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은 지난 1월 31일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드루킹 댓글조작을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 밝히라”며 대통령 수사를 촉구했다. 이어 “여론을 조작해 치러진 대선은 무효”라고 성토했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는 “탄핵당한 세력들이 감히 촛불혁명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대선 불복으로 대하느냐”고 2월 1일 반격했다. 그는 한국당의 청와대 앞 시위를 ‘망동’이라고 규정했다.

“감히 촛불혁명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대선 불복”으로 모느냐는 이 대표의 반격은 ‘촛불 대통령’을 신성불가침한 존재로 떠받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촛불 대통령’도 법앞에는 평등하므로 법을 어겼다면 수사를 받아야 한다. 여상규 국회 법사위원장이 밝힌 대로 “대통령을 재임 중 소추는 못하지만 수사는 할 수 있다는 학설이 있다”는 데서 더욱 그렇다.

민주당은 현직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서 30년의 징역형에 처한 집권당이다. 집권세력은 대통령을 현직에서 끌어내 쇠고랑을 채웠으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선 대선 여론조작과 관련된 수사 촉구마저도 ‘망동’이라며 짓누른다. 이 대표의 ‘망동’ 반격을 계기로 촛불 시위가 과연 무었을 의미했는지 다시금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 대통령은 ‘촛불혁명을 완성하는 정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새 정부는 촛불이 만든 정부”이고 촛불혁명이 “유엔 정신의 성취를 이룬 역사의 현장”이라며 촛불 단어를 무려 10번이나 반복했다. 문희상 국회 의장도 작년 9월 국회 개회연설에서 “촛불혁명의 제도적 완성은 개헌과 개혁 입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촛불혁명’을 ‘유엔 정신’ 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촛불 집회 때 참가자들의 주장은 각기 달랐다. 집회 참가자들의 구호들 중 다수를 차지한 대목은 “최순실 국정농단 척결”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었다. 그밖의 구호들은 정치적 좌·우 이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달랐다. 좌익 세력은 “혁명정권 수립”, “노동개악 철폐”를 외쳤고 우익 세력은 “종북용공 세력 척결”, “탄핵 반대” 등으로 맞섰다. 대부분 시위군중은 최순실 국정농단에 화가 치밀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경찰 집계에 의하면 2016년 11월 11일 경우 시위 참가자 26만 명 중 절반이 민주노총과 야당 등이 동원한 ‘조직 대오’라고 했다. 그 밖에도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반대하고 문재인 후보를 찍었던 박 정권 혐오 유권자들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유엔 정신’과는 무관하다.

촛불 시위는 최순실 국정농단 항의로 시작해 각기 다른 이념과 이해관계가 얽혀 표출된 대규모 군중 집회였다. 촛불 시위는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폭발해 박 대통령 탄핵과 징역형 선고로 끝났다. 그런데도 일부는 ‘촛불혁명’, ‘명예혁명’, ‘유엔 정신’으로 끌어올린다. 학자나 언론인이 거창한 ‘혁명’이란 단어를 갖다 붙이는 것은 튀기 위한 표현으로 치지도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집권세력이 의도적으로 ‘혁명’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데는 반드시 저의가 있다. 자신들의 권력이 ‘촛불혁명’, ‘명예혁명’, ‘유엔 정신’의 정통 승계세력이라고 미화하며 대통령과 집권당을 신성불기침한 존재로 띄우기 위한데 있다.

정권의 합법적 정통성은 피지배자의 동의에서 나온다. 그러나 합법적 정통성은 집권세력이 법치를 유린하고 경제를 파탄으로 빠트리며 국가안보를 위기로 내몰면 상실된다. 여상규 법사위원장의 지적대로 대통령을 재임 중 소추는 하지 못하지만 수사는 할 수 있다. ‘촛불 대통령’은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아니다. 집권세력이 ‘촛불 혁명’ 미명 아래 법치를 유린한다면 다시 핏발 서린 ‘촛불 시위’절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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