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위협 악재 ‘산적’ 입법 반영도 절반 수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최태원 SK그룹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지난 1월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인사를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최태원 SK그룹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지난 1월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인사를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기업인들 사이에서 “기업하기 정말 힘들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3월이 두렵다”는 탄식도 쏟아진다. 산업현장을 뒤흔들고 기업 경영권을 위협할 악재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계가 현 정부 출범을 전후로 건의한 제언 가운데 정책이나 입법에 반영된 비중이 절반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비스산업 육성과 관련한 건의는 전혀 수용되지 않았다. 국회의 ‘발목 잡기’도 경제계를 힘들게 하는 주된 요인으로 지목된다.

탄력근로제 6개월 연장…최저임금 개편 등 주요 현안 처리 미뤄져
대한상의, 정부 후속조치 분석결과…서비스산업 관련 반영 전무


재계에 따르면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대한상공회의소를 통해 정부와 국회에 전달된 경제계의 분야별 정책 건의 16건 중 현재까지 정책에 일부라도 반영된 것은 8건으로 파악됐다.

보여주기식 정부정책 비난 여론

대한상의는 지난 대선 직전인 2017년 3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비롯한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들에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같은 해 11월에는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와 국회에 각각 경제계를 대표해 경제정책 제언을 전달했다.

당시 제언은 ▲혁신기반 재구축 ▲서비스산업 발전 ▲고용·노동 선진화 ▲기업 자율개혁 분위기 조성 ▲인구충격 대응 ▲교육혁신 등 6개 분야의 16개 현안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이후 대한상의 등이 후속 조치를 점검해 정책 반영도를 분석한 결과 서비스 부문 정책 반영률은 ‘0%’로 집계됐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경제계의 조속한 입법 촉구에도 8년째 국회 계류 중이다.

특히 고용노동 선진화와 관련해 저성과자 해고절차 완화와 임금·근로시간 등 취업규칙 변경을 쉽게 하는 이른바 ‘양대 지침’이 2017년 9월 공식 폐기되면서 정규직 과보호 완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달 20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탄력근로제를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는 데 극적으로 합의했다.

탄력근로제는 일정 기간 노동시간을 주 52시간 이상으로 늘릴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대신 다른 기간 노동시간을 줄여 평균치를 맞춰야 한다. 앞으로 국회에 제출돼 관련법 개정 논의 후 시행될 예정이며, 11시간 연속 휴가시간 보장이 조건으로 추가됐다.

노사정이 탄력근로제 확대에 극적으로 합의했지만, 재계는 시원하게 웃지 못하는 모습이다. 당초 요구했던 1년의 절반에 불과한 데다, 노사 간 입장차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정계 분위기도 부담이다. 당장 여야 갈등으로 임시국회 개회가 불투명해지면서 시행 일정도 미지수다. 정의당은 탄력근로제 확대를 과로사 합법화라며 비판하고 나섰으며, 민주노총은 합의에 불복하고 3월 총파업까지 예고한 상태다.

산적한 노동 현안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부담이다. 당장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 결정체제 개편안을 20일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한국노총 요청으로 연기했다. 조만간 2020년 최저임금 결정이 진행될 예정인 만큼, 논의가 시급한 사안이다.

그 밖에도 재계는 지난해 해고자를 노조원으로 인정할지 여부를 비롯한 임단협 이슈와 포괄임금제 폐지 등 여러가지 현안 논의를 경사노위에 요구한 상태다. 그러나 정부가 양대 노조에 예민한 반응을 숨기지 않고 있는 만큼, 실제 합의를 이루기까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탄력근로제 합의는 노사정이 한 발씩 양보해 답을 도출했다는 데 의미가 있지만, 양측 다 불만이 크다는 문제도 있다”며 “다른 현안에서도 합의점을 찾는다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갈등이 커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여기에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기관투자가와 헤지펀드들이 잇달아 ‘경영 간섭’에 나서며 기업들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통신사와 마트 등 대형 가맹점에 물리는 카드 수수료 및 산업용 심야 전기요금 인상 결정도 3월로 예정돼 있다. ‘타깃’은 대기업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노조와 정부, 국회 눈치만 보다 주저앉을 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검, 삼성 현대차 SK 수사 예고..재계 긴장

이런 가운데 검찰이 삼성과 현대차, SK계열사 등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일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현대차 본사는 차량 제작 결함 은폐 의혹으로, SK케미칼·SK이노베이션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공급한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담당 부서 인력은 기존보다 50% 늘렸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이 달 초까지 사법농단 사건을 마무리하고 그 이후 대기업 수사에 집중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한편 기업이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민과 시민단체, 정부 등이 매를 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누울 자리 봐 가며 발 뻗으라고 했다. 일자리 절벽과 최악의 소득양극화로 경제가 결딴나게 생겼는데도 기업을 옥죄기만 해선 될 일도 틀어질 수밖에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연초부터 기업인들을 잇따라 만나며 경제 살리기에 나선 현 정부의 행보가 한낱 시늉에만 그쳐선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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