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모임 이후 귀가하다 사망한 배달노동자, 업무상 재해 인정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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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사업주가 참석한 저녁모임에 참여했다가 사업주 소유의 오토바이를 몰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로 숨진 근로자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1심 결과가 2심에서 뒤집혀 이목을 끌고 있다. 이로 인해 업무상 재해를 해석하는 사회적 관점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강서구 소재의 중국음식점에서 일용제 배달 근로자로 근무하던 A씨는 지난 2016년 7월경 사업주가 참석한 저녁모임에 갔다. 이후 A씨는 사업주 소유의 배달용 오토바이로 집에 돌아가던 중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사고 이후 A씨 유족은 “업무상 회식에 갔다가 발생한 업무상 사고”라고 주장하며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신청했고, 근로복지공단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해 패소했다.


“친목 위한 술자리” vs “사업주 주관 행사”


이후 A씨 유가족은 해당 사건 사업장에 근무하는 전체 근로자(‘총 직원 수’) 중 몇 명이 참석했느냐를 기준 삼은 재판부와 달리 사업장의 근로자 중 참석할 수 있었던 인원을 기준으로 해야 하고, 원심판결에서 A씨의 오토바이 운전행위에 관한 사실 오인의 위법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1심에 불복해 항소를 냈다.

지난달 16일 2심을 심리한 서울고등법원 행정6부(박형남 부장판사)는 지난달 16일 “사장 부부가 주재한 모임이 즉흥적으로 이뤄지기는 했으나 이들이 직원을 격려·위로하는 취지에서 마련한 점 등에 비춰보면 당시 저녁모임은 사용자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는 ‘사업주가 주관한 행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A씨가 모임 이후 자신의 집으로 가는 통상적인 경로로 귀가한 이상 모임을 마치고 귀가한 행위는 통상적인 출퇴근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판단, 업무상 사고로 인정해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사용자의 전반적 지배·관리 하에 개최된 회사 밖의 행사나 모임이 종료됐는지가 문제될 때는 여러 사정을 종합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공정하게 보상한다’고 하는 산업재해보상법의 목적에 맞게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소송의 대리인 유재원 메이데이법률사무소 변호사는 1심을 취소한 2심 선고 결과와 관련, “1심과 2심은 사업주의 행사로서 회식 중, 회식 직후의 사고였는지 여부와 출퇴근 재해 판단 여부라는 동일한 쟁점을 가지고 있다”며 “업무상 회식의 개념을 넓게 보느냐, 좁게 보느냐의 차이로 상반된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근로자의 시간은 사업주가 나오라면 나오고, 가라면 가야하는 등 사업주 지배 하에 놓여 있다. ‘시간 통제’를 경험하는 것”이라며 “사업주의 지배, 그 시간의 통제를 이해하는 관점에서 ‘사업주의 행사’라는 개념이 넓게 인정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전했다.

이에 앞서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유진현 부장판사)는 A씨가 참석한 저녁모임을 “사업주는 직원들에게 ‘관심 있는 사람은 오라’는 취지로 이야기했을 뿐 모임에 참석하라는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다”며 “업무상 회식이 아니라 동료들과의 친목을 도모하는 술자리로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봤다.

이 밖에도 실제 당일 회식에 참여한 인원도 전체 직원의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는 등 고려할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구 산재보험법)이 명시하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 지난해 6월 패소 판결했다. 구 산재보험법은 근로자가 사업주의 지시로 참여한 행사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업무상 사고로 볼 수 있다고 규정한다.


‘사고 원인’ 두고도 엇갈린 판단 내놔


사고 당시 A씨가 음주 상태였다는 점에 대해서도 두 재판부는 다른 입장을 내놨다. 사건이 벌어진 저녁모임에서는 맥주 500㏄가 제공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모임 이후 집으로 귀가하던 중 한 사거리에서 빨간불 신호를 어기고 운전을 하다가 승용차와 추돌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해도,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사고의 원인이 됐다면 업무상 사고로 볼 수 없다”면서 “결국 A씨의 음주운전과 신호위반이 교통사고의 직접적 원인으로 보이는 데다 A씨의 행위 자체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이나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는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A씨의 음주운전 여부와 관련해 “저녁모임에서 최초 맥주 500㏄ 한 잔이 제공됐다고 하나 A씨가 어느 정도의 술을 마셨는지에 관한 객관적 자료는 제출되지 않았고, A씨는 사업주 등이 인식한 상황에서는 충분히 오토바이 운전이 가능한 상태에서 귀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와 더불어 “A씨가 적색신호에 신호위반으로 직진한 과실로 교통사고가 발생한 점은 앞서 인정한 바와 같다”면서도 “당시 A씨의 상태, A씨의 오토바이와 상대방 차량의 속도 등을 알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없는 사건에서 A씨가 오로지 자신의 범죄행위로 인해 사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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