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의 정치인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 말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새로운 세계질서를 탄생시키기 위해 ‘14개 원칙’을 제시했다. 국제적 분쟁을 유발하는 악의 근원을 모두 뽑겠다는 것이 핵심내용이었다.

그러나 윌슨의 이상주의는 실패로 끝났다. 비현실ㆍ아집ㆍ독선의 뉘앙스가 강했기 때문이다. 이는 정적들과의 소통 거부로 이어졌다. 그 결과 미국 상원은 전후 국제질서의 근간이 될 베르사유 조약의 비준을 거부했다. 윌슨의 이상주의는 그렇게 끝났고 20년 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1949년부터 1976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로 묘사되고 있는 마오쩌뚱도 이상주의자였다.

경제에 무지한 채 경제건설을 계급투쟁 식으로 추진한 그는 중국을 이른 시간 안에 세계 선진 강국으로 만들려는 강한 민족주의 비전과 고집, 과한 자기 확신, 지나친 도덕주의와 유토피아 의식 등으로 인해 중국을 파탄으로 몰고 갔다.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햇볕정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북한체제를 바꿀 수 있다고 믿은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배고픈 사람은 배를 채워주어야 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미국과의 대화용이며 일본의 핵무장을 두려워하는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절대적으로 반대할 것”이라며 햇볕정책에 반신반의하고 있던 미국을 설득했다.

결론적으로 DJ는 북한에 속았다. 북한 김씨 일가는 굶주리는 북한 주민의 배를 채워주는 대신 핵무기 개발에 올인했다. 결국 DJ는 ‘햇볕정책’에 의한 체제변화라는 ‘무지개’만 쫓다가 오히려 북한을 핵무장 시켜주고 말았다.

문재인 정권도 이상주의자들로 차있어 보인다.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이상주의적 당위론을 주장하는 정책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북정책만 해도 그렇다. 문 정권은 ‘햇볕정책 2.0’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내면서 남북경협을 통한 한반도 균형발전과 경제통합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남북통일을 꾀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통일이란 한쪽 체제가 무너져야 이뤄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적 발상이다. 독일 통일이 그랬고 베트남 통일도 그랬다. 전자는 동독 체제가 먼저 무너졌기에 평화적으로 이뤄졌고, 후자는 무력으로 한쪽 체제를 무너뜨렸기에 달성됐다. 따라서 한쪽 체제의 붕괴가 없는데 한반도가 통일되리라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이 실패한 정책들을 고수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됐는데도 남북경협을 부르짖고 있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무지개’라고 고백한 이상주의자를 다시 중용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지표를 바라보고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하는데 고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현실은 더욱 도외시하고 탁상공론만 난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따른 고통은 오롯이 국민들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부딪쳤을 때는 현실과 이상의 타협이라도 기대할 수 있지만, 이상주의와 이상주의가 맞닥뜨리면 대안이 없다.

지금의 당청 관계가 그렇지 않은가. 당청이 상호 보완의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둘 다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이상주의적 특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정치는 비정한 현실의 세계다. 강한 국가만이 살아남고, 약한 국가는 없어지는 약육강식의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국제정치는 언제나 난세이고, 난세에는 현실주의가 기본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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