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오럴 히스토리]  - 정태익 편
“남북 관계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 어렵다”

일본 국기 [뉴시스]
일본 국기 [뉴시스]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6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정태익 전 주러대사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 외교적 측면에서 볼 때 이집트와의 수교가 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한국이 오랜 기간 열세에 처해 있던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 북한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대사는 그 공로로 외교부 정무차관보로 승진했고, 1996년 3월에 금의환향했다. 정부차관보 재직 시절에도 여러 가지 중요한 외교안보적 현안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 내가 차관보에 취임한 당시 가장 중요한 현안은 북한에 대한 평가와 정책을 공유하기 위해 한·미·일 정책 담당자 간에 긴밀히 협의하는 것이었다. 정무차관보인 나와 국무성 아시아 담당 차관보 윈스턴 로드 전 주중대사, 일본 사토 아주국장 3자가 제주도에서 만나서 정책 협의를 했다. 

당시 주제는 과거에는 북한이 강해서 6·25전쟁 감행 등 한반도 위기 상황이 발생했지만, 지금은 북한이 약해진 상태로 변화했기 때문에 공세를 통해 도발하는 상황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보고, 이에 한·미·일이 공조해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이 핵 문제로 NPT를 탈퇴하고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으며, 비대칭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한·미·일 관계를 이간하는 등 약해진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위해 이탈 행동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을 함께 협의했던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북한 문제를 4자회담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정책을 추진했다. 유종하 대통령 안보수석과 공로명 외무장관이 4자회담을 주도하고 있었다. 

문제는 남한·북한·미국·중국 4자가 모여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데, 일본과 러시아가 빠졌다. 러시아는 분단에서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문제에 깊숙이 관여한 강대국이었다.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연방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약체가 되었다고 4자회담에서 배제된 것에 실망감을 표출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일본 전문가로 알려진 게오르기 쿠나제 주한 러시아대사는 직설적인 비판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게오르기 쿠나제 대사는 외교부와 공식 채널을 통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언론 인터뷰를 하는 방법으로 러시아가 4자회담에 배제된 것에 대해 불평했다. 

공로명 장관이 쿠나제 대사에게 돌출 행동을 자제하도록 주의를 주라고 해서, 정무차관보인 내가 쿠나제 대사를 사무실로 초치해 주의를 주었다. 

그는 내게 외국대사를 공식적으로 “질책하는 것이냐”고 따졌다. 차관보인 나는 “당신의 행동이 주재국에서 근무하는 외교관으로서 처신이 적절치 않기 때문에 이를 훈계하는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중대한 회의에 러시아가 배제된 것이 러시아의 자존심을 많이 상하게 했던 모양이다. 일본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거다.

러시아 국기 [뉴시스]
러시아 국기 [뉴시스]

 

-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스스로 한반도 문제에 중요한 이해 당사자라고 인식하고 깊이 관여해 왔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논하는 4자회담에 배제됐으니, 크렘린 입장에서는 ‘대국의 자존심’에 지대한 손상을 가한 것이라며 격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4자회담에서 러시아를 배제했던 정책을 현시점에서 본다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 당시 우리 외교는 4자회담을 통해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선택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남북 간에 기본적인 관계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입증됐다. 남북기본합의서가 이행되지 않고 4자회담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는 한반도에 이해를 가지고 있는 일본과 러시아가 배제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영삼 대통령 때의 경험이 있어서 2차 핵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러시아와 일본이 포함되는 6자회담이 열리게 됐다. 6자회담도 9·19공동성명 채택이라는 성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북한의 반대로 재개되지 않고 있으며, 북한의 핵 도발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 1년 동안 외교부 정부차관보로 재임한 이후, 다시 기획관리실장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획관리실은 인간의 신체에 비유하면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기획관리실장으로 재임할 때 외교부의 변혁과 발전을 위해 어떤 문제에 주안점을 두고 일했나?

▲4차회담이 열리고 있는 중이라 정무차관보 자리를 송영식 대사에게 넘겼다. 인사·조직관리·예산을 다루는 기획부서는 어느 부처에서나 중추기관이므로 총무과장과 법무담당관을 역임한 나를 기획관리실장으로 보임한 것 같다. 

예산과 조직을 다루는 관계 부처에 인맥은 물론 국회와 교섭 필요가 있으니, 기획관리실을 맡아 업무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외교부 기획실장은 외교 예산을 확대하고 외교관 인사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하는 중요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리다.

당시나 지금이나 외교부는 대한민국 전체 예산의 1% 확보를 목표로 삼고 있으나, 한 번도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남북이 분단되어 대치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 한반도 평화와 안정, 나아가 평화적 한반도 통일을 담당할 부서의 예산이 국가예산의 1%가 되지 않은 것은 비정상이다.

- 선진국의 사례가 1%인가?

▲북유럽 나라들은 외교부 예산으로 총예산의 3~4% 정도를 쓴다. 북유럽은 남북문제라는 세계적 차원의 소득격차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선진 국가는 전체 GDP의 1%를 대외원조에 공여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UN은 UN개발계획이나 UN무역개발협의회라는 기구를 통해서 세계적인 남북문제(빈부격차 문제)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북구 국가는 대외 원조를 위해 많은 예산 책정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외 원조도 국력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나는 외교부 예산 증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외교부의 경우 기획관리실장의 직급이 1급 위인 특1급인 데 비해 예산실장의 직급이 1급이라서, 고시 선배이며 직급 상위자가 외교부 기획실장직을 맡아 고시 후배인 예산실장을 상대로 예산 확보 활동을 할 때 어려움이 있다. 재외공관 국유화 사업 예산, 재외근무 외교관 임차료 증액, 재외근무수당 인상 등 소요 예산 확보를 위해 체면 불구하고 예산투쟁 노력을 했다.

대외정책 업무도 사실은 기획관리실 소관 사항이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외교정책을 수립하는 업무를 기획관리실이 모두 감당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해서, 외교정책실을 신설하는 조직개편을 했다. 특1급을 외교정책실 실장으로 보임하는 제도 혁신도 단행했다. 차관보 자리를 하나 더 신설하는 조직개편 문제이기 때문에 어려운 과제였다. 

외무부는 미국의 국무부처럼 국정 전반을 관장하는 특별한 부서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부처를 동일 기준에 따라 다루는 제도 하에 놓여 있다. 내가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조직개편과 예산 확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공무원 위의 공무원이라는 점이다. 인사와 조직을 관리하는 총무처와 예산을 다루는 기획예산처의 힘이 막강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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