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주변에 적이 많다. 'MB노믹스의 좌장'으로 불리는 그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물불을 가리지 않는 직설적 성격 탓도 있다. 그는 재정경제원 차관시절에도 한은에 전화를 걸어 '환율 협조'를 구했고, 삼성, LG, 현대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과 연결되는 핫라인도 운영했다.

"환율은 대외적으로 나라경제를 지키는 주권"이라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경상수지를 단기간에 개선할 수 있는 즉효약은 환율이라는 중상주의 사고가 강한 그는 마른 벌판을 태우는 들불처럼 거침이 없다. 그래서 주변의 거부감도 강하고 때로는 손해도 보는 편이다. 그는 현 정부 집권초에도 고환율 정책으로 혼쭐이 났다.

취임 석달 째가 다가오는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다시 뜨거운 감자다. 산은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를 합쳐 대형은행을 육성하겠다는 메가뱅크론이 한국사회를 들쑤시고 있다. 지난 3월14일 취임식을 한 이후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강 회장을 중심으로 한국 금융산업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반발은 거세다. "메가뱅크는 금융의 4대강 사업"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온다. 반대수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3일 오전, 금융경제연구소가 주관한 국회 공청회는 이러한 반 강만수 기류를 엿보는 '창(窓)'이다. 민주당,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야 4당과 전국금융산업 노조는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강 회장이 산은지주에 부임한 후 쏘아올린 메가뱅크 구상이 숱한 갈등을 양산하며, 한국사회를 4대강 사업 당시와 비견되는 '혼돈'으로 몰아가는 양상이다. 산은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의 합병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구상 또한 '동력'을 잃고 점차 표류하는 기미가 역력하다.

강 회장에 대한 비판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면, 그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금융의 4대강 사업' 비판 직면

메가뱅크론에 가장 체계적 비판을 하고 있는 선봉장은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교수. 그는 "메가 뱅크론과 4대강 사업은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 쌍생아"라고 꼬집는다. 두 사업 모두 '규모의 경제'를 중시하는 1970년대 토건 방식의 사고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대형 은행이 지닌 문제를 조목조목 끄집어냈다.

일본 은행들이 그가 든 반면교사의 실례이다. 지난 1980년대 이후, 일본 주요 은행 5~6개는 욱일승천의 기세를 보이던 자국기업들과 동반성장하며 자산규모 기준으로 세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지만, 일본은 여전히 금융 후진국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반론이다. 질적인 성장이 중요하다는 논리다.

한국 관료들의 위험관리 수준에 의문부호를 다는 비판도 단골메뉴다. 초대형 은행은 고사하고, 지역에 기반을 둔 작은 저축은행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는 실력으로, 자산이 500조에 달하는 메가뱅크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것이 참가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양적 사고를 중시하는 꽉막힌 관료적 사고도 비판대상이다.

강 회장 리더십의 한계를 꼬집는 목소리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장본인중 하나로, 현정부 집권초 기획재정부장관을 지내며 고환율정책으로 나라경제를 뒤흔든 그가 '메가뱅크'를 다시 추진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되묻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그에게 비저너리(visionary)의 통찰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논리다.

이동걸 교수는 "우리금융지주, 산은금융지주를 합치면 연결자산기준으로 GDP의 40%를 넘는 초대형 은행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은행 하나가 무너지면 한국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다"며 "한국의 금융지주사들은 미국에서도 7~8위권 규모로 충분히 대형화돼있다"고 비판했다. 메가뱅크의 등장이 시스템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저축은행 사태로 '금감위'에도 이상기류

금융위원회에도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당초 이달 1일 금융위원회에 올라올 예정이던 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안 보고가 늦춰지고 있는 것. 금융위원회는 론스타의 대주주 적법성 여부를 놓고 한동안 뜸을 들이다 지난달 '판단 유보'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되풀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강 회장의 구상에 대한 반발의 파고가 예상보다 높은데다, 정치권에서도 반발이 확산되자 금융당국이 사태를 관망하며 좌고우면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달 15일 예정된 정례 금융위원회에서도 시행령 개정안 보고가 있을 지 여전히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주회사가 또 다른 지주회사를 인수할 때 95%이상 지분을 사도록 한 '지분규정'을 대폭 낮춘 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안 추진 논리는 명확하다. 유효경쟁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게 위원회측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이 특정인을 위해 법을 만드는 '위인설법(爲人設法)'이라는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자 좌고우면하고 있는 것.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는 "지주회사법은 지주회사가 또 다른 지주회사를 인수할 때 95% 이상 지분매입을 규정하고 있지만, 지분 매각을 거부하는 소액주주 등을 감안할 때 사실상 100%인수를 명문화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시행령 개정안은 법의 취지를 무력화하는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비판이다.

◇강 회장 마지막 승부수는

"승부의 분수령은 언제나 종반전 정치권의 향배에 달려 있었다. 정치권은 언제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무마라는 차선을 선호했고, 원칙과 정도보다는 타협과 포퓰리즘에 젖어왔다"

강만수 회장은 1970년 신라의 고도인 경주 세무서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국세청 세무서 생활이 본인과 맞지 않아 재무부로 옮긴 이후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세무 분야에 아직도 정통한 것도 이 때의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그래서일까. '선이 굵다'는 평가를 받는 강 회장은 꼼꼼하기도 하다는 전언이다.

'일일 점검!. 수시점검!'. 재경원 차관시절, 강 회장은 책상 밑에 이같은 문구가 쓰인 노란 용지를 넣어둔 채 스스로를 독려한 일화를 밝힌 적이 있다. 한국은행법 개정을 둘러싼 한은과 재경원의 오랜 투쟁을 지켜본 백전노장인 그는 자신의 저서인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에서 정치권의 이중적인 태도에 깊은 실망감을 피력한 바 있다.

문제는 야4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강 회장의 구상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메가뱅크를 금융권 3차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보는 은행권 노조의 반발도 부담거리이다. 산업은행 내부에서도 탐탁치 않아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노동조합은 '독자 생존론'을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형 투자은행에 승부수를 걸겠다는 입장이다.

집권 후반기인 현정부의 힘이 예전만 못한 것도 부담거리다. 저축은행 사태도 빌미가 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는 집권초 속전속결로 임하지 않을 경우 좌초하기 쉽다는 것은 참여정부 한전 민영화가 남긴 교훈이다. 내년은 총선과 대선이 잇달아 펼쳐지는 해이다. 강 회장의 입장에서는 꽉 움켜쥔 손바닥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는 형국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강 회장은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인연이 깊다. 강 회장이 재경원 차관으로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호출한 관료가 바로 외화자금과장이던 김석동 위원장이다. "6월 말까지는 500억 달러까지 외환 보유고를 늘리고, 원달러 환율도 가능한 한 빨리 920원까지 올리라고 지시했다"는게 그의 회고이다.

이달 15일, 금융위원회의 정례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안 관련 보고가 이날 회의에 올라 올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현실적으로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강 회장이 우리금융지주를 인수할 길은 막막해진다. 정부는 오는 29일까지 투자의향서를 받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1차 인수후보군인 예비입찰 참가자를 정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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