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다음 해인 1340년(충혜왕 복위1) 1월.

충혜왕은 원나라에 잡혀간 후 형부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고려 조정은 비상이 걸렸다. 결국 조정의 재상·원로들이 충혜왕의 죄를 용서해 주도록 청원할 조정의 대표로 재야의 거유(巨儒)인 이제현을 천거했다.

이어서 조정 각 부서에서는 원나라에 파견되는 사신에게 주어 보낼 물품과 원나라 형부 관리들에게 바칠 뇌물을 마련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전법판서 안축이 조정의 뜻을 전하러 이제현의 수철동 집을 찾아와 말했다.

“조정에서는 충혜왕의 방면(放免)을 상주할 대표로 익재를 천거했네.”

“강태공처럼 세월만 낚고 있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번에 고려 사직을 위해 익재의 경륜을 발휘해줘야 하겠네.”

“근재, 충선왕도 토번에 유배를 간 적이 있지만, 이번 충혜왕의 유폐는 고려의 국권을 짓밟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네.”

“그래서 충혜왕의 방면이 시급한 거 아닌가?”

“소임은 막중한데, 과연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익재의 큰 경륜과 원나라에서 얻은 높은 평판만이 그 어려운 일을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네.”

이제현은 조정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어지러운 고려의 정치 현실을 아주 외면할 수 없었다. 고려 조정의 위신을 세우고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일념이 그의 마음속 깊이 똬리를 트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이제현은 결연하게 칩거를 떨치고 일어났다.

고려의 주권을 침범당하고서 백성 된 도리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주군이 괴로움을 당했을 땐 분골쇄신(粉骨碎身)하고, 주군이 치욕을 당했을 땐 견위수명(見危授命)하는 것이 신하된 자의 도리이다. 나는 우리 임금의 신하인 것만 알 뿐이다.

충혜왕의 방면을 위해 다시 연경에 가다

그해 3월. 54세가 된 초로의 이제현은 다시 한 번 진면목을 발휘했다. 방면사신단(放免使臣團)을 이끌고 원나라 연경에 도착한 그는 종횡무진으로 활동했다. 원나라 조정의 실세 중 설득이 필요한 사람은 변설로 입을 막았으며, 문장이 필요한 사람은 글로써 감동시켰다. 그래도 설득이 되지 않는 사람은 그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동원했다.

이때 해월이는 불혹(不惑)을 앞둔 나이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 이세웅의 든든한 재정적 후원을 바탕으로 원나라 조정 중신들의 부인들과 폭넓은 교제를 하고 있는 터였다. 당연히 이제현에게 큰 힘이 되고도 남았다.

3월도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낯설지 않은 연경의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다. 이제현은 참으로 오랜만에 호젓한 술상을 받았다. 곱게 단장을 한 해월이는 불혹의 나이를 무색케 할 정도로 젊고 아름다웠다. 마치 달빛에 반사된 배꽃처럼 수줍게 앉아 있는 해월이에게 이제현은 애틋한 사랑이 담긴 어조로 말했다.

“이렇게 마주앉은 게 얼마 만이요.”

“가슴 설레는 즐거운 마음으로 대감을 그리워했답니다. 저 하늘의 큰 별처럼 가만히 제게 다가오는 대감의 눈빛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무심한 이 사람을 많이 원망했겠구먼.”

“아이, 대감도…….”

해월이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오랜 세월 기다려온 정인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봤다. 선생님으로 부르던 호칭도 세월의 무게를 못 이긴 탓인지 대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시 이제현은 분위기를 잡는 이야기를 꺼냈다.

“달빛 부서지는 오늘 같은 밤에 배꽃 아래서 마시는 술이 이 세상에서 최고라 할 만하지. 해월이는 오늘 보니 영락없는 한 떨기 배꽃이야.”

“배꽃은 매화나 벚꽃처럼 화사하지는 않지만 있는 듯 없는 듯 그윽하고 은은한 분위기가 봄꽃 중에서 으뜸이지요. 그래서 저도 배꽃을 좋아해요.”

부창부수(夫唱婦隨)였다. 해월은 그날따라 이제현의 얼굴이 넉넉하다고 생각했다. 대륙을 횡단하며 일세를 풍미한 학문과 경륜이 오롯이 담겨 있는 얼굴이었다. 비록 오랜 세월을 만나지 못했지만, 해월은 이렇듯 넉넉한 얼굴을 가진 선비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행복했다.

잠시 행복감에 젖어 있는 해월을 향해 이제현은 오랜 세월 만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담은 술잔을 권하며 말했다.

“이번에 충혜왕의 방면을 위해서는 탈탈(脫脫) 대부(大夫)의 도움이 필요하다네. 해월이가 탈탈 대부의 부인 조씨를 만나줘야 하겠소.”

“예. 그렇게 할게요. 그동안 조씨 부인과 서로 왕래하며 도타운 정을 나누고 있었어요.”

당시 원나라 조정은 권력투쟁의 소용돌이가 마무리된 시점이었다. 1340년 초, 권력을 잡고 있던 승상 백안(伯顔)이 교만해져 전권을 농단하자 그가 사냥나간 틈을 타 탈탈이 백안을 내쫓고 실권을 쥐고 있었다. 탈탈은 작달막한 키에 매서운 눈매를 가진 사람이었다. 생김새가 비범하여 영웅의 기백이 넘쳐흘렀다. 그는 몽골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고려 공녀 출신인 조세경의 누이동생을 정실(正室)로 삼고 있었다. 이제현과는 해월이를 통해 시문을 교환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던 사이였다.

며칠 후, 이제현은 먼저 탈탈 대부를 찾아갔다. 탈탈과 대부인 조씨가 반갑게 이제현을 맞이했다.

“대부님, 서신 왕래만 하다가 이렇게 뵙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대부님의 처남(조세경)이 저에게 대신 안부를 부탁했습니다.”

“처가의 나라에서 오신 경륜지사(經綸之士)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처남이 안부를 전했다 하니 익재 공이 마치 이 사람의 처남처럼 살갑게 느껴집니다.”

간단한 수인사로 회포를 푼 후 이제현은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충혜왕의 개인적인 성품은 미혹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충혜왕에게 왕위가 이어지는 것이 고려의 전통적인 정치질서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제현은 승상 백안이 고려왕위 계승과정에 개입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탈탈 대부가 승상 백안의 옛 정치를 모두 개혁하고 있는 원나라 조정의 실상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실각한 승상 백안은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심양왕 왕고를 고려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무리한 수를 썼습니다.”

“자신과의 친불친(親不親)으로 대국의 정사를 어지럽힌 과오도 실각의 원인이 되었소이다.”

“대부님, 부디 고려 조정 대신들과 백성들이 바라는 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익재 공, 공과 나는 오랜 세월 동안 교류를 하고 지냈소이다. 인생이란 연을 맺고(結緣결연), 연을 존중하고(尊緣존연), 연을 따르는(隨緣수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은 늘 정도(正道)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공과의 오랜 인연이나, 부인들 간의 교분을 생각해서라도 내 공을 도와 드리지요.”

탈탈 대부는 이제현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는 곧 원 황제에게 이제현의 상소장을 올렸다. 상소장을 읽은 원 황제는 크게 감동하여 충혜왕을 석방시키고 복위시켰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제현의 담대함에 놀랐고, 그의 뛰어난 외교 수완을 앞 다투어 칭송하였다.

“이제현의 지모는 범려, 장량, 제갈공명, 야율초재를 능가한다.”

“이제현의 담력은 관우, 주유, 악비에 못지않다.”

이제현의 충혜왕 구명을 위한 일련의 활동은 조국에 충성하겠다는 애국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방면된 충혜왕을 만권당에서 알현하고 옥중 생활을 위로했다.

“전하, 신 이제현, 주문사(奏聞使)의 소임을 무사히 마치고 이렇게 전하의 용안을 뵙게 되어 감개무량하옵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에 어진 신하를 생각하게 되고(國難思良臣 국난사양신), 집안이 가난할 때에 어진 아내를 생각하게 된다(家貧思良妻 가빈사양처)는 말이 있는데, 과연 익재 공이야말로 양신 중의 양신이라 할 것이오.”

“부끄럽사옵니다. 신하된 도리를 다한 것뿐이옵니다.”

“익재 공, 수고했소이다. 경이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었겠소. 경과 같은 신하가 다시없을까 염려되오.”

“당치않으신 말씀입니다. 전하, 이는 신의 힘이 아니라 고려 만백성의 뜻을 원나라 조정이 받아들였기 때문이옵니다.”

“과인은 산천이 변한다 해도 경의 공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이제현은 겸손으로 일관했다. 그가 개경을 떠나갈 때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이었으나, 돌아오는 길은 녹음방초가 우거진 신록의 계절이었다. 쾌거를 이룩하고 충혜왕과 함께 귀국하는 이제현의 발걸음은 새털처럼 가벼웠지만, 그의 가슴에 사무친 것은 목적을 달성한 기쁨보다 고려의 미래를 생각하는 애처로움뿐이었다. 이제현은 그때의 심경을 다음과 같은 시로 읊었다.

전에는 이별의 노래 마음에 심상터니

이리도 늙은이 눈물 수건을 적실 줄이야.

30년 타국에서 방랑하던 나그네가

오늘은 4천 리 밖에 홀로 돌아가누나.

강산은 고국과 서로 막혀 있으나

벌판은 요동과 서로 닿아 있거니

또다시 오고픈 생각 어찌 없으랴만

검은 먼지 백발을 더럽힐까 하노라.

이제현은 뛰어난 문장과 원나라 조정 대신들과의 끈끈한 인연으로 수렁에 빠진 충혜왕을 구해냈다. 그의 빼어난 국제적 외교 감각과 경륜은 원나라의 그릇된 행위와 충혜왕의 무고함을 설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슬픔,

참적지변(慘慽之變)을 겪다

이제현이 당당하게 충혜왕의 석방을 요구해서 이를 관철시킨 것은 고려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였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던가. 작은 기쁨도 잠시뿐, 큰 절망이 이제현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1340년 4월. 이제현의 둘째 아들 이달존(李達尊)은 충혜왕이 복위하자 전리총랑(典理摠郎)이 되어 왕을 수종(隧從)하여 원나라에 갔다. 그러나 그는 충혜왕과 함께 원나라에서 귀국하는 도중 역병(疫病)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가 장림역(長林驛)에서 28세에 병사하였다. 어의의 응급처방도 무용지물이었다. 권씨 부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꼭 7년 만의 일이었다.

졸지에 아들을 잃은 이제현은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벽력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는 불귀의 객이 된 아들의 싸늘한 시신을 어루만지며 오열했다.

“달존은 갓난아이 때부터 유난히 병치레를 많이 하여 제 어미를 고생시켰지. 또래 아이들이 철없이 응석을 부릴 때 두 나라 말을 배우느라 마음고생이 심했지. 그러나 어릴 때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여 한족·몽골족 아이들에게 지는 것을 싫어했지. 고려에 귀국해서도 적응을 빨리해서 제 어미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었지. 18살에 문과에 급제하여 백이정 선생님의 사위가 되어 3남 1녀를 낳아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조정에 따르는 무리들이 제법 많았는데…….

달존은 나를 많이 닮았어. 넓은 이마에 큰 귀하며 딱 벌어진 어깨는 나를 빼다 박았지. 당황하는 말투나 욕지기를 하지 않는 것까지 나를 닮았으니. 그러나 쌍꺼풀진 맑은 눈과 반달 같은 눈썹은 영락없이 죽은 제 어머니와 같았어…….

아아, 하늘은 나에게 크나큰 시련을 안겨주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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