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김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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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pica [리피차: 눈처럼 하얀 말들의 고향]

 

매일 아침 9시. 리피차 종마장은 황홀한 꿈결에 사로잡힌다. 수십 마리의 말들이 드넓은 참나무 숲으로 뜀박질하는 거짓말 같은 광경. 눈처럼 새하얀 말의 목덜미에서 등까지 이어지는 갈기가 춤을 추듯 너풀거리고, 그들의 발걸음 뒤로 희뿌연 먼지가 뽀얗게 피어오른다. 그때 푸른 참나무 이파리 사이로 거짓말처럼 밝은 빛이 새어드는데, 그 순간이 사람을 묘하게 홀린다.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여행지 슬로베니아에서도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수도 류블랴나와 로맨틱한 호수가 있는 블레드이외의 도시를 알기란 어렵지만, 리피차는 그중에서도 더 흔치 않은 지역이다. 국토의 서쪽 끝, 이탈리아 국경과 단 2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리피차는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쉬이 발길이 닿지 않는 곳. 그러나 슬로베니아 국민들에겐 어마어마한 자부심이 깃든 땅이다. 4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말 품종 리피차너의 고향이므로.

그 시작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를 통치하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클래식한 마술을 위해 날렵한 품종 개량을 지시했고, 바로 이곳 리피차에서 비엔나의 스페인 승마학교를 위한 백마를 만들어냈다. 많은 이들이 이 우아한 백마가 오스트리아나 스페인, 혹은 헝가리 출신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리피차너의 고향은 슬로베니아 서쪽의 작은 마을 리피차다. 리피차 종마장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종마장이기도 하다. 그 오랜 기간 어떠한 변화나 방해도 없이 한 종을 꾸준히 사육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그래도 솔직히 리피차는 보통의 여행자들에겐 얼핏 관심 밖이다. 그럼에도 울타리 너머로 뛰노는 아름다운 백마들을 지긋이 바라보며, 그들의 거친 숨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참나무 숲을 산책하는 일은 분명 환상적이다. 이토록 많은 말들이 한꺼번에 자유로이 달리는 것을 본 적이 있던가. 그것도 눈처럼 새하얀 말들이. 리피차너는 비교적 키가 작고, 목이 짧고 굵으며, 등이 긴 편이다. 대단한 근육질이기도 하다. 또 귀는 작고, 콧날이 오뚝하다. 눈은 크고 깊어서 가만히 보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있을 것만 같고, 왠지 애틋하다. 무엇보다 똑똑하고, 사교적인 성격이라 인간과 합을 맞춰 마장마술을 우아하게 해내는 능력이 있다. 리피차 종마장에서는 트레이닝 받은 말들이 음악에 맞춰 온갖 기술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마치 발레를 하고 왈츠를 추듯 움직이는 말들의 우아한 몸짓이 감동이다. 리피차너가 품고 있는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처음에는 검은 털을 갖고 태어나고, 어른이 돼야 완전히 새하얗게 다른 말로 변한다는 거다. 개체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5~10년 사이에 털이 빠지면서 아름다운 백마로 거듭난다. 마치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오리새끼> 이야기처럼 말이다.

 

info

리피차 종마장에서 6월부터 8월까지 매주 화, 금, 일요일 오후 3시에, 그리고 매주 토요일 11시에 리피차너 공연이 진행된다. 나머지 일정은 기간에 따라 요일과 시간이 다양하기 때문에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히 확인하는 게 좋다. 공연시간은 총 45분. 공연 이외에 리피차너를 직접 타 보는 마차와 승마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www.lipica.org

tip

이른 아침 목장에서 나와 숲으로 뛰어가는 리피차너 무리의 광경을 보고 싶다면 종마장 부지에 터를 잡고 있는 호텔 마에스토에서 숙박하길 추천한다.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4성급 호텔로 카지노와 골프 코스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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