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뉴시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법원이 검찰 기소 하루만에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 사건을 담당할 재판부를 배당함에 따라 법정 다툼이 가시화되고 있다.

12일 법원에 의하면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사건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에 배당됐다. 재판부는 향후 절차 등을 가다듬는 준비기일을 진행한 후 본격적인 공판에 임할 방침이다.

법정에서는 ‘직권남용’ 혐의가 양 전 대법원장의 유무죄를 가릴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시사한다. 형법 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최대 징역 5년의 형벌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전날 양 전 대법원장을 47개의 혐의로 구속기소할 당시 이중 41개 혐의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적용했다.

이러한 판단은 사법행정의 최고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이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법원행정처 심의관 등 판사들에게 업무범위를 넘어선 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취지다. 양 전 대법원장이 특정 재판에 개입할 목적으로 문건 작성·검토 등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주요하게 다뤄졌다.

이에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에서 발생한 일련의 일들이 대법원장의 직무범위에 해당하는지, 그 권한을 넘어 위법한 것인지 여부를 놓고 치열한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진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에서도 이 같은 태도를 견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는 실무진들이 한 일이라거나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등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법정에서도 '지시를 하거나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는 취지로 직접적인 공모 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대법원장의 직무범위 내로 '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전원합의체 재판장으로 대법원 사건에 관해 논의할 수 있고 판사들 인사권이 대법원장에게 있는 점 등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도 '물의 야기 법관' 문건을 보고 받은 사실 등에 대해서는 시인하면서도 정당한 인사권 행사라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다.

하지만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위치가 사법행정의 최종 결정권자인 사법부 수장인 점을 고려했을 때 그의 지시나 보고 없이 이 같은 조직적인 행위들이 일어날 수 없다고 봤다.

검찰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 및 판사 해외 파견 등 조직의 이익을 획득코자 청와대 등의 지원을 받기 위해 재판에 개입했고, 사법행정에 부담을 주는 판사들의 인사조치를 검토하거나 실제 단행하는 등의 행위가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판사들에게 관련 문건을 검토·작성하고 담당자들에게 전달·보고토록 지시·관여했다는 골자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것으로 여겨지면서 결국 재판부 판단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직권남용 혐의는 국정농단 사건부터 사회적 주목을 받아왔는데, 엇갈린 판단으로 다양한 해석이 제기됐다. 일부 사건에서는 직권남용 범위를 좁게 해석하면서 입증이 쉽지 않다는 평가도 나왔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에게 다스 미국 소송 지원을 지시한 직권남용 혐의가 1심에서 무죄로 인정됐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외형적으로 공무원의 일반적 권한에 속해야 하는데, 이 전 대통령의 지시를 인정할 수는 있지만 대통령의 직무권한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이유였다.

이 밖에도 일명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보수단체 자금 지원을 요구한 행위도 지난해 1심에서 직권남용 혐의가 무죄로 판단됐다. 강요 혐의는 유죄였지만 이 역시 권한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반면 안태근 전 검사장은 후배인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뒤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혐의로 지난달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당시 검사 인사를 다루는 법무부 검찰국장의 업무를 남용해 인사담당 검사에게 원칙과 기준에 반하는 인사를 하도록 했다며 유죄로 본 것이다.

이는 '판사 블랙리스트' 혐의와도 비슷한 양상을 띠어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 심사에서 이 부분에 주목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양측 주장과 증거 등에 비춰 혐의별로 유무죄를 각각 판단할 것으로 예측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외에도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공무상비밀누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등 손실 등 혐의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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