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태극기 세력은 한국당에 골치 아픈, 그러나 소중한 자산이다. 태극기 세력은 한국당에 극우의 굴레를 씌우는 골치 아픈 존재인 동시에 한국당이 아무리 악수를 둬도 아스팔트 지지율을 챙겨주는 ‘최후의 집토끼’다. 이러한 태극기 세력이 이번 전당대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며 ‘로열 당원’으로 급부상했다. 이들이 집중 지지를 보낸 김진태 의원이 정치적 무게감을 얹으며 당내 한 축을 형성했고, ‘5.18 망언’ 당사자인 김순례 의원은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문재인 탄핵’을 외친 김준교 당시 후보도 예상 밖 돌풍을 일으켰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전후해 생겨난 태극기 세력이 이제 한국당의 중요한 지점에 안착한 것이다. 다만 태극기 세력의 영향력이 입증됨에 따라 취임 일성으로 ‘통합’을 외친 황교안號는 출항부터 ‘딜레마’가 엿보인다. ‘5.18 모독’ 관련 김진태·김순례 의원의 징계 여부가 황교안號의 향후 행보를 짐작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 김진태·김순례·김준교의 ‘선전’... 황교안, 중도·태극기 세력 ‘융합’ 과제로
- ‘5.18 모독’ 3인 징계 여부, 한국당 노선 엿볼 수 있는 첫 시험대 

 

자유한국당 당대표 경선에 나섰던 김진태 의원의 도전은 결국 무위로 끝났다. 하지만 선거 초반 약체로 평가받던 그가 20%의 득표력을 과시한 점,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1000표 안팎의 근소한 차이로 오세훈 전 시장의 턱밑까지 추격했던 점 등은 태극기 파워가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니었다’는 점을 증명했다. 

태극기의 힘... 초선 비례 
김순례, 자력 당선

지난달 27일 한국당에 따르면 태극기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김진태 의원은 여론조사에서 12.1% 득표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2만 955표를 받으며 득표율 21.8%를 기록했다. 오 전 시장은 2만 1963표를 획득했다. 

특히 태극기 세력이 이번 전대에서 ‘5.18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김순례 최고위원의 당선을 이끌어 낸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 최고위원은 당원 투표에서 2만 4866표를 얻어 김진태 의원(2만 955표)의 표를 그대로 흡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원 투표에서 김 의원의 투표를 몰아 받은 김 최고위원은 여론조사에서도 12.7%의 지지율을 얻었다. 1위 조경태 의원, 2위 정미경 전 의원에 이어 3번째로 가장 많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당초 김 최고위원은 여성 할당제를 놓고 또 다른 여성 후보인 정 전 의원과 겨룰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이번 20대 국회에 처음 입성한 비례대표 의원이 재선의원들을 제치고 자력으로 최고위원 3위에 오른 점은 놀라움을 자아냈다.

청년최고위원에 도전해 “문재인 탄핵”을 외쳤던 김준교 후보도 4명 중 2등에 올랐다. 김 후보는 신보라 최고위원(40.4%)에 이어 26.5%로 적잖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청년최고위원 선거에서도 김진태 의원의 표가 김 후보(2만 5476표)로 쏠렸다. 여론조사에서도 유일한 원내 출신인 신 최고위원(43.0%)에 이어 2등(26.0%)을 기록했다.

이들은 당 우경화 우려 등과 별개로 전당대회 과정에서 강경 발언을 이어갔고 합동연설회 때마다 태극기 세력의 큰 환호를 받았다. 결국 태극기 세력을 등에 업는다면 당선 고지 근처까지 갈 수 있다는 게 입증된 것이다.

당초 당내에선 태극기 세력의 규모를 책임당원의 ‘2%’ 정도라고 관측하면서 영향력을 축소했다.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태극기 세력에 대해 “절대 이 당의 주류가 될 수 없다”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계륵’으로 여겨졌던 태극기 세력이 ‘로열 당원’이었음이 이번 전대에서 입증됐다. 

외연 확대 위한 징계 불가피…
당내 반발 우려도

이에 따라 기존의 판단과 다른 성적표를 받아들인 당 지도부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 전 시장의 선전으로 확인된 중도층 확장 필요성과 태극기 세력의 영향력을 모두 아울러야 하는 상황이 황교안 신임 대표의 과제로 다가온 것이다. 

당장 황 대표는 김진태 의원과 김순례 최고위원의 ‘5.18 모독’ 관련 징계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한국당은 당대표 선거와 최고위원 선거에 각각 출마했던 김진태 의원과 김순례 최고위원의 징계 결정을 유예한 상태다. 

당규에 따르면 전당대회 이후 이들 의원에 대한 징계 논의는 재개돼야 한다. 이 사안은 망언 논란을 넘어 한국당이 우경화, 극우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정체성 논란으로 번진 상태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한국당이 ‘우경화’ 논란에 휩싸인 만큼 중도표 흡수를 위해서는 국민 여론과 정면으로 맞서는 5.18 망언 발언자들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황 대표 입장에선 이들에게 강력한 징계를 내리기도,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강력한 징계를 하자니 두 의원 모두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의 적지 않은 지지를 받은 점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김 최고위원은 태극기 세력의 지지 속에 자력으로 3위를 차지하며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당원들에 의해 선출된 새 지도부 구성원을 징계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태극기 세력의 힘으로 최고위원이 된 김순례 최고위원은 ‘황교안 체제’에서 태극기 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할 가능성이 크다”라며 “당을 위기로 내몬 ‘5.18 망언’을 비롯한 잦은 논란은 김 최고위원 당선에 동력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김 최고위원 자신은 물론 중도로 확장을 꾀해야 하는 당 지도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정치권은 김 의원과 김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안 처리 여부가 황 대표의 향후 총선 전략을 엿볼 수 있는 잣대로 관측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만약 빠른 시일 내에 김 최고위원 등에 대해 중징계가 이뤄지면 황 대표가 중도표 흡수 노선을 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도 “2차 북미정상회담, 북핵문제, 선거법 패스트트랙 등 현안을 이유로 징계를 미루며 태극기 표도 함께 가져가는 전략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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