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는 1만 원 많게는 20만 원까지

강의 암거래
강의 암거래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20191학기 개강을 맞은 대학가에서는 어김없이 강의 암시장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기 과목이나 필수 과목에 학생들이 몰리는 점을 악용해 불필요한 과목을 수강신청한 후 신청에 실패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적게는 1만 원에서는 많게는 10만 원 이상의 돈을 받고 강의를 판매하고 있는 것. 대학 커뮤니티어플리케이션(이하 앱)SNS 등을 중심으로 강의 매매 행위가 활성화되면서 악의적인 선점이 더욱 증가하는 추세다.

수강 신청을 돈벌이 수단으로···거래 방식 치밀

개인거래라 적발도 쉽지 않아···대책 마련 시급

개강 철만 되면 명절 열차표나 이벤트, 유명 가수 콘서트 표 예매 못지않게 전국 대학생들의 클릭 전쟁이 시작된다. 바로 수강신청 전쟁인 것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수업을 듣거나 인기 강의를 듣기 위한 선착순 경쟁을 벌이는 것이지만 언제부턴가 돈을 주고 강의를 사고파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대학 커뮤니티SNS에는 “OOO 강의 삽니다”, “OOO 인강 팔아요. 쪽지주세요”, “OOO 3만 원에 팔아요”, “OOO 교수 강의 팝니다등의 암거래 글이 쇄도한다.

거래되는 강의들은 이른바 꿀강의로 불리는 과목들이 많다. 학점을 후하게 주는 교수의 강의나 출석을 확인하지 않는 교수의 수업, 정원이 적은 필수 과목, 온라인 강의 등이다. 대체로 과목당 3~5만 원 수준이지만 인기가 많은 강의는 20만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버린다표현은 무엇?

전국 모든 대학에서는 수강 신청정정삭제 등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거래 방법도 비교적 쉽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커뮤니티 댓글,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 메신저, 대학 커뮤니티 앱 등을 통해 연락을 한 뒤 특정 시간을 정하고 수강신청 사이트에 접속해 판매자가 과목을 삭제하면 곧바로 구매자가 빈자리를 신청하는 방식이다. 거래 비용은 일종의 취소 수수료명목인 셈이다.

서울에 위치한 4년제 대학에 다니고 있는 A(21)씨는 우리 과 전공 수강신청이 유명 가수 티켓팅 만큼이나 어려워서 수강신청이 끝나면 커뮤니티 앱에 전공 구합니다’, ‘전공 교환하실 분등의 글이 올라온다면서 전공이나 필수 교양 과목 등은 4~5만 원 정도에 거래된다. 그러나 거래하는 방식이 정확한 루트가 아니라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판매하는 사람이 과목을 삭제하면 사는 사람이 그 과목을 재빨리 신청해야 하는데 중간에 다른 사람이 낚아채, 구매자가 돈은 줘야하지만 과목은 못 받고 하는 상황도 몇 번 봤다고 설명했다.

판매자 사이에서는 버린다는 표현도 쓰인다. 판매를 하려고 수강을 신청했으나 구매자가 없어 삭제해버리는 방식을 말한다. 이러한 행위로 뒤늦게 해당 강의를 원하는 학생이 수강 신청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긴 하지만 애초에 강의를 원했던 학생은 이미 수강 기회를 박탈당한 셈이다.

대학 커뮤니티 앱 화면 캡처
대학 커뮤니티 앱 화면 캡처

대학교

막을 방법 없어

매년 개강 시기 때마다 벌어지는 일이지만 사실상 학교에서도 막을 방법이 없다. 거래를 제재할 만한 법적 근거는 물론 만약 거래 사실이 발각되더라도 처벌도 불가능하다. 개인적인 일 때문에 강의를 교환하려 했다고 해명하면 어긋난 욕심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강의 매매 금지 조항을 학사 규칙에 넣었지만 개인적으로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증거를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강의를 사는 대학생 중 대다수는 졸업을 위해 특정 학점을 채워야 하거나 졸업을 위해 특정 강의를 꼭 들어야 하는 학생이다.

강의를 구매한 대학생 B(24)씨는 전공은 사실 막 학기가 되면 교수님들이 채워주는 경우가 많아 교양 과목을 많이 산다. 이수학점을 채워야하는데 교양도 필수이기 때문이라며 “4학년이 되면서 취업부담이 크기 때문에 이왕이면 부담이 없고 학점 받기 쉬운 과목을 듣고 싶어 8만 원을 거리낌 없이 지불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C(23)씨는 대학이 돈을 주고 학점을 사고파는 시장으로 전락해버렸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이어 강의 매매 행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본인한테 필요 없는 인기과목들을 선점하게 된다는 점이다. 수요와 공급을 떠나, 매매가 활성화되면 악의적인 선점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며 일종의 사재기나 다름없다. 강의를 돈을 버는 수단으로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위치한 한 대학 관계자는 이러한 실태 때문에 일부 대학에서는 심야 시간에는 수강신청 홈페이지 접속을 막아둔다면서 여러 학생들에게 들어보니 실제 거래는 SNS 계정을 통해 거래를 한다고 하더라.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는 한 명이 메시지를 삭제하면 없어지는 구조라 증거 삭제도 쉬워 적발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최대한 대처방안을 마련 중이지만 개인적인 거래다 보니 모든 거래를 대학에서 막기는 어렵다. 강의 매매 자체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범법행위라는 점을 학생들이 인식해야한다. 학생들의 자제가 필요한 실정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일부 대학에서는 수강신청을 선착순 방식이 아닌 마일리지 제도로 변경하기도 했다. 원하는 강의에 더 많은 마일리지를 배분해 신청하는 방법이다. 학교는 마일리지가 높은 학생순으로 강의 수강 자격을 준다.

선착순 신청이 아니라 강의를 사고파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강의 선택의 제약이 많다는 학생들의 불만은 여전한 형국이다.

매년 사활을 건 수강신청 전쟁이 지속되면서 강의 암거래도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다. 여러 대학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규제에 나섰지만 암거래 근절은 쉽지 않다. 심도 있는 논의와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추진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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