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상고해 볼 때, 한 국가의 ‘절정기와 쇠락기’는 겹치기 마련이다. ‘팍스 로마나’가 그랬고, 백제 의자왕과 당 현종(玄宗)의 치세가 그랬다.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로마제국의 최전성기를 쇠망의 시작이라고 봤고, 시오노 나나미도 <로마인 이야기>에서 제국의 판도를 최대로 넓힌 트라야누스, 죽을 때까지 드넓은 제국을 순행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 등 5현제가 위대한 로마라는 명성을 얻긴 했지만, 그들은 “안정될 때 위기를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했다”고 지적했다.

백제의 의자왕(재위: 641~660)은 등극 직후인 642년에 대야성(합천) 등 신라의 40여 개 성을 함락시켰고, 거듭되는 군사적 성공으로 즉위 초 긴장감의 끈을 놓고 말았다. ‘교만한 군대는 반드시 패한다(驕兵必敗·교병필패)’는 병법의 교훈을 망각한 것이다. ‘촛불은 꺼지기 전에 가장 밝다’는 것을 의자왕은 몰랐다. 그 역시도 로마의 5현제처럼 안정될 때 위기를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해 망국의 군주가 되었다.

현대에 와서 포퓰리즘으로 나라가 망한 사례로 그리스와 베네수엘라를 든다. 그리스는 한 때 국민소득 5만 달러를 자랑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74년 군사정권시대가 끝나고 민주화가 성취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1975년 이후 중도우파와 중도좌파 정권이 번갈아가면서 30년간 집권했다. 민주화에 도취한 중도좌파 ‘사회당(PASOK)’ 출신의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 하에 공무원 숫자를 늘렸다. 20년 전 전체 그리스 내 직장인 대비 10% 수준이었던 공무원 비율은 2010년 25%까지 확대됐다. 공공부문의 확대는 고스란히 정부 지출로 이어졌다. 그 결과 그리스의 2014년 GDP는 2010년 대비 25% 줄어들었다. 그리스는 선진국 중 처음으로 IMF 채무를 갚지 않은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유럽의 지진아로 몰락했다. 베네수엘라는 한때 세계 20대 부국이었지만, 1999년 차베스의 반미 사회주의 노선과 후계자 마두로의 노선 승계 결과로 망국의 벼랑 끝에 서게 되었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잘 살던 나라’ 라는 수식어는 이제 빛바랜 박물관의 유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베네수엘라 경제위기에서 배우는 4가지 교훈’이란 보고서에서 ‘▲석유산업에 편향된 경제구조 ▲과도한 복지 ▲규제 위주의 관치경제 ▲공직자 부정부패’를 경제파탄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중 ‘석유의존 경제’를 뺀 나머지 셋은 한국경제의 위기요인과 대동소이하다. 유엔에 의하면 2014년 이후 국경을 넘은 베네수엘라 난민 수가 인구의 10분의 1인 300만 명을 넘는다. 올해는 난민 수가 500만 명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여당이 기존의 좌파 포퓰리즘 정책에다 지역선심정책을 가미한 지역 구애 행보에 나서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노골적인 선거용 정책이다. “24조원 규모의 지역사업에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하겠다”고 발표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13일 부산을 방문해 “동남권 신공항 재논의”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은 지자체와 갖는 예산정책협의회를 예년보다 7개월여 앞당겨 총선용 정부 예산안 편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동남권 신공항에 대해 총리실을 통한 검증 추진을 지시했지만 부산·경남에서는 이를 김해 신공항 확장 폐기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의 부활로 해석한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에 새만금 신공항을 포함한 만큼 정부가 경제성을 무시하고 지역마다 공항을 새로 지어주겠다고 나선 꼴이다. 현재 15개의 기존 공항 가운데 10개가 만성 적자로 허덕이고 있다. 최근 5년 누적 적자만 3534억 원에 달하고 있다.

앞의 예에서 봤지만, 강성했던 백제가 망하는 데에는 2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석유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도 좌파 포퓰리즘 정책으로 20년 만에 망국의 길목에 서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총체적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정치 실종, 경제 침체, 안보 불안, 사회 혼란이 현 정부의 성적표다. 포퓰리즘 정책과 지역선심정책의 결합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비극을 가져온다.

회광반조(回光返照). ‘해가 지기 직전에 잠깐 하늘이 밝아진다’는 뜻으로, 머지않아 멸망하지만 한때나마 그 기세가 왕성함을 뜻한다. 대한민국의 운명과 겹쳐지는 것은 필자만의 소회일까.

문 정권은 이제라도 친시장·친기업 정책으로 경제 기조를 바꾸어야 한다. 친노조·반기업 좌파정책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머지않아 그리스, 베네수엘라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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