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동산 회사 ‘땅장사’에 놀아났나

제주도 서귀포시 동홍로에 위치한 제주녹지국제병원. (사진-뉴시스)
제주도 서귀포시 동홍로에 위치한 제주녹지국제병원. (사진-뉴시스)

[일요서울|김은경 기자] 녹지국제병원 개원 허가를 둘러싼 잡음이 지속되고 있다. 녹지병원은 지난해 말 국내 첫 외국계 영리병원으로 개원 허가를 받았지만, 법정 기한까지 문을 열지 않으면서 사실상 허가 취소 수순을 밟게 됐다. 녹지병원은 설립 초기부터 의료 공공성 훼손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병원 운영 경험이 전무한 부동산 회사가 땅 장사를 하기 위해 첫 영리병원 허가권을 움켜쥔 것이라는 의혹도 일었다. 제주도가 뒤늦게 청문을 실시하며 허가 취소 절차에 돌입한다고 밝혔지만 행정소송 결과에 따라 이 시도가 물거품이 될 수 있어 보여주기 식 청문회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행정소송’ 관건…보여주기 식 청문회 될까
“사태 원인 제공, 김대중 정부 잘못 만든 법 탓” 

녹지병원이 개설허가 취소 절차에 돌입했지만 지루한 소송전과 막대한 뒷처리 비용까지, 사실상 제주도의 골칫덩이가 될 전망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5일부터 청문 주재자를 선정하고 처분사전통지서 교부하는 등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전 청문’ 진행을 위한 절차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녹지병원 측이 청문에 참석하지 않아도 법에 따라 절차가 진행되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 달 전후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안동우 정무부지사는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고 “녹지국제병원은 지난해 12월 5일 조건부 개설 허가를 받은 뒤 의료법에 따른 개원 기한인 3개월이 지난 오늘까지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시작 준비를 하지 않아 개원 기한이 만료됐다”고 발표했다.

이어 “녹지국제병원 측의 개원 기간 연장 요청을 승인하지 않는 이유와 지난달 27일 있었던 개원 준비상황 현장 점검 기피행위가 의료법 위반임을 알리는 공문도 각각 발송했다”며 “모기업 녹지그룹은 사업 파트너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향후 사업 방안을 논의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개설 허가, 누가 내줬나

녹지병원 논란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과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르면 제주도 내 외국인 또는 외국인이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한 법인 등이 영리병원을 설립하려면 보건복지부장관의 승인과 도지사의 개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국 부동산개발회사 녹지그룹의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는 지난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 당시 보건복지부로부터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 승인을 받았다.

이후 사업자는 총 778억 원을 투자해 지난 2017년 7월 서귀포 헬스케어타운 내 2만8163㎡ 부지에 지상 3층~지하 1층, 47개 병상 규모로 병원을 준공하고 다음 달인 8월 제주도에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를 신청했다.

제주도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꾸려 지난 2017년 11월 1일부터 12월 26일까지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여부 심사를 거쳤다. 당시 심의위는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조건으로 허가를 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국내 첫 영리병원의 개설 허가 심사가 시작되자 제주지역을 비롯해 전국 의료·시민사회단체가 건강보험 체계의 근간을 흔들고 의료 공공성의 훼손을 초래할 것이라 주장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조건부 개설’, 화 불렀다

하지만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해 12월 5일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한 ‘조건부 개설 허가’ 결정을 발표했다. 원 지사는 “국가적 과제인 경제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한편 감소세로 돌아선 관광산업의 재도약, 건전한 외국인투자자본 보호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공공의료체계 근간 유지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시민사회 단체는 이 같은 결정을 즉각 규탄하고 나섰다. 같은 날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는 제주도청 앞에서 “오늘을 숙의 민주주의를 파괴한 원 지사의 퇴진을 촉구하는 첫날로 삼겠다.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도 “영리병원의 사업주체로 알려진 녹지그룹은 병원 운영 경험이 전무한 중국 땅장사 기업이다. 이런 부동산 투자 기업이 국내 첫 영리병원 허가권을 움켜쥐었다”고 비판했다.

결국 사태는 소송전으로 치달았다. 사업자인 녹지제주헬스케어유한회사는 조건부 허가 결정을 두고 지난달 14일 제주지방법원에 “진료 대상자를 외국인 의료 관광객으로 한정하는 것은 위법하다”라며 처분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내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은 진료 요청을 하는 환자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제주도는 “사업자가 지난 2015년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외국인 의료관광객 대상 의료서비스 제공’으로 명시했다. 이에 따라 ‘내국인을 대상으로 진료하지 않더라도 의료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복지부의 유권 해석도 받아놓은 상태”라고 맞대응했다.

하지만 행정소송 결과에 따라 허가 취소 시도 자체가 무효화 될 수 있어 ‘보여주기 식 청문회’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사태를 이렇게 만든 원희룡 지사가 결자해지해야 한다. 단순히 청문 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행정소송에서 지면 끝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다. 지금은 여론에 떠밀려 청문을 시도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정부와 국회 책임론도 거론됐다. 정 정책국장은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헬스케어타운 사업 주체인 JDC 대표이사가 7개월째 공석이다. 당시 의료 네트워크를 하겠다는 협약만으로 보건복지부 승인을 받았던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그는 민주당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며 “관련법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말에 최초로 영리병원 경제자유구역에 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됐고, 내국인 진료까지 할 수 있게 해주는 법은 노무현 정부 말에 통과됐다. 민주당이 사태에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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