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 민영화 '해묵은 과제' 풀릴까

강만수 회장이 이끄는 산은금융지주는 소위 '엘리트 조직'이다. 개발연대 시대에 정책자금을 분배하던 '황금기'를 보낸 임직원들의 최대 고민은 '수신 기반'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회사가 전국에 구축한 지점망은 불과 57개. 정책금융을 떼어냈으니 금융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아야하는데, 뾰족한 묘수가 없어 고민거리다.

"머리는 비대한데, 팔다리는 형편없이 가는 '서생을 떠올리게 한다" 산은금융지주 직원들을 바라보는 시중은행 담당자의 평가이다. 야전(소매금융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경쟁사 임직원들과 겨루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이라는 것. 강 회장의 고민도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우리금융지주는 이러한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회심의 카드이다.

우리금융지주의 주력사인 우리은행의 점포수만 900여개. 이 점포는 야전격인 소매금융시장에서 잘 단련된 백전노장들로 넘쳐난다. 지역별 거점도 잘 구축돼 있다. 베트남에서도 하노이, 호치민에 양대 지점을 보유한 유일한 은행이다. 강 회장에게도 우리금융지주 인수는 '양수겸장'의 카드이다.

'실리'도 취하는 한편, 토종 메가뱅크 육성의 '명분'도 살릴 수 있는 묘수이다. 우리나라도 토종 메가뱅크 하나쯤은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호소'는 마냥 뿌리치기에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도 현실이다. 산은지주 직원들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금융지주 인수에 생존의 문제가 달려있다는 소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표정관리하는 산은금융지주

메가 뱅크 대전의 총성이 마침내 울려 퍼졌다.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는 국내 금융산업 전반에 빅뱅을 몰고 올 신호탄이다.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17일 우리금융지주 매각작업을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발표만 놓고 보면, 최대 수혜자는 산은금융지주가 될 전망이다. 산은금융지주는 '표정'을 관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후, 입찰 참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는 것이 산은지주 측의 짤막한 발표이다. 우리금융 측과 설전을 주고받으며 날선 공방을 벌이던 때와는 온도 차이가 확연하다. 국책은행인 산은금융의 몸집불리기에 대한 곱지 않은 여론을 의식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날 발표는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금융위 공자위가 이날 발표한 매각 방안은 '일괄매각.' 산은금융지주에서 선호해온 방식이다. 맷집을 키우고 펀치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몸집을 헤비급으로 불려야 하는데, 증권이나 지방은행을 비롯한 계열사들을 병행 매각하는 것은 '실기'라는 것이 산은의 시각이었다.

일괄매각방침은 '다자 경쟁구도'도 허물 개연성이 크다. 은행 부분은 자체적 성장(organic growth)을 꾀하고, 비은행 부문은 인수합병(M&A)도 적극 고려한다는 것이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가 그렇다. 이에따라 경쟁사들이 이번 매각에 초대받을 여지는 더욱 좁아졌다.

론스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모펀드들이 입질을 할 수도 있지만, 인수전에 참여해도 낙점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방향 변수

물론 불확실성이 말끔히 걷힌 것은 아니다. 우리금융지주 인수의 최대걸림돌이던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 방향이 정리되지 않은 점이 부담거리다. 금융지주사가 금융지주사를 인수할 때는 지분 95%이상을 사들여야 했는데, 이 기준이 매각의 걸림돌로 작용하며 금융시장 재편의 빌미를 주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따라서 이 기준을 50%로 낮춰 국내 금융사 대형딜의 숨통을 튀어줘야 한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이었지만, 이번 발표에서는 뚜렷한 입장 정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단서는 있다. 공자위 수뇌부 발언은 그 기류를 엿보는 창이다. 민상기 공적자금관리위원회 공동위원장은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때문에 경쟁여건이 제한된다는 매각주관사의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95%이상 지분 유지 규정이 국내 금융시장 재편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시행령 개정은 금융위원회의 소관"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발표한 우리금융지주 입찰 참여요건은 '30% 이상 지분 인수 또는 합병.' '4% 지분 인수 또는 합병'에서 기준 요건을 대폭 강화한 것이다.


◇메가뱅크 회의론도 '강력한 장애물'

"은행이 크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우리나라를 방문한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 그룹의 피터 샌즈 회장이 남긴 발언이다. 자신의 재임기간 중 회사의 이익 규모를 여섯 배로 늘린 이 성장전도사는 은행의 덩지가 꼭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글로벌 은행은 출범 초부터 늘 세계무대를 호령하는 '골리앗'들과 투쟁을 해왔으며, 매출 ,이윤을 비롯한 각종 지표에서 거대 은행들을 앞서고 있다는 것이 그의 자랑이었다. 이 경영자는 최근 메가뱅크 논의가 이러한 알맹이를 빼놓은 채 규모 중심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일본의 메가뱅크도 반면교사의 실례이다. 이 나라 대장성 관료들은 덩지에 집착했으나, 일본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메가 뱅크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일본의 금융산업은 끊임없는 합병과 통합의 과정을 거쳐 현재는 3대 메가 뱅크 체제로 정착돼 가고 있으나, 아직도 갈길이 멀다.

반면, 글로벌 금융무대의 강자들은 주특기가 뚜렷한 사례가 많다. 미국에서 한때 대단한 위용을 자랑했던 ING다이렉트는 인터넷 점포 전략으로 미국시장에서 연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글로벌 은행이 내건 캐치프레이즈가 '우리는 은행이 아니다'. 상식을 비웃는 창의적인 시장 분할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움푸쿠아도 그렇다.

금융산업 성공요건이 덩지가 다는 아니라는 방증이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은행산업에도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관료들의 꽉막힌 사고를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산은금융지주가 내건 인수합병의 명분은 글로벌 은행들과 진검승부를 할 수 있는 '토종 메가 뱅크' 육성이었지만, 우리금융지주 인수의 8부 능선을 넘기까지는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무엇보다, MB정부 이너서클의 중심인물인 강만수 회장이 주도하는 이번 민영화 프로젝트가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내년 총선, 대선일정을 비롯한 정치 바람에 휘말릴 경우 변죽만 울리다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벌써부터 고개를 든다.

예금보험공사는 18일 우리금융 매각 입찰을 공고하고 6월29일까지 입찰참가의향서(LOI)를 받아 예비입찰을 거쳐 최종입찰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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