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말 무성, 건설부동산 업계 시각도 엇갈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을 발표하며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이날 선정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 사업은 총 23개 사업·24조1000억원 규모로 결정됐다. [뉴시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을 발표하며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이날 선정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 사업은 총 23개 사업·24조1000억원 규모로 결정됐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정부가 지난달 29일 24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대상 사업을 발표하면서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절차라는 게 정부의 명분이지만, 막대한 예산이 쓰이는 사업에 사전 평가를 건너뛴다는 것을 놓고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2020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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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투기 조짐...수익성 없을 때 세금투입 우려도


정부는 이날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예타를 면제하는 총 사업비 24조1000억원 규모의 23개 사업을 발표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거제, 전북 군산, 등 고용·산업위기 지역의 어려움을 추가로 고려했다”며 “수도권의 경우에는 대상사업을 선정하는 대신 주민들의 생활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에 발표한 광역교통망 개선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지역별 격차 해소 타개

이어 “아울러 제천~영월 고속도로, 사상~해운대 민자 고속도로 등 지역경제에 기여할 수 있으나 사업타당성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사업은 신속히 예타 조사대상으로 선정할 계획”이라며 “오늘 발표된 사업은 2029년까지 연차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며 재정운용에는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사업 발표 이후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에 대한 국민 인식을 조사한 결과 긍정 평가가 40.4%, 부정평가 43.2%로 긍정과 부정이 팽팽하게 갈렸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30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예타 면제 사업에 대한 긍정평가(매우 잘했음 15.0%, 잘한 편 25.4%)가 40.4%, 부정 평가(매우 잘못했음 20.7%, 잘못한 편 22.5%)는 43.2%였다. '모름·무응답'은 16.4%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도 시끄러웠다. 여당 내에서도 지역구 사업이 예타 면제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하며 “투쟁하겠다”는 목소리를 냈다. 야당들도 일제히 논평을 내고 “총선용 퍼주기”, “측근 챙겨주기용”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수원을 지역구로 둔 백혜련·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예타 면제 사업에 수도권이 제외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결정으로 정부의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특히 신분당선 연장이 예타 면제 대상에서 빠진 것을 놓고 “지역 주민을 또 다시 기만하고 우롱하는 것”이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도 불만을 토로하기는 마찬가지. 자유한국당은 정부의 이번 예타 면제 대상 발표에 대해 “총선용 인기영합, 선심성 퍼주기는 재정폭탄만 안길 뿐”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평화당은 “결국 측근을 챙기기 위한 예타 면제”였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박주현 평화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문재인정부는 ‘새만금 태양광 패널 설치 발표’로 전북을 농락하고 측근 김경수 지사에게 4.7조원의 고속철도 예타 면제를 안겨주었다”며 “낙후지역을 더 소외시키는 것이 문재인정부의 경제철학이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바른미래당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교활한 술수에 불과하다”, “절차고 법이고 다 무시하는 대단한 정권”이라고 혹평했고 정의당은 “대규모 토건사업으로의 회귀를 선언한 것”, “지역 간 갈등 부추기고 혼란만 가중시켰다”고 지적했다.

사업지역과 관련해 부동산 논란도 불거졌다. 서해 남북평화도로의 출발점인 인천 영종도∼신도 도로 건설 사업이 최근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에 포함된 이후 지역 땅값이 들썩이자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단속에 나섰다.
인천시 옹진군은 11일부터 북도면 일대의 부동산 투기 행위를 집중 단속한다고 지난 7일 밝혔다.

단속 대상은 무등록 중개, 시세 조장, 이른바 '떴다방'식 부동산 투기 등이다.
옹진군은 평화도로 예정지와 인접한 북도면 신도리 일대와 최근 부동산 투기 조짐이 나타난 시도리·모도리·장봉리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단속할 예정이다.
이번 단속 과정에서 경미한 사항이 적발될 경우 현장에서 계도하고, 고의성이 있거나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되면 중개업 등록 취소, 업무 정지, 과태료 부과 등 행정 조치와 함께 관련자들을 수사기관에 고발할 방침이다.

대전은 도시철도 2호선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받으면서 노선을 따라 부동산 시장이 들썩거릴 전망이다.

일부 구간은 도시철도 1호선과 충청권 광역철도가 중첩되며 이미 주택 가격이 급등하는 한편, 한 동안 가격이 정체됐던 공동주택 또한 2호선이 관통하며 가격 상승이 예상되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대전지부 소속 자치구별 지회장 5명은 2016년 트램 노선 발표 이후 일부 구역은 이미 주택가격 상승이 반영됐지만, 착공이 본격화되면 한 번 더 반등하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중견·중소업체엔 '그림의 떡'

대규모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의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 소식이 전해졌음에도 건설기업들의 체감경기는 계절적인 영향으로 5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특히 총 24조원에 달하는 예타 조사 면제사업의 상당수가 대형건설업체들의 몫이란 점에서 상대적으로 혜택이 적은 중견·중소건설업체들의 체감경기가 크게 떨어졌다.

박철한 부연구위원 "예타 면제 사업이 주로 대형기업이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여서 중견·중소건설기업들에게는 이번 정책 발표 영향이 제한적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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