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 ‘정계개편’, 참패 시 ‘구원투수론’... 잠룡들 견제 본격화 전망

[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에서 황교안(61) 전 국무총리가 새 당 대표로 선출됐다. 보수진영 잠룡으로 꾸준히 거론돼온 황 대표가 과반 득표에 성공하며 당권을 거머쥠에 따라 한국당의 ‘대권 시계’도 빨라질 전망이다. 당장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홍준표 전 대표 등 당내 대선주자들은 외곽 조직을 다지며 일찌감치 차기 대선 준비에 나선 모양새다. 여기에 오세훈 전 서울시장 역시 전대에서 30%가 넘는 당 안팎의 지지세를 확인하면서 중도보수의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진지를 확보했다. 물론 보수진영에서 대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인사는 황 대표다. 하지만 짙은 계파색과 한 달에 불과한 정치 경력 탓에 실질적으로 당을 얼마나 장악할 수 있을지는 의구심으로 남아있다. 여기에 총선 전 정계개편 과정과 총선 참패 시 불거질 ‘구원투수론’ 등도 변수다.

 

- 김병준 “대권, 숙명일 수도...”, 홍준표 “2022년 마지막 승부” 
- ‘의미 있는 낙선’ 오세훈... 비박계·복당파 ‘신당 창당’ 구심점 되나


자유한국당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전 총리는 박근혜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낸 보수진영 유력 대권 잠룡으로 꼽힌다. 한국당의 최대 기반 세력으로 여겨지는 전통 보수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이 유력 대권 주자로의 부상과 이번 당 대표 당선의 핵심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황 대표의 대권 가도를 ‘탄탄대로’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이번 전대를 계기로 한국당 대권 경쟁 구도의 밑그림이 그려졌고, 이는 황 대표를 향한 견제를 시사한다. 즉 한국당 내 ‘잠룡들의 전쟁’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도 할 수 있다.

金·洪, 당권 포기 후
대선 준비 채비

당장 당대표 선출과 동시에 임기가 만료된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행보가 눈에 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로 침몰 위기에 처했던 한국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뒤 차기 대권후보로 체급을 키워왔다. 그는 각종 기자회견에서 “4%에 불과했던 당 지지율을 20%대 중반까지 끌어올렸다”며 자평해왔다.

그런 자신감의 발로일까. 김 전 위원장은 퇴임 기자회견을 가진 25일 지지자들과 함께 곧바로 포럼을 발족시키며 다음 행보를 예고했다. 앞으로 김병준식 ‘마이웨이 정치’를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퇴임 기자회견 이후 서울 마포의 한 컨벤션홀에서는 ‘징검다리 포럼’ 창립식이 열렸다. 이 모임은 김 전 위원장과 뜻을 함께 하는 지지모임이다. 공동대표에는 하원 전 백석대 총장, 정상용 동국대 법학과 교수와 함께 김병준 비대위에서 활동한 최병길 전 비대위원, 정현호 전 비대위원 등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징검다리 ‘멘토’를 자처한 김 전 위원장은 포럼에서 특정 직책을 맡지 않고 일반회원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창립식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1300여 명이 참석했다. 홀 1, 2층이 꽉 찼고 자리가 없어 서있는 사람까지 적지 않았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벌써부터 대권가도에 시동을 걸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향후 김 전 위원장이 대권행보를 시작하면 ‘징검다리 포럼’이 외곽 지지모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해석이다.

김 전 위원장 역시 26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뭐가 돼 보겠다는 생각보다 나라가 이렇게 갔으면 한다는 고민은 있다”면서도 “비대위원장도 하고 싶은 적도 없었지만 했듯이 숙명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대권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불과 7개월 만에 재차 전대 출마 선언과 번복 등 해프닝을 벌인 홍준표 전 대표도 ‘프리덤코리아’ 포럼과 ‘TV홍카콜라’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홍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자신이 주도한 싱크탱크 ‘프리덤코리아 포럼’을 출범시켰다. 보수정당의 빈약한 정책 생산능력을 대체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홍 전 대표는 설명했지만, 사실상 홍 전 대표의 대선 준비 조직 성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는 한국당 혁신위원장을 역임한 류석춘 연세대 교수를 비롯해 한상대 전 검찰총장,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등 각 분야 인사 520여 명이 참여했다. 현역의원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미 홍 전 대표는 “2022년 봄이 제 인생 마지막 승부수”라며 대권 재도전을 시사했다. 그가 외부 세력 결집으로 황 대표를 정조준해 활로를 모색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대권의 가장 지름길로 평가되는 ‘당권 찍고 대권’ 시나리오를 그릴 수 없게 된 김 전 위원장과 홍 전 대표 입장에선 총선을 앞두고 연말을 전후해 보수진영 정계개편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리 조직 정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총선이 ‘가늠자’인데...
황교안 號 한계 ‘뚜렷’

실제로 계파 갈등과 탄핵 정당성 등을 두고 보수진영이 분열돼 있지만 총선 승리를 위해선 단일화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만약 김 전 위원장과 홍 전 대표가 보수진영 대선주자 위치를 유지할 경우, 정계개편 국면에서 복귀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만약 보수 대통합이 현실화돼 현재 잠행 중인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공동대표와 원희룡 제주지사, 남경필 전 경기지사까지 경쟁에 합류한다면 보수진영 내 대권 구도는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보수진영이 차기 총선에서 참패할 경우엔 총선 후 2년 만에 치르는 대선에서 이들 중 한 명이 ‘구원투수’로 추대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황 대표가 별다른 공천 잡음 없이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명실상부한 보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며 순탄한 대권행보를 꿈꿀 수 있다. 또 총선 결과에 따라 황 대표가 전대에서 확인된 공고한 당내 지지를 기반으로 더뎠던 보수 대통합의 구심점이 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지만 당 내외 적으로 ‘황교안호’의 한계도 뚜렷한 게 사실이다. 황교안 지도부에서 친박계가 다시 당 전면에 나설 것은 자명하다. 전대 과정에서 황 대표를 지지해온 의원들 대부분이 친박계이고, 이들을 중심으로 지도부가 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당 기반이 없는 황 대표가 이들을 배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원내대표 선거에 이어 당 대표 선거에서도 패한 비박계의 위축은 불가피하다. 이는 황 대표 체제에서 한국당의 ‘우향우’가 더욱 강화될 것이란 얘기다.

이로 인해 강경 보수를 결집할 수는 있겠지만, ‘도로 친박’ ·‘과거 회귀’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출범하게 된 만큼 확장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전대 내내 황 대표가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탄핵의 절차적 문제’ ‘태블릿PC 조작 가능성’ 등의 발언은 모두 당을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내에선 벌써부터 “당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언제까지 박근혜냐”며 ‘황교안 체제’에 대한 불안의 목소리도 나온다.

황 대표가 추진하겠다고 한 ‘보수대통합’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강경 보수 성향인 황 대표와 개혁보수를 앞세운 바른미래당 유승민 전 대표 등이 결합할 명분이 없다. 황 대표는 탄핵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유 전 대표는 탄핵에 찬성했다.

전대 직전 불거진 ‘5·18 폄훼’ 등 당의 극우화 논란을 진화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당장 전대 출마로 징계 결정이 보류됐던 김진태·김순례 의원의 징계 여부부터 결정해야 한다. 새 당 대표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당 안팎으로 또 한 번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대외 입지 다진 吳,
비박계 구심점 관측

이런 상황에서 비박계·복당파의 대표 주자였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전대에서 유의미한 지지율을 올리며 2위를 기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한 오세훈 후보는 낙선했지만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확인하며 대외적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 후보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황 대표(37.7%)보다 높은 득표율(50.2%)을 획득했다.

당초 ‘대세론’의 중심에 서 있던 황교안 후보와 ‘선명한 우파’ 노선 전략을 가진 김 후보 사이에 끼인 오 후보를 두고 2위 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오 전 시장이 득표율 31.1%로 ‘의미 있는 낙선’을 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2위 자리를 사수하면서 그동안 존재감이 미미했던 당내 중도우파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개혁 보수의 아이콘으로서 독자적인 위상도 확보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범보수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도 공고히 했다.

황 대표가 여권의 공세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수세에 몰린다면 정국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내년 총선 필승에도 먹구름이 낄 수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황교안 체제’가 내년 총선 전에 무너질 수 있다는 말도 불거져 나온다. 탄핵 사태 후 리더십 부재로 흔들렸던 한국당이 다시 리더십의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총선을 앞두고 야권발 정계개편이 가속화되고 신당 창당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황 대표 체제가 퇴행하고 정부·여당에 대한 반감이 커질 경우 총선 전 ‘헤쳐 모여’ 식으로 보수 야권을 중심으로 신당이 출현할 것이라는 얘기다. 바로 이 시점에 ‘의미 있는 낙선’을 한 오 전 시장이 비박계·복당파의 구심점으로 작용할 공산이 높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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