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당권 찍고 대권”, 민주 “‘안이박김’ 저주... 대선주자 다 없어질 판”

 

[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차기 대선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론도 연일 대권 잠룡들의 행보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너무 빠른 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화무백일홍 인무천일호(花無百日紅 人無千日好)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당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사고가 터져 나온다. 반면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3주 연속 상승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컨벤션 효과’도 누리고 있다. 특히 황교안 전 총리는 최근 이낙연 총리를 앞지르고 대선 주자 선호도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궤멸 직전까지 갔던 보수 진영의 재건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기회’를 잡으려는 보수진영 대선주자들과 ‘위기’를 느낀 진보진영 대선주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황교안·김진태 등 ‘각축’, 유승민·안철수도 복귀 ‘임박’ 
‘안이박김’ 저주가 유시민 불러내… “킹이든 킹 메이커든 역할 주어질 것”


문화일보가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1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권후보 선호도에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1위,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2위, 이낙연 국무총리가 3위를 기록했다.

자유한국당 차기 당대표 선호도 조사 결과도 대동소이했다. 황 전 총리가 18.7%로 가장 높았고 오 전 시장(11.0%)과 홍 전 대표(7.1%)가 뒤를 이었다. 

한국당 지지자로만 한정할 경우 황 전 총리가 53.6%의 지지를 얻어 홍준표 전 대표(10.7%)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10.1%), 김진태 의원(5.9%) 등을 압도했다.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TK)에서도 황 전 총리는 26.9%를 얻어 오 전 시장(11.5%), 홍 전 대표(5.6%)를 여유롭게 따돌렸다. 부산·울산·경남(PK)에서 역시 황 전 총리(19.3%), 오 전 시장(11.6%), 홍 전 대표(11.0%) 순이었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29∼30일 양일 동안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전화면접(유선 29.2%, 무선 70.8%) 방식으로 진행했다. 응답률은 8.2%이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중요한 까닭은 당선된 대표가 내년 4월 총선 공천권을 사실상 장악하기 때문이다. 자기 계파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그 계파를 당내 주류 세력으로까지 키우는 데 성공한다면, 차기 대선 당내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당권 잡고 대권까지 가는 시나리오다. 

황 전 총리가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 한국당에 입당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당권을 잡아봤자 대권을 잡지 못할 것이라면 굳이 지금 당권에 도전할 필요가 없다. 더 기다렸다 2022년 대선 패배 뒤 자유한국당이 혼란스러울 즈음 입당해 당권을 장악하고 2024년 총선 때 공천권을 행사하는 편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와 맞물려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지지율도 떨어지는 중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의 정당 지지율은 상승세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차기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아울러 정치권은 차기 대선을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양자대결 구도가 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황교안 전 총리 입장에선 자신의 대권 가도를 위한 모든 상황이 갖춰진 셈이다.

다만 이 같은 ‘시나리오’를 황 전 총리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다른 보수진영 대권 잠룡들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찾아온 최고의 ‘기회’를 놓칠 순 없을 것이다. 황 전 총리와 함께 당권 ‘빅 3’로 불리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홍준표 전 대표가 전대에 출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 전 시장은 황 전 총리와 홍 전 대표 등에 비해 중도적 성향의 유권자들을 좀 더 끌어들일 수 있는 확장성이 강점이다. 홍 전 대표도 과거 대선과 지방선거의 참패를 딛고, 최근 유튜브 방송 ‘홍카콜라’ 등을 통해 다시금 세 결집에 나서고 있다. 정치권에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황교안 대 홍준표’ 양강 구도로 점칠 정도로 여전한 저력을 과시중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의 지지율 하락과 황교안 전 총리의 등판으로 분위기가 바뀐 것은 사실이지만 얼마나 갈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관망도 나온다. 당장 황 전 총리가 보수진영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독보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회의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탄핵된 박근혜 정부의 총리이자 대통령권한대행이었다는 점은, 일부 보수 세력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으로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자칫 황 전 총리의 행보가 현 정권이 아닌 전 정권 심판론을 다시금 고개 들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대 연기 불발에 6명 보이콧 강행시 
김진태 ‘다크호스’ 부상 

 

한편 홍준표 전 대표, 오세훈 전 시장, 주호영·심재철·정우택·안상수 의원 등6명이 전당대회 보이콧을 선엄함에따라 생각지 못한 의외의 변수가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반친황계 전선에서 홍 전 대표와 오 전 시장 등이 실제로 보이콧을 선언하고 전대에 불출마 할 경우 전대가 친박계 내부 인사들 간의 경쟁으로 치러질 수 있다는 것. 이는 곧 태극기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김진태 의원이 최대 수혜자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김 의원은 지난달 23일 오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당대표 출마 선언을 가지며 지지자로 부터 3만 책임당원 입당원서를 전달 받으면서 세를 과시한 바 있다.

 

한국당 흥행 성공에
다급한 與·바른미래

 

정치권에서 유승민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 등 바른미래당의 대선주자들 역시 조만간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당장 유 전 대표는 2월 8~9일 당 소속 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7개월 만에 정치 행보를 재개했다. 

유 전 대표가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안 전 대표도 언제까지 관망만 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15일 지지자 모임 ‘미래광장’ 송년모임에 보낸 손편지가 그것을 예고한다. 손편지에는 ‘무더위와 강추위를 겪으면서 우리들은 나이테처럼 더욱 단단하게 성장할 것이라 믿습니다.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적혀있다.

한편 보수진영 대선주자들이 뛰기 시작하면 진보진영 대선주자들도 어떤 식으로든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 이사장이 홍 전 대표에 맞서 유튜브 방송을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나아가 유 이사장의 등장은 보수 진영뿐만 아니라 같은 진보진영 대선주자들에게도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며 대선 시계를 더욱 재촉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 반응이다. 무소속 손금주·이용호 의원의 입·복당을 불허한 것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우상호 전 원내대표가 순혈주의 비판론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낙연 대망론’이 흘러나올 때만 해도 그저 현직 총리라서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수도 있다”라며 “그런데 갑자기 유 이사장이 혜성처럼 등장하자 같은 진영 주자들은 급격히 조바심을 느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선 여권의 대선주자 ‘안이박김(안희정·이재명·박원순·김경수)’ 수난설이 상당 부분 현실화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여권 핵심인사가 차기 주자인 ‘안희정→이재명→박원순’을 탈락시키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 안이박김 소문의 골자다

 

‘안이박김’ 저주 현실로…
박원순 마지막 퍼즐?

 

실제로 김경수 경남지사에 이어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잇달아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지난해 12월 ‘친형 강제입원’ ‘검사 사칭’ 등 사건에 연루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또 부인 김혜경 씨의 아이디라는 의혹이 제기된 ‘혜경궁 김씨’ 트위터 논란, ‘여배우 스캔들’ 등 개인 문제가 잇따라 붉어지면서 개혁 이미지가 크게 퇴색됐다. 당내에선 “이러다 대선주자 다 없어질 판”이라는 볼멘소리까지 터져 나온다. 

물론 아직까지 박원순 서울시장은 건재하다. 그러나 박 시장은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경전철 조기 착공’, ‘광화문광장 설계안’ 등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바 있다. 박 시장이 소문만 무성했던 ‘안이박김’ 퍼즐의 마지막이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를 제쳐두고라도 박 시장의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박 시장은 친문보다는 비문으로 분류된 적이 많고, 당 외의 시민사회 세력이 박 시장의 주된 지지 기반으로 불리고 있다. 2017년 대선 레이스를 조기에 그만둔 이유 중 하나가 취약한 당내 기반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이낙연 총리 역시 대선주자 선호도 1~2위를 기록하고 있는 있지만 이 총리는 ‘총리 대권 징크스’가 걸림돌로 거론된다. 역대 총리 출신들은 한 번도 대권을 거머쥐지 못했고, 최종 또는 중도에 뜻을 접은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이회창, 고건 전 총리의 경우를 꼽을 수 있다. 

결국 이렇게 되면 가장 수혜를 받는 쪽은 유시민 이사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안이박김’으로 대표되는 여권 내 대선 주자들이 잇달아 퇴조하면서 여권 지지층이 더욱 유 이사장에게 눈길을 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올해 들어 발표되는 여러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유 이사장이 이 총리와 함께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은 이 같은 관측에 설득력을 더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유 이사장이 직접 대선 주자가 되진 않더라도 여권의 킹 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노무현 재단은 현실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조직은 아니지만 여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그룹 중의 하나다. 그가 직접 주자로 뛰진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친노 진영의 주요 축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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