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연휴 기간에 전국적인 민심이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설 연휴 때가 되면 눈에 익은 풍경이 보인다. 역사나 터미널 광장에서 귀성객들에게 인사하는 여야 지도부와 국무총리 등의 모습이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의 설 민심은 무엇일까.

올해의 설 민심을 살펴보기 전에 역사상에 비춰진 민심의 중요성을 살펴보자.

일찍이 중국의 강태공은 <육도(六韜)>에서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만백성(천하)의 천하다(天下非一人之天下 乃天下之天下也)”라고 했다. 나아가 당태종은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水可載舟 亦可覆舟·수가재주 역가복주)”고 했다. 모두 민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우리 삼국시대의 역사를 살펴보자. 475년 9월, 고구려 20대 장수왕은 3만 군대를 동원해 백제의 한성(漢城)으로 물밀듯이 밀고 내려왔다. 백제의 개로왕은 고구려의 침공 소식을 듣고서야 귀족들이 반발하고, 민심도 왕을 떠난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개로왕은 상좌평이던 아우 문주를 불러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가 어리석고 밝지 못하여 간사한 자의 말을 믿어 나라를 망쳐놓았다. 백성이 쇠잔하고 군사가 나약해졌으니, 누가 나를 위하여 힘써 싸우기를 즐겨하겠는가?” 민심 이반으로 군과 백성은 왕과 사직을 위해 싸워주지 않았고, 그 결과 개로왕은 아차성(阿且城) 아래로 끌려가 죽임을 당하고, 남녀 8천 명이 포로로 잡혀가는 비극을 당했다.

또한 당태종은 635년에 티베트 고원 북단에 위친한 토욕혼(土谷渾)을 정벌하고, 640년에 신강성 투루판에 위치한 고창국(古昌國)을 병탄하였다. 이제 당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당에 대항할 수 있는 나라로는 고구려만 남게 되었다. 당태종은 직방랑중(職方郞中) 진대덕(陳大德)을 사신으로 고구려에 파견하였다. 진대덕은 고구려의 성곽 및 교통요지 등 군사정보를 파악하는 병부의 수장으로 간첩의 임무를 띠고 있었다. 진대덕의 평양성 방문은 고구려 지배층의 내분을 촉발시켰다. 영류왕이 640년에 태자 환권(桓權)을 당에 입조(入朝)시키는 수모를 겪고, 그것도 모자라 적국 장수에게 고구려 지리를 익히도록 길을 열어줬으니 강경파의 불만은 당연한 것이었다. 영류왕은 대당 온건파였고, 연개소문은 대당 강경파였다. 그러나 영류왕을 비롯한 온건파 귀족세력들은 강경파의 불만을 무시하고 급기야는 천리장성 축성 작업까지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연개소문이 강하게 반발하였고, 이에 영류왕과 온건파 대신들은 연개소문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마침내 연개소문은 평양계 귀족세력과 대당 강경파의 지원으로 영류왕을 시해하고 보장왕을 세워 정변에 성공할 수 있었다. 민심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국내 정치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최근 김태우 수사관 폭로사건으로부터 신태민-서영교-손혜원-김현철-손석희-김경수-안희정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민심이 여권에서 급격히 이반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은 김경수 경남도지사 구속사건이다. 김 지사는 지난 대선 당시 드루킹 김동원 씨 일당과 공모해 인터넷 댓글 여론을 조작하고, 그 대가로 김씨 측에 일본 센다이 총영사 자리를 약속한 혐의가 인정돼 지난달 30일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물론 남은 2심과 최종심에서 판결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일한 김 지사의 실형 판결은 현 정권에 커다란 타격이 됐다. 여당에서는 도주‧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상황에서 현 지사를 구속한 것은 명백한 ‘사법농단’이라고 견강부회(牽强附會)하고 있다. 과거정권의 장차관들이 백 명 넘게 재판을 받고 구속되었을 때는 ‘적폐청산’이라고 사법부를 옹호하던 그들이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양두구육(羊頭狗肉)의 발상들이 민심이반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대통령이 김경수의 법정 구속으로 위기를 맞아 도덕성이나 정치적 정당성에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벌써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직접 해명을 요구하고 있으며, 바른미래당도 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여권이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설 민심은 경제가 제일 큰 이슈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하면 현 문제가 극복될 수 있다는 현 정부의 생각은 착각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의 ‘레임덕 현상의 이론과 실제’라는 책에 보면 ‘레임덕 징후 5가지’가 있다. ‘대통령 지지도의 지속적 하락, 대통령 권위 추락, 여권 내부 분열, 친인척이나 측근의 비리 폭로, 차기 대권주자의 차별화’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벌써 레임덕이 온 것은 아닌지. 설 민심은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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