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최근 5·18 민주화운동을 비방·왜곡·날조하거나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처벌하도록 하는 이른바 ‘5·18 왜곡 방지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당 이철희 의원의 대표 발의로 제출된 이 특별법 개정안에는 5·18 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5·18에 대해선 '1979년 12월12일과 1980년 5월18일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항해 시민들이 전개한 민주화운동'으로 정의했다.

그러니까 이 같은 정의에 반하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감방으로 보내겠다는 말이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 하여 이를 중범죄로 다스리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모든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왜곡 방지법’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5·18 왜곡 방지법’이 나오자 금방 ‘6·25 왜곡 방지법’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질 않은가.

박완수 한국당 의원이 현행 법률은 6·25전쟁에 대해 전투가 시작된 시기와 전투 기간 등만 규정하고 있어 전쟁 유발 주체 등에 대한 왜곡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6·25 왜곡 방지법’을 대표 발의하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에는 6·25를 '북한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인 38도선을 넘어 불법 남침함으로서 일어난 전투'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를 왜곡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발언·연설·전시 등을 하는 행위의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도 있다. 
 
예를 들어, “6·25는 북침”이라고 주장할 경우 중범죄가 되는 셈이다. ‘5·18 왜곡 방지법’과 다를 게 하나 없다.  
 
박 의원은 개정안을 통해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에서는 6·25 전쟁의 원인에 대해 대한민국에 의한 북침이라는 주장이 거론되고 있고 6·25 참전 유공자와 유가족 등에 대한 심각한 모욕과 비방이 유포된 사례도 빈번하다"라며 "200만 명의 6·25 전쟁 피해자와 그 유가족 등의 명예를 지키려는 것"이라고 했다.
 
5·18 민주화운동과 6·25 등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못하도록 강제하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모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 방지법’이 만들어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천안함 폭침’ ‘세월호 침몰’은 물론이고 ‘4·3 제주사건’ ‘여순사건’에 대한 왜곡 방지법도 발의되지 말라는 법 없다. ‘5·16’과 ‘4·19’의 정의를 왜곡하면 철장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공연히 구체적인 사실이나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인 ‘명예훼손죄’가 못미더워서 ‘왜곡 방지법’까지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해하지 마시라. 필자는 지금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 방지법’의 양산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양산될 경우 개인과 단체에 대한 ‘왜곡 방지법’도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 왜곡 방지법’을 비롯해 ‘남성·여성 왜곡 방지법’ ‘20대 비하 방지법’ ‘노인 폄하 방지법’ 등 무수히 많은 방지법들이 발의될 수 있다는 말이다.
 
노벨상을 수상하며 ‘DNA(유전자)의 아버지’로 불린 미국의 천재 과학자 제임스 왓슨이 얼마 전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가 평생 몸담은 연구소의 명예직마저 박탈당했다. 그는 법에 의해 처벌되지 않았다. 사회가 그를 용서하지 않고 추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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