한층 커질 전망이다.

아람코가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매입을 통해 2대 주주가 될 경우 국내 4대 정유업체 가운데 외국계 대주주가 없는 기업은 SK이노베이션이 유일하게 된다.

SK이노베이션은 SK그룹 지주사인 ㈜SK(33.4%)와 국민연금(9.66%)이 양대 주주다. GS칼텍스의 경우 설립 당시부터 GS(옛 럭키금성)와 호남정유 외에 미국 셰브런과 텍사코의 아시아태평양지역 합작법인 칼텍스가 50% 출자하면서 사실상 태생부터 외국계가 참여했다.

정유업계는 아람코의 현대오일뱅크 지분 인수로 당장 시장에 큰 변화는 없겠지만 상황에 따라 원유 공급가 협상에서 우리측이 불리한 입장에 놓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상 원유 수입 물량의 100%를 아람코로부터 들여오는 에쓰오일과는 달리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아람코가 지분을 일부 인수하더라도 비중이 크지 않아 원유 수입 의존도도 상대적으로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람코가 세계 최대 석유기업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것도 불확실성 우려를 덜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다만 원유 시장 상황에 따라 아람코가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에 대해 대주주라는 지위를 이용해 불리한 원유공급가를 적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정유업계 외국계 영향력 확대는 주목

그동안 국내 정유사들은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계속해서 낮춰왔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해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이 2004년 이후 14년만에 70%대로 떨어졌다.

SK에너지는 약 10여개국,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20여개국으로부터 원유를 수입, 공급선의 다변화를 꾀했다.

중국의 최대 국영 석유업체인 시노펙(Sinopec)은 사우디의 OSP 인상에 반발하며 사우디산 원유를 최대 40%까지 줄이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쓰오일은 상황이 달랐다. 원유전량을 사실상 사우디로부터 도입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아람코로부터 원유를 도입해 가공한 완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9월 기준 최상위 지배기업인 아람코와의 거래에서 원유 매입과 관련, 총 13조1천992억원의 매입액이 있다고 신고했다.

또, 원유 평균 도입가격은 FOB 선적 기준 작년 1분기 65.68달러($/bbl), 2분기 74.36달러, 3분기 77.43달러라고 밝혔다.

FOB는 제품가에다 내륙운송비, 수출항구 선적비까지만 포함된 수치다. 업계에서는 내륙운송비 및 수출항구 선적비용을 평균 배럴당 1달러로 측정한다. 24일 환율(1천129.50원)을 기준으로 단순계산하면 지난해 3분기까지 사우디 원유 1억6천356만 배럴을 수입, 이에 OSP로 총 3천44억원을 지불한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원유 가격이 외부 요인으로 인해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 이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통한 리스크 감소에 집중하고 있다"며 "아람코로부터 거의 전량을 수입하는 에쓰오일의 경우 아람코의 원유 판매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의 대주주가 된 아람코가 두 회사의 이사회 정보를 공유할 경우 '이해 상충'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람코의 현대오일뱅크 지분 인수가 당장 국내 업계나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면서 "그러나 국내 정유 4사 가운데 3개 업체의 대주주가 외국계라는 점은 간단히 넘길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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