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뉴시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안희정(54) 전 충남도지사가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가운데 안 전 지사의 1, 2심 판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한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 해석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8일 법원 등에 의하면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지난해 4월 모 대학 교수가 학생들을 상대로 수차례 성희롱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자 이에 불복해 제출한 소송 상고심에서 처음 '성인지 감수성'을 논한 바 있다.

'성인지 감수성'은 대개 사회에서 대두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성차별적인 요소를 발견하는 민감성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다. 성별이 다른 데서 빚어지는 상황에 대한 이해도 차이를 인정하자는 취지다. 이는 사회, 문화, 관습, 통념과 관계를 지닌 영역이기에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크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정책을 입안, 집행, 평가할 때 성별 요구와 차이를 감안할 목적으로 '성별영향평가 제도'를 실시하거나, 공공예산 편성, 집행, 결산 등 과정에서 성별 영향을 고려하는 '성인지예산제도' 등을 시행하면서 적극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대법원이 양성평등기본법을 근거로 최초로 언급한 '성인지 감수성'은 명확한 정의를 지닌 법률용어는 아니다. 양성평등기본법 역시 국가기관 등은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당위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대법원은 '성인지 감수성'을 판결문에 명시하면서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1심은 성희롱을 인정한 반면 2심은 피해자가 교수 수업을 계속 수강한 점 등에 착안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고 보기 어렵고, 형사고소하지 않기로 약속한 각서를 공증받기도 한 점 등을 들어 통상적인 피해자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해 피해자가 성희롱 사건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희롱 피해자는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이와 같이 성희롱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후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하는 판결은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경향을 두고 법원이 그동안 남성 중심적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한 것에 대한 반성적인 태도가 내재됐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 1, 2심 판결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이 언급됐으나 각각 다른 재판 결과를 내놨다. 1심은 "이 사건은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갖춘 성인 남녀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정의했고, 2심은 "피해자가 처한 특수한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런 해석 차이로 인해 성범죄 판결에서 해당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성인지 감수성'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안 전 지사처럼 주목도가 높은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보다 구체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대두된다. 용어를 둘러싼 혼란 역시 향후 대법원이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소속 차혜령 변호사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성폭력 판단기준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지난달 진행된 토론회에서 "미성년·장애인 피해자가 아닌 성인 피해자에 대한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사건은 그동안 판례가 많이 축적되지 않아 위력의 행사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이 명확하게 정립돼 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안 전 지사 사건은 선례로서 중요한 의미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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