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모국으로 불리는 영국에서 13세기 의회가 처음 소집되었을 때 정당은 존재하지 않았다. 의회는 신분에 따른 이해를 대변하는 신분제 의회였다. 그랬던 의회가 부르주아 계급을 포함하고 더 나아가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그리고 여성에게까지 문호를 개방하면서 전체 국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민적 합의체로 발전했다.

이에 따라 이들 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이 생겨났고, 그러한 정당들이 의회정치의 중심에 서게 되는 정당정치가 꽃을 피우게 되었다. 그래서 독일의 정치학자 지그문트 노이만(Sigmund Neumann)은 “정당은 현대정치의 생명선이며 그 성질과 조직은 민주정치의 승패를 판정한다”고 갈파했다. 더 나아가 칼 뢰벤슈타인(Karl L¨owenstein)은 “현대국가는 정당국가이며, 국민주권의 자리를 실제적으로는 정당주권이 차지하고 있다”며, 정당의 중요성과 함께 정치세계에서 정당이 가진 무소불위의 힘을 경계했다.

우리나라에서 국회가 처음 소집된 것은 1948년 5월 31일이었다. 제헌국회 국회의원 200명의 정당별 분포를 보면, 대한독립촉성국민회 55석, 한국민주당 29석, 대동청년단 12석, 조선민족청년단 6석,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 2석, 무소속 85석, 기타 11석이다. 무소속 의원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헌국회부터 의회정치의 중심은 정당이었던 것이다.

국회의장 직속 국회혁신자문위원회가 ‘상시국회 운영체제 마련을 위한 매월 임시회 집회 방안’을 국회의장실에 전달했다고 한다. 심지연 자문위원장은 ‘일하는 국회’로 탈바꿈하자는 취지인 만큼 의장실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그런데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을 것 같다. 상시국회를 열기 위해서는 국회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는 각 당이 합의해야 하는 사안이다. 정당의 입장에서 상시국회는 취지는 좋지만 계륵(鷄肋)과 같은 것이다. 상시국회를 통해 국민들에게 ‘일하는 국회’를 연출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시국회를 만들어 놓고 상시적으로 욕을 먹을 일을 그들은 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1월에 소집된 임시국회가 공전 중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김태우, 신재민, 손혜원 사건에 이어 조해주 선관위원이 청문회 없이 통과된 데 대해 반성이 없다”는 것을 국회 공전의 이유로 들었다. 이에 여당인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야당도 정쟁을 키울 생각만 하지 말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국회를 열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면서 자유한국당을 압박했다. 양당의 원내대표 모두 국회 정상화를 얘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들의 발언은 정당정치의 강화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는 법률을 만들고, 예산을 심의하며, 행정부와 사법부에 대해 견제와 감시를 하는 국민의 대표기관이다. 그리고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각각의 국민들을 대표하는 각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모여서 정쟁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정당들이 국회에서 정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실탄은 의석수와 국민 지지다. 21대 국회의원선거 준비에 각 당은 여념이 없다. 모든 것은 내년 국회의원선거로 귀결된다. 지난 7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정당지지도는 민주당이 37.8%였고, 자유한국당은 29.7%였다. 그림자도 보이지 않던 민주당의 꼬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쟁을 멈출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정당으로 구성된 국회의 한계는 국민들에게 정쟁의 장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정당 간의 적당한 합의가 필요하다. 그것이 없으면 지속적인 정쟁이 이어지고 정당정치는 퇴행에 이를 것이다. “일은 매일 안 해도 되니 일할 때는 일하자!” 이것이 지금 국회와 정당에 주어진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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