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오럴 히스토리] - 정태익 편
“상대국 정상 기분 잘 맞추면 회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어”

조지 부시 美 전 대통령 [뉴시스]
조지 부시 美 전 대통령 [뉴시스]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6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정태익 전 주러대사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청와대 첫 성명이 발표되고 1주일 지나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이 방한했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서 한·일 정상회담 준비도 했는데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 어떤 의제가 논의되었나? 또 당시에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어떤 외교안보 현안이 있었나?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의 한국 정상 방문은 인상적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교의 최우선 중점을 남북관계와 한·일 관계에 둔 분이다. 고이즈미 수상은 김대중 대통령이 도쿄에서 납치됐을 때 정치에 입문했고 납치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정치가로 성장을 해 수상이 됐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삶의 역정과 정치적인 행적에 대해 이해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며 깊숙이 절을 하면서 회담을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은 이웃 나라로서 제일 가까운 지리적인 조건은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었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며, 양국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대부분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일제 식민지배라는 불행하고 껄끄러웠던 약 100년간의 역사가 장구한 기간 동안의 선림관계를 뒤엎고 모든 관계를 계속 악화시키고 있다”면서 “이는 양국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으니 해소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몇 가지 현안이 해결돼야 한다”는 논조로 대답을 펼쳤다. 이어서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달라서 반목관계가 계속 확대·재생산되니 현안인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대안을 찾아보자”고 언급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인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나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것은 존중받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전범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다는 것이 문제다”라고 하면서 분사 문제를 얘기했다. 역사교육 문제와 관련해 폴란드의 사례를 보면, 양국 학자들이 모여 공통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잘 해결했다는 선례가 있으니까 우리도 좋은 방안을 도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업 문제도 언급했다. 꽁치를 베링해에서 잡는 문제와 관련한 한·일 간 쟁점이 있었다. 고이즈미 수상은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을 평가한다고 하고 귀국해서 면밀히 검토한 후 해결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양 정상은 1988년 맺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한·일 관계를 이끌어나가야 된다고 천명했다. 고이즈미 수상은 김대중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을 연구해서 상하이에서 만날 때 답을 주겠다고 했다.

-2001년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제9차 APEC 정상회담이 열렸다. APEC에서의 첫 번째 양자 정상회담이 한·미 정상회담이었는데, 그 당시 상하이 한·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무엇이었고, 회담 분위기는 어땠나?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모두 상하이회담은 분수령이 됐다. 2001년 3월에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서 가진 정상회담은 재앙에 가까운 실패한 정상회담으로 언론에서 평가됐다. 2001년 1월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미·소 간 체결된 탄도요격미사일제한조약 조항에 관련된 러시아의 입장을 우리가 지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공동 성명서를 냈다. 미국은 ABM 합의가 미국의 전략적 핵정책을 훼손한다고 보고 수정하려는 입장이었는데, 한국이 이를 간과한 처사를 했기 때문에 워싱턴의 심기가 불편하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서 처음으로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대화가 순조롭지 못하고 껄끄럽게 됐다. 부시 대통령이 기자회견 중 말을 끊고 김대중 대통령을 “this man(이 사람)”이라고 지칭해, 물의를 일으켜 언론은 회담이 잘 진행되지 못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것 때문에 ABM 조항을 포함시킨 결제 라인에 있었던 외교부 간부들이 모두 자리를 내놓거나 좌천됐다.

-외교부 입장에선 재앙이었겠다.

▲한마디로 재앙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상하이 APEC 정상회담 시 부시 대통령과 개별회담을 하게 됐는데 9·11테러 사건이 난 상황에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첫 번째 회담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은 것을 깊이 반성하고 대화 방식을 바꿨다. 김대중 대통령은 3월 회담에서 북한에 대해 길게 설명한 것이 역효과가 났으니 이번에 부시 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북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우선 김대중 대통령은 모든 발언에서 부시 대통령의 반테러 활동에 대한 칭찬을 했다. 상하이 APEC 정상회담에 오기 전에 부시 대통령이 모스크를 방문해서 아랍 국가와 대결보다는 화합을 지향한다는 요지로 연설했는데 그것을 언급한 거다.

-모스크라면 이슬람 사원을 말하나?

▲그렇다.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이슬람 사원을 방문한 용기’와 ‘이슬람과 테러 행위를 분리하는 연설 내용’을 높게 평가했다. 이어서 우리도 테러 행위를 규탄하고 미국의 반테러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하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기분이 좋아진 부시 대통령은 감사 표시를 하고 갑자기 “좋은 소식이 있다”고 말을 꺼냈다. 당시 소포로 배달되는 탄저균 테러가 발생해 화제였는데, “탄저균은 치료가 가능하다”며 우려하지 않아도 되니 이것이 좋은 소식이라는 거다. 결과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기분을 잘 맞춰 회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고, 회담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APEC 정상회담은 본질적으로 경제회담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문제는 다루지 않는 것이 관례다. 9·11사태 때문에 처음으로 정치 문제인 테러행위에 대해 규탄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상하이에서 처음 문제가 거론됐는데 결의문 조항을 김대중 대통령이 주도해서 채택했다. 정치적인 센스가 있는 김대중 대통령이 발의해 상하이 공동성명서 1항에 포함됐다. 이점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높이 평가하고 고맙게 생각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관한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부시 대통령이 먼저 “그런데 김정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첫 대답은 “김정일을 믿지 않는다”였다. 부시 대통령이 깜짝 놀랐다. 이어서 김대중 대통령은 “내가 김정일과 접촉하고 포용정책을 펴는 것은, 미국역대 대통령들처럼 실용주의에 입각해 전략적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나의 생각은 1972년 닉슨 대통령이 마오쩌둥을 만났을 때의 협상전략과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닉슨 대통령이 마오쩌둥을 만날 당시에 신뢰가 있어 만난 거냐? 전략적인 사고에 따라 만난 거 아니냐?”고 되물으며, “나도 똑같은 판단으로 김정일을 만났다. 나는 순진한 사람이 아니다. 김정일에 대한 신뢰가 없지만 접촉함으로써 북한에 대해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북한에 접근하려 한다”고 얘기했다. 이어서 “내가 길을 트게 되면, 부시 대통령과 함께 북한에 가려고 한다. 만약 당신이 북한에 같이 간다면 북한의 변화가 쉽게 일어날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부시 대통령이 그 발언에 공감하고 “각하의 말이 맞다”고 답을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지금부터 당신이 추구하는 철학에 의해서 추진하는 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하겠다”고 화답하여 회담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됐다. 그때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것 같다. 부시 대통령이 2002년 1월 방한하여 도라산 철도역과 휴전선을 방문하고, 한국 입장을 전적으로 확실하게 지지하게 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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