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명예회장 선영, 시간차 참배…직접 만남 불발

범 현대가가 21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0주기를 맞아 참배를 위해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선영에 대거 집결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만남이 불발되면서 현대건설 인수전으로 쌓인 앙금을 털어버리지 못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또 이날까지 현대차그룹이 현대그룹에 구체적인 화해제안을 보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두 그룹 간 관계가 여전히 서먹한 것 아니냐는 분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 정 회장과 현 회장이 정주영 회장의 10주기를 맞아 화해무드로 접어들고, 현대건설과 관련한 갈등을 씻어버릴 것으로 내다봤지만 구체적인 내용 없이 답보 상태로 봉합되는 형국이다.

21일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 선영에는 오전 일찍부터 정 명예회장의 10주기 기일을 맞아 범 현대가 인사들이 잇따라 방문했다.

오전 10시께 시작된 가족 참배에는 정 명예회장의 3남인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과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참석했다. 정몽준 의원은 해외 출장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앞서 정몽구 회장은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을 대동한 채 이날 오전 9시47분께 부친인 정 명예회장 선영에 도착했다.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9시10분께 먼저 도착해 있었다.

가족 참배를 끝낸 정 회장은 오전 10시18분께 승용차를 탄 채 돌아가며 취재진들에게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선영을 빠져나갔다.

정의선 부회장도 참배를 끝내고 10시25분께 길을 나섰다. 어제 제사 때 가족들과 무슨 얘기를 나눴냐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좋은 얘기 나눴습니다"라고 짧게 말하고 차를 타고 돌아갔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10시28분께 딸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와 함께 선영에 도착했다. 두 회장이 가족 참배를 함께 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정몽구 회장이 돌아간 직후 도착해 가족 참배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정 회장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매년 정 명예회장 기일에 선영을 참배했던 현 회장은 오전 9시20분께부터 기다리고 있던 현대그룹 임직원 200여명과 함께 선영에서 참배한 후 11시께 돌아갔다.

한편 이날 선영 참배에 참석했던 하종선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은 기자들과 만나 "아직까지 현대차로부터 구체적인 화해제안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추가적인 경영권 분쟁이나 소송 가능성에 대해서도 "현대차에 달려있다"고 못 박았다. 현대차그룹의 화해 제안 보도 이후 소송을 취하하는 등 즉각적인 화답을 했지만, 현대차로부터 이렇다 할 제스처가 없었던 만큼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하 사장은 어떤 구체적인 제안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현정은) 회장님이 이미 말씀하신 걸로 안다"고 짧게 말했다. 즉 지난 14일 정주영 10주기 추모음악회에서 현 회장이 언급한 지분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당시 현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아직까지 화해 제의를 받지 못했다. 현대상선 지분은 우리에게 와야 한다"며 구체적인 화해 조건을 제시했다. 이는 지난 10일 열린 10주기 추모 사진전에서 "상선 지분을 넘기지 않겠다"고 언급한 정몽구 회장의 발언에 대한 답변이기도 했다.

이를 들어 재계에서는 두 회장의 엇갈린 행보와 발언을 들어 사실상 두 그룹 간 화해 무드가 답보상태에서 유야무야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지난 10일 정 명예회장 사진전에서 두 회장이 환한 미소로 악수를 했지만, 21일 가족 참배에 현회장이 따로 참배하며 화해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일 제사에 함께 참석하면서 화해의 선결 조건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가 오갔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두 회장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선영 참배 이후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어젯밤) 좋은 얘기 나눴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정몽준 의원의 말처럼 '집안에서 가족끼리 사업 얘기는 하지 않는' 만큼 범현대가 측은 구체적인 화해 방안까지는 논의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