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붉은 꽃은 없다고 했던가.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이해찬 대표가 당선되었을 때, 여당 내에서는 우려만큼 기대도 컸다. 이 대표가 강력한 카리스마로 당을 장악하고, 당·정·청 삼각관계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노무현 정부 시절 실세 총리의 존재감이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다.

이 대표가 총리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이 대표는 문 대통령을 ‘문실장’이라고 호칭했었고, 친노-친문 의원들 중에 이 대표를 어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문 대통령조차도 이 대표를 “어느 정도는 어려워한다”고 한다. 관계가 이렇다 보니 당청관계의 주도권이 자연스럽게 당으로 올 수밖에 없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이 대표 취임 초기 여당은 종합부동산세 강화나 카드 수수료 인하 정책처럼 기득권과 관료들의 저항이 강한 정책 도입을 주도했다. 민주당 역사에서 DJ 총재시절 이후 지금까지 이런 당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당에 질서와 규율이 잡혔다. 열린우리당 시절의 108번뇌도 없고,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의 내부총질도 보기 어려워졌다.

대통령 지지율에 편승해서 승승장구하던 착시효과는 서서히 걷히고 있다. 어느덧 집권 3년차, 여당이 안 보인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후반대에 묶이면서 “여당은 뭐 하고 있는 거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여당이 한 일이라고는 드루킹 특검 덜컥 합의해서 김경수 경남지사를 감옥 보낸 것뿐 아니냐는 자조 어린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당 지지도가 29.8%로 국정농단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여당이 제 몫을 못하는 탓도 크다. 민주당은 38.6%로 양당의 차이는 10% 이내로 좁혀졌다. 내년 4월 총선 무렵이면 여야는 더 가까운 진지에서 근접전, 백병전을 벌이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한때 50% 가깝던 여당의 지지도를 버텨주던 재료는 문 대통령의 인기와 우경화하며 헛발질하는 한국당, 두 가지뿐이었다. 둘 다 외부 요인이고 내부의 호재는 보이지 않는다. 강골 이 대표의 카리스마는 미세먼지처럼 뿌옇게 당 안팎을 떠다니고만 있다. 의원들은 대부분 침묵하고 있고, 눈에 띄는 의원들 몇몇은 자기주장만 앞세우는 꼰대로 비춰지고 있다.

위기는 미세먼지처럼 소리 없이 목을 조여 온다. 대통령의 인기가 당을 떠받치고 있는 옹색한 상황에서 북미정상회담마저 꼬여버렸다. 20대 남성유권자들은 페미 이슈 탓에, 부산경남 유권자들은 대통령에 대한 실망으로, 중장년층 유권자들은 경제 난맥 탓에 등을 돌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다음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오지 말란 법이 없다.

민주화 이후 어느 정당도 대선, 지선, 총선을 연거푸 이긴 경우는 없었다. 청와대 뒤꽁무니나 쫓아다니고, 대통령 덕이나 보려는 여당을 지지할 유권자도 없다. 대통령이 막다른 골목에 놓였을 때, 마블 영화의 히어로처럼 나타날 여당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집권 3년 차로 접어들며 관료, 기득권 손에 들어가고 있는 권력을 되찾아 올 여당이면 충분하다.

여당은 국민들이 집권여당과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한 뜻을 되새겨야 한다. 촛불시위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옹색하게 권력의 곁불을 쬐려고만 하지 말고, 앞에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뜻을 펼치는 여당이 필요하다. 그게 국민의 뜻이고, 현 정권을 위한 길이다.

<이무진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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