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예정인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스몰딜’과 ‘빅딜’ 사이에서 어떤 수준의 합의가 이뤄질지를 두고 이견이 분분하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동결 수준에 머무르는지, 혹은 더 나아가 검증이나 폐기 수준에 달하는지를 기준으로 ‘스몰딜’과 ‘빅딜’의 범주를 구분한다. 현재까지는 ‘빅딜’로 귀결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여러 개의 ‘스몰딜’이 단계적으로 진행된다면 ‘빅딜’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낙관적인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실질적인 ‘성과물’을 만들어 내고자 혈안이 돼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자칫 추상적 최종 목표만을 내세운 채 미국의 안보이익만을 중심으로 ‘스몰딜’을 하게 되면 이는 ‘무늬만 비핵화’에 불과하고 결국 우리나라는 안보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 미군을 ‘협상 카드’로 들고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 핵 폐기·검증 초점... 성과 없을 시 北 사실상 핵보유국
- “트럼프, 주한미군 ‘교섭 카드’로 쓸 수도… 리스크 고스란히 文 정부 몫”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현지시간으로 지난 11일 워싱턴DC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여야 대표단과 만나 비핵화 협상에 대한 간략한 경과를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지난 설 연휴 기간 진행한 방북 협상에 대해 “12개 이상의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북미 정상회담,
스몰딜 모아 빅딜 효과

이 같은 비건 특별대표의 발언에 따라 북미 2차 정상회담 국면에서 전개될 북미 간 수 싸움 판의 규모도 대략적으로나마 짐작이 가능해졌다. 현재 북미 간 논의할 의제로는 풍계리 핵실험장·동창리 엔진시험장·미사일 발사대 폐기 및 검증, 영변 핵시설을 비롯한 플루토늄·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중단 등 비핵화 조치와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평화협정 체결 논의, 대북 민간투자 지원, 개성공단ㆍ금강산 관광 재개를 비롯한 일부 대북제재 완화 등이 거론된다.

전문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이른바 ‘빅딜’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등 핵 관련 시설 일부를 폐기하는 조치를 취하고 미국이 대북 제재 완화에 해당하는 보상 조치로 응답한다는 수준으로 전망됐다. 2차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협상의 판이 완전히 새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을 바탕에 둔 전망이었다. 그러나 협상의 당사자인 비건 특별대표의 최근 발언은 2차 정상회담 후에도 현재의 비핵화 협상 국면이 획기적 수준의 변화는 없을 것임을 예견케 한다.

반면 대표적인 스몰딜로 언급돼 왔던 것은 ICBM동결·폐기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그치는 것이다. 핵물질과 핵시설 처리 등 의미 있는 진전이 없이 추가 협상 로드맵마저 요원해진다면 결국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핵폐기(FFVD)’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 만큼 ‘스몰딜’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12개 의제가 각각 ‘스몰딜’로는 평가되지만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추가적인 합의를 이끌어 낸다면 결국 ‘빅딜’로 귀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차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이 ‘원샷’ 방식의 협상 국면에서 ‘단계적 동시행동’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기존 평가와도 맥락이 닿는다. 단계적 동시행동은 북한이 단계적으로 비핵화의 구체적 조치를 취할 때마다 이에 대한 보상이 제시된다는 뜻이다.

‘구체적 성과’ 향한
트럼프와 김정은의 수 싸움

다만 한 가지 변수는 존재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걸린 내년 대선(11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어떻게든 북미 관계에 의미 있는 한 획을 그은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것만이 재선을 담보하는 것이라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엔 북한이 회담 2주 전에 일정을 공식 발표했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위협 발언을 문제 삼아 회담을 취소했다가 김정은의 ‘사과성 친서’를 받은 뒤에야 회담 개최 일정을 정했었다. 그런데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미국과 북한의 입장이 1차 정상회담 때와 완전히 뒤집힌 모양새다.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 6일 평양으로 들어가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와 실무협상을 했다. 비건 대표는 이 자리에서 양측의 요구사항을 제시만 하고 구체적 협상은 진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불쑥 나섰다. 비건 특별대표가 평양에서 서울로 귀환하기도 전인 지난 9일 오전(한국시간) 트윗을 통해 2차정상회담이 하노이에서 열린다고 발표했다. ‘구체적 진전을 이루지 못한’ 협상 결과를 놓고 이렇게 회담 진행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한 전문가는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특사 일행의 미국 방문 당시 김 부위원장이 2차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최후통첩’을 했을 것이다”라며 “이는 미국이 제재 완화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면 핵과 미사일 실험과 생산을 다시 재개할 수도 있다는 위협이다. 재선을 코앞에 둔 트럼프 입장에선 반드시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보면 한은 최종 목표인 CVID 핵 폐기와는 거리가 먼 입장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은 작년 말 중앙통신 논평으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는 주한미군 철군 등 조건이 붙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결국 북한은 여전히 불완전한 비핵화와 미국의 한국 방위 약화를 꾀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뮬러 특검의 불리한 진행 등으로 국내 입지가 어려워진 트럼프 대통령이 철저한 미국우선주의 원칙하에 섣부른 ‘스몰딜’을 하게 될 경우 그 리스크는 고스란히 문재인 정부가 짊어져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이 하반기부터 2020년 대선 전에 돌입하게 되므로 이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북한은 사실상 핵무장 국가 대열에 바짝 다가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교섭 카드로 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며 “방위비를 터무니없이 올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주려면 주고 말라면 말라는 식이다. 아마 우리가 반기를 들면 그 핑계로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