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시스템 ‘구멍’ 뚫린 국정원


북한 핵실험 관련, 국가정보원의 안일한 대처가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사전 징후 판단부터 오류를 드러낸 가운데, 고해상도 위성 ‘아리랑 2호’의 촬영영상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강성종 의원은 지난 16일 과학기술부 국정감사에서 “아리랑 2호를 이용해 북한의 핵실험 여부와 장소 확인 등에 따른 혼란을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고 공표한 지난 3일부터 9일까지 아리랑 2호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국정원이 북핵 실험 장소를 왜 제대로 지목하지 못했는가의 의문은 지난 7월 발사된 다목적 위성 ‘아리랑 2호’가 풀어줄 조짐이다.

항공우주연구원서 관리
국정원은 애초 핵실험 장소를 두고도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지난 9일 핵실험 장소를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라고 발표했다가 오후에는 무수단리에서 48km 떨어진 김책시 상평리로 수정했다.
핵실험을 최초로 감지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도 국정원과 마찬가지였다. 핵실험 나흘 뒤인 13일 함북 화성군으로 진앙을 수정했으나, 15일에는 함북 길주군으로 다시 바꿨다. 연구원의 수정 발표 위치는 핵실험 첫날 미국 지질조사국 및 일본 기상청이 지목했던 곳과 일치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처음 핵실험 장소로 지목된 곳과 최종 발표된 곳은 서로 50㎞나 떨어져 있는 거리. 한국 기상청과 미국 지질자원연구소, 일본 기상청은 모두 최초 핵실험 위치를 함북 길주군으로 판단한 바 있다.
이와 과련, 여당 소속인 강성종 의원은 북핵 위기동안 2,663억원이나 투자한 아리랑 2호의 활용 여부를 과기부 국감장에서 질의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과기부의 실수보다는 국정원의 직무유기”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기부 산하 항공우주연구원에서 관리하지만, 아리랑 2호가 ‘국가 안보 및 재난에 최우선으로 활용하기 위해 발사된 위성’인 이상, 국정원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이번 사태는 국정원의 직무유기라는 지적이다.

사진공개 여부 국정원 사안
물론, 국정원은 핵실험 이전 아리랑 2호를 이용해 북한 핵실험 의심 지역에 대해 두 차례 위성 촬영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항공우주연구원 백홍렬 원장은 “북한의 핵실험이 있기 전인 지난 3일부터 8일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국정원이 요구한 두 개의 좌표에 대해 아리랑 2호를 이용해 사진촬영을 했다”고 했다. 백 원장은 이어 “국정원이 위성사진을 직수신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사진을 확보했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다”며 “위성 사진 공개여부는 국정원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국정원이 북핵 실험 장소를 두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 강 의원측 관계자는 “아리랑 2호가 북한의 핵실험 강행 염려가 제기된 3일부터 북한지역을 촬영했다면 시설과 장비의 이동뿐 아니라 9일 핵실험 발표 이후 함몰 등 핵실험 시 나타날 수 있는 지표 변화를 포착해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광범위한 지역의 지표면을 관측하는데 있어 ‘아리랑 2호’와 같은 저궤도, 비정지위성이 가장 효과적이며, 핵실험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도 지진파를 감지해 분석하는 것과 방사능 측정은 위성에 비하면 극히 보조적인 수단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물론, 아리랑 2호가 고해상도 위성이라지만 한반도를 24시간 감시하기 위해선 최소한 4기의 인공위성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그렇다 해도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고 공표한 지난 3일부터 핵실험 이후까지 북한 지역을 촬영한 영상을 가지고 핵실험 여부를 판단하지 못한 이유가 무언인가에 있다.
아리랑 2호는 해상도가 흑백 1m인 카메라를 장착한 고해상도 위성이다. 지난 9월28일 촬영한 영상이 공개됐을 때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구를 정복한 것 같은 쾌감이 든다”라고 했을 정도로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회 정보위원회 주변에선 3일부터 8일까지 촬영한 사진은 함경도가 아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에서 요구한 좌표와 북한 핵실험 장소가 일치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한 9일 핵실험 강행 발표 직후 한반도를 통과하고 있었음에도 북한지역을 촬영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오전 10시35분경 직후 오전 11시 전후에 한반도 중심상공을 통과하고 있었지만, 검·보정을 이유로 남한쪽을 촬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경도 궤도 변경 언제든 가능
게다가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은 현재 검·보정중인 아리랑 2호는 매일 두 차례 한반도 상공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 의원측 관계자는 “항공우주연구원에 설치된 지구관제국에서 위성에 명령을 보내면 얼마든지 패스(경도 궤도) 변경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2~3일에 한 번은 한반도를 찍을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발표한 3일 이후 국정원이 핵실험을 심각한 사태라고 판단했다면, 9일 이후는 물론 이전에 수 차례 북한의 특정지역을 촬영할 수 있었다. 핵실험 장소 확인에 따른 혼란이 국정원의 안일한 대처로 모아지는 이유이다.
애초 북한이 핵실험을 예고한 3일 국정원은 “협상용”이라고 했다. 또 “실험을 하더라도 4∼6주 내에 실시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게다가 북한이 핵실험 사실을 발표하기 30여 분 전까지도 국회 정보위 회의에서 “현재로서는 핵실험 동향이나 징후가 없다”고 보고했다.
한편, 국정원이 3일부터 8일까지 항공우주연구원에 사진 촬영을 요구했는지도 ‘의혹’으로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애초 백 원장은 “3일에서 9일까지 촬영 요구가 없었다”고 했다가, 국감 이후 뒤늦게 해명자료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정정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리랑 2호와 국정원을 둘러싼 의문은 내달 국회 정보위 국정원 국감에서 또 한번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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