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심신미약 이유로 감형될까 두려워…엄벌해 달라”

지난해 12월 강서구에서 50대 남편이 ‘아내를 죽이라’는 환청을 들었다며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가해자가 심신미약 판정을 받았다는 결과가 전해지자 유족들은 이를 이유로 가해자가 감형을 받게 될까 두렵다며 우려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2월 강서구에서 50대 남편이 ‘아내를 죽이라’는 환청을 들었다며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가해자가 심신미약 판정을 받았다는 결과가 전해지자 유족들은 이를 이유로 가해자가 감형을 받게 될까 두렵다며 우려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지난해 12월 강서구에서 50대 남편이 ‘아내를 죽이라’는 환청을 들었다며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남편이 그동안 아내를 상대로 가정폭력을 자행해 온 전력이 밝혀지면서 더 큰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됐다. 최근 가해자가 심신미약 판정을 받았다는 결과가 전해졌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이를 이유로 가해자가 감형을 받게 될까 두렵다며 우려하고 있다.

 

폭력,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 안 하는 ‘반의사불벌죄’…대응책 요구
정춘숙 의원 “가정폭력 가해자와 사는 것, 고문기술자와 사는 것과 같아”

 

지난해 12월 7일 오전 2시께 안모(55)씨는 서울 강서구 소재 자신의 주거지에서 주방에 있던 흉기를 휘둘러 아내 A씨를 숨지게 했다는 혐의를 갖는다. 안 씨는 당시 다른 방에 있던 딸이 현장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해 붙잡혔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그는 “아내를 죽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며 횡설수설을 늘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안 씨는 알코올 중독성 치매를 앓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안 씨가 지난 2015년과 2017년 각각 딸과 아내를 폭행한 혐의로 입건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아울러 가정폭력이 살인이라는 극단적 형태로까지 번진 안타까운 사건이라는 점과 또 일명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유사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가정폭력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대안책 강구가 사회적 논의 테이블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지난해 12월 10일 서울남부지법에 의하면 문성호 영장당직판사는 전날 살인 혐의를 갖는 안 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고 “도주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이후 안 씨가 심신미약 판정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족들은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감형되어서는 안 된다”며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엄벌을 요구하고 있다.

피해자의 유족 B씨는 지난달 일요서울과의 만남에서 “(안 씨가)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일을 막고자 이 문제를 공론화할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신고 전력에도
‘심신미약’ 판정?


B씨에 의하면 안 씨는 밖에서와 가정에서의 모습이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밖에서는 호인이라는 평을 들었으나 가족들을 상대로 폭언과 폭행 등 가정폭력을 일삼아 왔다. 이에 관해 B씨는 “아버지는 밖에서는 평가가 좋았다. 오히려 가족들이 자신을 소외시킨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B씨는 2015년 안 씨가 자신에게 심한 정도의 가정폭력을 행사해 신고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당시 B씨는 처벌을 원해 법정까지 갔으나 A씨가 ‘처벌을 받지 않게 하자’며 그를 설득했다. 

A씨의 설득에 B씨는 선처를 결정했고, 이로 인해 안 씨는 가정법원으로부터 7호(의료기관에의 치료위탁)와 8호(상담소등에의 상담위탁) 처분 정도를 받게 됐다. B씨는 선처 이후 안 씨가 자신에게 “또 다시 신고해 봐라. 신고해도 난 이렇게 지낼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오히려 만행이 더욱 거세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뒤인 지난해 안 씨는 A씨를 상대로 가정폭력을 행사해 또다시 신고를 당했다. 당시 A씨는 “남편이 욕하면서 목을 조르고 폭행한다”며 경찰에 신고를 접수했으나 처벌불원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폭행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안 씨는 이 때도 가정법원의 보호처분 결정을 받는 데 그쳤다.

B씨는 “어머니는 나(B씨)나 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돼 그러한 결정을 하신 것”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가정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한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에 대해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의지에 반(反)하여 처벌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문제는 우리나라가 가정폭력을 가볍게 인식한다는 데에 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심각한 경우에는 검·경이 처벌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고 이후) 피해자가 위협을 당할 수도 있고, 나중에 보복이 두려워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즉각 분리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처벌을 원하느냐’고 물을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가) 두려워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가정폭력, ‘가정사’ 아닌
‘국가적 범죄’로 인식해야


B씨는 “아버지는 다른 식구들에 비해 유난히 나에게 심하게 폭언을 했고, 2015년 사건 이후에는 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고 판단해 집에서 독립했다”며 “내가 나와 있으면 다른 가족들에게 해코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고 토로했다.

B씨에 의하면 A씨는 ‘안 씨 때문에 너무 힘들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취지로 그의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안 씨의 형은 ‘안 씨의 보복이 두려워 도와주기 어렵다’며 이를 거절했다. 이처럼 안 씨의 폭력성은 다른 형제들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안 씨가 최근 심신미약 판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B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동생들은 아빠가 우리를 죽이는 악몽을 꾼다. 아빠가 다시 사회에 나온다면 (우리가)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는다”며 “제발 엄중한 처벌을 부탁한다”고 주문했다.

가정폭력 범죄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경찰의 미흡한 초기 대응도 논란이 됐다. 가정폭력 문제를 국가적 범죄가 아닌 단순한 ‘가정사’로 치부하기 때문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가정폭력을 사적인 문제로 보게 될 경우 ‘집안일이니 집에서 해결하라’는 식의 태도를 갖기 쉬워 국가 공권력 개입이 어려워진다”며 “하지만 이를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여성·아동 인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범죄로 본다면 국가 공권력이 거침없이 개입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가정폭력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정폭력 가해자와 함께 사는 것은 고문기술자와 같이 사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여성들이나 아동들에게 가해지는 신체적·정신적인 폭력인 셈”이라며 “20년 전 관련 법안은 만들어졌으나 현실에 적용되고 있는 부분이 미비하기 때문에 조속한 개정안 통과와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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