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다. 사실, 사람이 다 그렇다. 사람은 자주 잘못을 하고, 저지른 잘못에 대가를 치른다. 잘못에 대한 대가로 시련을 겪고 나면 정신적으로 한 뼘 큰 것 같은 착각에도 빠진다. 잘못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으려면? 사과를 잘해야 한다. 사과는 어렵다. 다들 인지상정이라 잘못을 저질러 놓고 흔쾌한 사과보다는 해명을 택하고, 구차한 변명을 한다. 정치인들은 강한 자의식 탓에 이런 악순환에 쉽게 빠져든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자당 의원들의 20대 관련 발언에 대해 ‘대리 사과’를 했다. “요즘 20대 청년과 관련해 우리 당 의원님들의 발언이 논란이다. 원내대표로서 깊은 유감을 표시하고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밝혔다. 홍 원내대표의 사과가 대리사과인 것은 논란의 당사자들이 사과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의 수석대변인인 홍익표 의원은 원내대표의 사과 뒤에도 “나는 원내대표의 사과에 동의하지 않는다고”고 했다.

홍익표 의원이 보기에 홍 원내대표는 “내 발언을 모르고 사과하신 것”이고 “아마 설훈 의원님 발언에 대해 사과하신 것”이다. 홍 의원 스스로는 잘못한 것이 없다. 자신의 20대 관련 발언은 문제가 없다. 20대들이 통일 문제 등에 부정적 인식을 가진 것을 지적했을 뿐이다. 20대의 이런 인식이 사회적 분위기, 학교교육, 매스미디어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지적했을 뿐이다. 그러니 문제가 될 발언도 아니고, 사과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홍 의원 생각에 문제는 언론이다. 최초 보도한 언론에 유감을 표하고,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럽 사회에서 젊은 인구가 신나치 등으로 보수화되느냐 그런 문제”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스스로는 잘못이 없다는데 사과를 듣고 싶지도 않지만, 최근 20대의 이반현상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과 일말의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모습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대중정치인으로서의 자각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모두가 홍 의원이 사과하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홍 의원이 지적한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학교교육’을 조장했던 쪽에서는 홍 의원이 사과를 거부하고 해명이 길어지는 것이 반갑다. 이들이야 논란이 지속되길 원한다. 반발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20대들은 냉소적이다. 그러려니 하고 외면하면 그만이고 사과를 받아 줄 마음도 없다. 홍 의원이 내심 이 사건을 조장했다 여기는 언론 입장에서는 후속 보도 거리를 던져주니 고마울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동료의원들이나 당원, 지지자들만 홍 의원이 흔쾌히 사과하길 원한다. 발언의 의도가 무엇이든 특정 유권자 집단의 반발과 이반을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는 사과를 거부하고 해명이 길어질수록 빠져 나오기 어려운 늪에 잠기는 것이 보인다. 20대가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에 보여주는 반감은 심상치 않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 홍 원내대표도 이런 험악한 분위기를 감지했기에 ‘대신 사과’에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 자신이 잘못이 없다고 믿어도 논란이 되면 사과할 수 있어야 한다. 사과하려면 변명을 하지 말고, 조건 없이, 신속하게 엎드릴 수 있어야 한다. 억울한 표정 짓지 말고, 혀를 길게 늘이지 말아야 한다. 빌미를 제공한 자신을 탓하고, 삼엄한 언론 환경과 여론의 변화에 둔감했던 것을 돌아볼 일이다. 내가 유권자를 낮춰보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교만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유권자를 가르치겠다는 태도와 신중하지 못한 언행이 논란을 불러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선출직 공직자가 유권자와 맞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무진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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