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편집위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문재인 정부에서 사법농단 사건으로 인해 헌정사상 초유의 길을 걷고 있다. ‘헌정사상 초유의’ 구속기소에 사법부 수장이 법정에 서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을 당해 친정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하지만 사법부 내 일부 ‘양승태 키즈’들은 살아있는 권력 핵심 인사들의 위법행위에 대해 ‘원칙’을 내세워 중형을 선고하면서 반발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김경수 경남지사의 구속은 당사자가 민주당 ‘집권 20년’ 플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데다 친문 주류에서 밀던 핵심 인사이기에 더욱 뼈아픈 대목이다. 무엇보다 ‘정권 재창출’을 해야 할 문 정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문 정부는 ‘양승태 키즈’들의 반기에 대해 ‘사법 개혁’의 칼을 재차 치켜들며 사법부와 전면전에 나서고 있다. 

뉴시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뉴시스

- ‘양승태 구속’후 사법부 梁 키즈 판사 ‘원칙’ 내세워 ‘반기’
- 문정부, 檢·朴 내세워 개혁 진두지휘… 사법농단판사 ‘탄핵소추·기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 데 이어 재판까지 받으면서 사법부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또한 양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법관들만 100여 명에 달해 향후에도 ‘사법부의 날개 없는 추락’은 계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사법부 내 양 전 대법원장을 추종하는 법관들의 반격도 매섭다.

그 징후는 문재인 정부 초대 정무수석을 지낸 전병헌 전 의원이 ‘징역 8년 6개월’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으면서 나타났다. ‘뇌물수수혐의’를 받은 인사치고는 상당한 중형이란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드루킹 일당’과 댓글조작 사건 연루 의혹을 받던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1심에서 ‘징역2년’에 ‘법정구속’까지 떨어지면서 ‘양승태 키즈’들의 도발은 계속됐다.

김 지사조차 전혀 예상 못한 판결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장면이 그대로 공개됐다. 무엇보다 김 지사 구속 사건은 지난 대선 기간 중 진행된 일부 세력의 선거부정 행위에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연루됐다는 점에서 후폭풍이 거셀 수밖에 없다. 당장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지난 대선이 공정하게 치러진 게임이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차하면 대선 불복으로까지 이어질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양승태 구속vs김경수·안희정 다음은 이재명?

또한 이번 판결로 민주당으로선 아까운 차기 유력 대선주자 한 명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해찬 대표의 ‘집권 20년’ 구상에 김경수라는 카드는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집권 구상을 수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대표와 친문 주류의 충격은 매우 컸다. 이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유력 대권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도 2심에서 법정 구속되면서 재기가 힘들어졌다. 1심에서 무죄를 받아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지만 실형에 구속까지 되면서 그 희망마저 날아가 버렸다. 사법적 판단을 기다리는 여권 내 잠룡은 또 있다.

바로  이재명 경기지사다. 이 지사는 ‘친형 강제입원’ 의혹, 공직선거법 위반·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있다. 사법부 내 양 전 대법관의 키즈로 배정될 경우 무죄를 장담할 수 없다. 결국 남은 카드는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정도로 축소될 수 있다.

현재 사법부는 김경수 지사의 항고심 재판장으로 차문호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배정했다. 하지만 차 부장판사는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한 언론이 보도하면서 사법부 내 ‘양승태 키즈’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요청에 따라 ‘상고법원 도입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달라’는 취지로 사촌동생인 차성안 판사를 설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권은 김 지사 1심 재판장인 성창호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 출신이자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재판 공정성을 의심해 왔다. 항소심 재판장도 같은 의혹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법부와 집권 여당의 ‘기싸움’이 계속될 전망이다.

사법부의 현 정권에 대한 반기는 여권 전현직 정치인들에게 불똥이 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조차 ‘김태우 폭로’가 향후 청와대 뜻과는 달리 의외의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통상 검찰은 정권 후반기에 접어들면 여권 실세들을 겨냥하곤 했다. 이 중 대부분은 새롭게 포착한 것이 아닌, 원래 검찰이 갖고 있던 파일에서 비롯됐다. 이는 대통령 레임덕으로 이어졌다.

‘반격’ 나선 文… ‘사법개혁 전도사’ 박영선 투입?

검찰은 김태우 폭로로 인해 여권 인사들이 연루된 여러 건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수사관이 폭로한 가상화폐 수사엔 여러 친문 정치인들 이름이 오르내린다. 현 정권 역점 사업 중 하나인 태양광과 관련해서는 현직 장관과 정권 실세 간 커넥션 의혹이 일고 있다.

검찰 안팎에선 이 사건이 대형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까지 나온다.그러나 정권을 향한 검찰의 반발 기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검찰 내부적으론 검경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등 불만이 확산되고 있긴 하지만 문 대통령 임기가 아직 3년 이상 남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제 목소리를 내기엔 이르다.

더구나 현 정치 구도에서 정권교체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 그리고 ‘미래 권력’에 굳이 칼을 들이대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정치 바람’을 덜 타는 사법부는 검찰 분위기와는 다르다는 게 서초동 안팎에서 나온다.

살아있는 권력이 짧으면 5년, 길어야 10년이지만 사법부 권력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이 경찰 수사 지휘권을 가지고 있듯 판사 역시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보충수사를 요구할 수 있고 구속과 불구속, 나아가 유무죄 결정권을 갖고 있어 검찰이 법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사법부의 현 정권에 대한 반발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문재인 정부도 사법부 권력남용 방지를 내세워 단속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2월15일 청와대에서 서훈 국정원장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불러 ‘국가정보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를 개최해   권력기관 개혁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서훈 국정원장,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정순관 자치분권위원장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정해구 국정원 개혁발전위원장, 한인섭 법무·검찰개혁위원장, 김갑배 검찰 과거사위원장, 유남영 경찰 과거사위원장, 송두환 검찰개혁위원장, 박재승 경찰개혁위원장 등 사정기관 관계자들이 대거 자리했다.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와 조정식 정책위의장, 박영선 사법개혁특별위원장, 인재근 행정안전위원장 등이 나왔다. 청와대에서는 노영민 비서실장, 강기정 정무수석, 조국 민정수석, 윤도한 국민소통수석 등이 참석했다. 문대통령은 이자리에서 “일제시대 비뚤어진 권력기관의 그림자를 벗는 원년으로 만들것” 이라며 “더이상 사법개혁은 미룰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개혁 전략회의에서는 그동안 진행된 검경수사권 조정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에 대한 성과를 공유하고,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임기 내에 권력기관의 개혁 필요성에 대해 재차 언급하는 자리였다"고 평했다. 이어 그는 “많은 부분이 입법사안이라 시간이 걸리겠지만 권력기관의 권력 남용을 차단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설명했다.

문 정부는 특히 사법부 개혁을 위해 ‘사법개혁 전도사’ 역할을 해 온 박영선 의원을 차기 법무부장관으로 내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 의원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법무부 장관 유력 후보로 줄곧 거론돼 온 인물이다. 4선의 박영선 의원이 이번 개각 때 법무부 장관에 발탁될 가능성이 크다고 여권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사법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박 의원을 발탁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힌 셈이다. 최근 사법부내 ‘양승태 키즈’들의 도발도 한몫했다는 후문이다. 박 의원은 여성의원 최초로 국회 법사위 위원장을 지낸 바 있으며 현재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 문재인정부 사법개혁안 입법 작업을 주도해 와 사법개혁을 이끌어나갈 추진력을 갖췄다고 여권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 정권과 밀월관계를 맺고 있는 검찰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과 사법농단사건  연루 의혹을 받는 법관들을 무더기 ‘징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법관만 약 1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같은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처장의 공소장에 적시된 법관도 93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들을 징계에 회부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행 법관징계법에 따르면 판사에게 징계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징계에 회부할 수 없도록 한다. 현재로서는 의혹에 연루됐더라도 2016년 2월 이전에 한 행위에 대해서는 징계가 불가능한 것이다.

‘양승태 키즈 판사’ 무더기 징계…일부 탄핵소추
 
이 때문에 범여권 일각에서는 국회가 서둘러 의혹에 연루된 판사들에 대한 탄핵소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가 탄핵소추를 하면 해당 판사에 대한 징계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이다. 일단 정의당은 ‘탄핵 대상 법관’10명을 발표했다.

민주당도 금명간 ‘5~6명’의 탄핵법관 명단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 소추란 헌법 제65조에 따라 법관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 국회가 재적 3분의 1의 발의와 재적 과반 의결로 소추하는 절차를 말한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경수 경남지사 재판 이후 ‘재판 불복’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은 정치권에서 거듭 ‘법관 탄핵’을 주장하는 것은 김 지사에 대한 2심 판결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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