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업체·중소기업서 예비군 훈련일 ‘무급처리’ 횡행

서울 내곡동 52사단 210연대 강동송파 예비군훈련장에서 지난 2018년 첫 예비군 훈련이 진행됐다. [뉴시스]
서울 내곡동 52사단 210연대 강동송파 예비군훈련장에서 지난 2018년 첫 예비군 훈련이 진행됐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직장에 다니는 근로자가 예비군 훈련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월급이 깎이거나 무급휴가 처분을 받는 등 갑질을 당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률 근거와 해석상으로 엄연히 위법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는 사업주에게 불이익을 당할까 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에 진정(陳情)을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사업장의 근로계약서에는 예비군 훈련은 급여에서 제한다는 항목까지 들어 있어 직원들끼리 편법을 만드는 사례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 사업주 갑질에 편법까지 등장처벌 규정 있지만 신고 어려워

현역도 힘들었는데 6년을 더 고통받으라는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업주는 예비군 훈련과 관련해 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다.

예비군 훈련에 참석하는 것은 법이 정한 의무다. 법령에 따른 공적인 직무를 공의 직무라고 한다. 근로기준법 제10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공민권 행사 또는 공()의 직무를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면 거부하지 못한다.

또 예비군법 제10조는 다른 사람을 사용하는 자가 그가 고용한 사람이 예비군대원으로 동원되거나 훈련을 받을 때에는 그 기간을 휴무로 처리하거나 그 동원이나 훈련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관련법규로 봤을 때 근로계약상(구두상의 근로계약서도 유효) 일하기로 정한 소정근로일에 예비군 소집통지에 따라 예비군 훈련에 동원될 경우 사용자(사업주)는 해당 일에 예비군 훈련을 갈 수 있도록 시간을 보장해야 하며 무급처리할 수 없다.

유급이라고 했을 때 기본급·통상임금·평균임금의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하는지는 명시된 것이 없는 상황이지만, 근로기준법상 최저기준은 통상임금이므로 사업주는 통상임금을 지급하면 된다. 일당 도급제 근로형태에서는 최소한의 임금은 기본급으로 책정된 금액이라는 판례도 있으나 여기서의 기본급은 통상임금을 의미한다(대법원 1989.5.9., 891801)고 법원은 보고 있다.

그럼에도 사업주가 예비군 훈련일을 무급처리할 경우 예비군법 제10조 위반으로 근로자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 사업주는 규정 위반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예비군 훈련을 받는 시간이 근무시간이 아닌(휴일 등) 경우 근로기준법상 임금 지급의무가 없다.

A씨의 근로계약서 내용
A씨의 근로계약서 내용

훈련 3회 불참 시 처벌

서울에 위치한 카페에 다니고 있는 A(26)씨는 예비군 훈련날짜만 다가오면 근심이 가득하다. A씨의 근로계약서에는 예비군 훈련은 급여에서 제한다는 항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A씨가 일하는 카페는 남성만 바리스타로 채용하고 있다. 근로시간 중 예비군 훈련을 가더라도 사업주에게 유급처리를 부탁할 수도 없는 상황. 결국 A·매니저를 비롯한 카페 근로자들은 입을 맞춰, 사업주에게는 일하는 것처럼 보고하고 예비군 훈련을 다녀오도록 하는 편법을 만들었다.

A씨는 “(근로)계약서의 불법 소지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사업장이다 보니 노동부에 신고하기도 쉽지 않다. 만약 사업주가 신고자를 색출하게 되면 불이익을 당할뿐더러, 잘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라며 예비군 훈련일을 무급 처리하는 것은 현역 2년 동안 힘들었는데 예비군 훈련을 받는 6년 동안 더 고통 받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불법을 대응하려 직원들끼리 편법까지 만들어가며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참 웃기다. 그러나 사업주에게 말하고 훈련에 참석하면 월급이 최소 20만 원이 깎인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편법을 이용할 경우 사업주 몰래 3일 정도를 더 쉴 수 있고 급여도 공제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 대안으로는 국방부 또는 국가에서 예비군에게 예비군 훈련비를 근로자의 통상임금만큼 지급해주면 좋을 것 같다라며 내가 겪는 것처럼 이러한 불공정 근로계약서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근로 환경의 흐름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에 위치한 백화점에 입점한 브랜드 매장에 다니고 있는 B(28)씨는 예비군 훈련을 무급휴무로 대체하고 있다.

B씨는 백화점 내 대부분의 개인사업자 매장에서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있다. 사업주는 예비군 훈련을 비롯한 모든 노동 관련 사항에 대해 마음대로 처리한다면서 만약 문제제기를 할 경우 너는 근로계약서도 작성 안 해서 신고도 할 수 없다고 협박한다. 근로 여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가라고 겁을 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업주가 예비군 훈련을 무급휴무로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B씨는 부당하고 억울한 상황임에도 예비군 훈련을 무급휴무로 대체한 뒤 훈련을 받으러 갈 수밖에 없다. 직장 내에서는 눈치를 봐야 하는데 한 종류의 예비군 훈련을 3회 무단 불참하게 되면 예비군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다니는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할 우려 때문에 신고도 하지 못한다.

유명 포털사이트에도 예비군 훈련 무급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부당대우를 받고 있는 근로자들의 호소글이 쇄도 하는 실정이다. 대다수가 영세업체나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남성들이다.

전문가 계약서 내 무급 불법’”

전문가들은 노동자가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틀림없지만 노동부 진정 제기가 가장 빠른 구제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무사는 예비군법 내 불리한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명시된 경우가 있어서 그걸 근거로 예비군 훈련은 유급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80년대 후반 또는 90년대 초반 법률근거 등의 해석들이지만 그래도 이후에 무급이 된다라는 해석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예비군 훈련에 대해 유급으로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노동부의 해석이라며 “(근로계약서 내 무급처리 내용이 들어가 있을 경우) 그렇게 명시했더라도 효력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법이 더 우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세업체라 상황이 어렵더라도 예비군 훈련일의 급여를 공제한다는 것은 간접적으로 예비군 훈련을 가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근로자는 법적으로 문제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근로자가 부담을 느끼고 사업주를 신고하지 못 한다면 불이익을 감내하고 무급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업장일수록 다른 노동법 위반 소지가 크다. 향후 퇴직할 때 임금체불 등과 묶어 진정을 제기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노무사는 현재 별도법(예비군법)에 의해서 예비군 훈련은 유급으로 처리된다고 말했다. 근로계약서 내에 무급 조항이 있을 경우 어떠한가라는 질문에는 그 기간(예비군 훈련일)에 대해서 지급을 안 한다는 별도의 약정을 하면 강행규정 위반으로 계약조항 자체가 효력이 없다. 근로계약서 자체도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진정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해고나 불이익한 처우를 할 경우, 그것도 별도의 처벌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진정을 제기하는 것이 빠른 구제방법이라 여겨진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예비군 훈련은 당연히 유급처리가 맞다. 일부 소규모 업체의 경우 무급 처리하는 게 사실이지 않느냐. 국방부에서는 (근로자의) 민원이 들어올 경우, 위반 사례는 예비군법 벌칙 규정에 의해 고발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면서 이와 같은 민원 답변은 2017년도 6, 2018년도에 6건을 진행했다. 이 밖에 업체에서도 문의를 해올 때가 있다. 국방부는 규정을 정확하게 고지하면서 법에 따라 유급처리를 해야 한다고 적극 안내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부당한 대우를 하는 사업자를 처벌할 규정은 충분한 상태다. 그러나 근로자가 직접 신고를 하기란 쉽지 않다. 직장 내 직원이 적을 경우 신고자가 누군지 알기 쉽고 자칫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당연히 신고가 해답이겠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근로자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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