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하기 불과 수개월 전인 2011년 10월 20일, 리비아를 42년간 철권 통치했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시민군에게 처참한 죽임을 당했다.

카다피는 이에 앞서 2003년 핵 프로그램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전격적으로 발표한 후 관련 시설과 자료를 공개하고,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화학무기 사찰을 허용했다.

미국은 그 대가로 리비아와의 국교를 정상화했고 2004년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일부 해제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도 리비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풀었다. 리비아는 2005년 10월 핵 프로그램을 전부 폐기했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리비아가 갖고 있던 핵무기 제조 관련 서류와 장비 25톤을 미 테네시주 오크리지 연구소로 옮겨 완전한 핵 폐기를 이끌어냈다.

이렇게 보유하고 있던 모든 핵 프로그램을 미국에 넘겨주고도 미국이 현지 반군과 손잡고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린 사실을 김정은이 똑똑히 목도했다. 핵을 포기한 결과로 가다피가 최후를 맞았다고 확신했을 터다.

이런 엄혹한 현실 앞에서 김정은이 미국과 대화를 통해 비핵화를 하겠다고 했다.

북한의 핵 개발프로그램은 한국전쟁 직후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김일성은 당시 소련과 중국의 지원 약속을 믿고 1950년 6월 25일 남침을 감행했으나 소련이 유엔안보리에서 한국전 참전 유엔군 결성을 비토 대신 기권카드를 던지고, 중공이 인민해방군이 아닌 해방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참전한 것에 분노하여 ‘독자전 수행능력 확보’를 위해 핵무기 개발을 작심했다. 이후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한국과 수교하자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은 “믿을 건 핵밖에 없다”며 핵무기 개발에 김씨 왕조의 운명을 걸었다.

그 결과 북한은 미국 본토에까지 날아갈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거의 완성했다. 앞으로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능력만 보유하면 미국의 개입을 막고 적화통일 할 수 있다고 매진(邁進)한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이 완성단계의 핵을 포기하겠다고 나섰던 게다.

경제 위기 탈출을 위한 김정은의 공허한 비핵화 제스처를 트럼프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가 김정은과 끝 모를 대화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미국은 영국과의 독립전쟁 시 백악관이 불에 타는 모습을 보면서 국가 안보에 관한 한 ‘절대적인 안보’를 추구해 왔다. 비록 북한이 전략적 위협이 되지 않는 작은 나라라 해도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항이다. 즉,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ICBM이 본토에만 도달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지난해 김정은을 불러내 대(對)미 ICBM 개발 완성을 지연시켰다. 그리고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2차회담을 한 것이다.

둘째, 절대적인 안보는 타협될 수 없고 획득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북한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김정은만 ‘국제적 영웅’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이유는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과거 정부에 비해 현격하게 나은 비핵화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ICBM의 완전한 폐기만 달성해도 자신의 재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계산에서 였다. 트럼프가 툭하면 “북한은 1차회담 이후 더 이상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고 자화자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트럼프-김정은의 막바지 회담 결과가 완전한 비핵화로 나타나지 않는 한 정작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한국에는 득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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