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 총선용 ‘이이제황’ 전략 시도?
친이계 좌장 이재오, 당대표 출마한 황교안 비판 

보석 석방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 [뉴시스]
보석 석방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다스 비자금 횡령 및 삼성 뇌물 등 혐의로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이명박(78) 전 대통령이 보석으로 지난 6일 석방됐다. 지난해 3월 22일 구속된 지 349일 만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48분께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와 차에 올라탄 뒤 창문을 열어 지지자들을 향해 잠시 손을 흔든 뒤 곧바로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으로 향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 석방을 바라보는 국민들도 찬반이 엇갈린다. 검찰도 반발을 자제하고 있지만 불만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 의혹을 파헤쳐 온 시사인 주진우 기자는 지난 6일 개인 트위터를 통해 “탈옥 축하드려요”라며 “탈모, 코골이로 석방되는 사람은 역사상 처음일 거예요. 역시 최고세요. 곧 들어가실 거니 몸조리 잘 하세요”라며 이 전 대통령 석방을 비꼬았다.

친정부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네티즌들이 이 전 대통령을 보석으로 석방한 판사의 사진을 공개하며 비방하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의 보석 석방에 대한 고심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구속 만기 안에
판결 선고 어려워

 

재판부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 청구를 허가한 표면적인 이유는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구속 기간이 다음 달 9일 자정을 기준으로 만료되는 점을 고려할 때 이전까지 심리를 마무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지난 6일 “최근 항소심 재판부가 새로 구성돼 구속만기일에 판결을 선고한다고 가정해도 저희 재판부에게는 고작 43일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며 “종전 재판부가 증인신문을 마치지 못한 증인 숫자를 감안할 때 항소심 구속만기인 4월 8일까지 충실한 항소심 심리를 끝내고 판결을 선고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 측은 1심과 달리 측근들을 대거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출석하지 않아 증인신문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보석을 허가하기 위해 ▲보증금 10억 원 납입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 ▲피고인 배우자와 직계혈족, 혈족배우자, 변호인 이외의 접견 및 통신 제한(이메일, SNS 포함) ▲매주 화요일 오후 2시까지 지난주의 시간활동내역 보고 등을 조건으로 걸었다.

건강 문제를 이유로 서울대병원을 주거지로 해 달라는 이 전 대통령 측 병보석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거지는 주소지로만 제한하고 주거지 밖으로 외출도 제한한다”며 “만일 피고인이 진료를 받을 필요가 있으면 그때마다 사유와 진료할 병을 기재해 법원 허가를 받고 진료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피고인은 보석 후에는 법원, 검찰, 관할경찰서장 등 이중 삼중의 엄격한 감시와 감독을 받게 된다”며 “특히 법원에서 주심 판사 주재로 정기적으로 검찰, 변호사, 관할 경찰서 담당자 등이 참석하는 보석 조건 준수 여부 점검회의를 통해 피고인의 보석 조건 준수 여부를 엄정하게 감독하겠다”고 강조했다.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때, 소환을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는 경우 등에는 보석이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보석 조건을 위반하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나 20일 이내 감치 대상이다. 

이 전 대통령은 1992~2007년 다스를 실소유하면서 비자금 약 339억 원을 조성(횡령)하고, 삼성에 BBK 투자금 회수 관련 다스 소송비 67억7000여만 원을 대납하게 하는 등 16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1심은 지난해 10월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자이고 비자금 조성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며 7개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징역 15년에 벌금 130억 원, 추징금 82억 원을 선고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뉴시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뉴시스]

친박 색채 짙은 황교안호
반친황계 결집?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 허가에 대해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고령인 이 전 대통령이 혹시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경우 현 정부가 그 비판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부담을 피하고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재판을 위한 현실적인 조치라는 얘기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황교안 체제로 새롭게 출발한 자유한국당을 흔들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고 있다. 집권 여당과 청와대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친이계를 이용해 친황계의 결집을 막으려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신임 황교안 당대표가 선출되고 나서 자유한국당은 ‘친황’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지난 4일 황 대표는 주요 당직자를 임명하면서 ‘황교안호’의 시동을 걸었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당 살림살이를 총괄하고 공천 실무를 주도할 사무총장에 4선의 한선교 의원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재선의 이헌승 의원을 임명했다. 

한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던 17대 국회에서 대변인을 지냈다. 이 의원은 김무성 의원 보좌관 출신이긴 하나, 17대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후보 유세지원단 수행실장 등을 지냈다.

초선의 추경호 의원은 전략기획부총장에 임명됐다. 추 의원은 황 대표가 국무총리시절 국무조정실장으로 호흡을 맞췄던 인사다. 

민경욱·전희경 의원은 당 대변인 역할을 맡는다. 민 의원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 전 의원은 당 대변인을 맡은 바 있다. 

중앙연수원장에는 박근혜 정부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초선의 정종섭 의원을 임명했다. 이명수 의원은 인재영입위원장에, 송희경 의원은 중앙여성위원장을 맡게 됐다.

비박계 및 ‘복당파’ 의원들과 계파색이 옅은 인사들도 이름을 올리긴 했다. 이은재 의원과 강석호 의원은 각각 대외협력위원장, 재외동포위원장에, 이진복 의원은 상임특보단장 보직을 담당한다. 임이자 의원은 노동위원장, 김정재 의원은 재해대책위원장, 비례대표인 김성태 의원은 디지털정당위원장을 맡게 됐다. 청년 최고위원인 신보라 의원은 당연직으로 중앙청년위원장이 됐다. 

황 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비박계 인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비박계가 무슨 말씀인가”라며 “비박계 이런 것 없이 나라를 생각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분들이 모여 계신다”라고 답했다. 

 

친박-친이의 악연
2008년 ‘공천 숙청’

 

사무총장에 임명된 한선교 의원은 친이계 의원들과 악연이 있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이 전 대통령과 친이계 의원들은 친박계 의원들을 상대로 이른바 ‘공천 숙청’을 단행했다. 한 의원도 포함됐다. 당시 한 의원은 이 숙청에 반발해 경기 용인 수지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역전됐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친이계와 비박계는 오세훈 전 시장을 밀었다. 캠프 총괄본부장을 밭았던 박종희 전 의원은 친박계지만 기획본부장을 맡았던 권택기 전 의원, 본부장 현경병 전 의원 등은 친이계로 분류된다.

이 밖에 오 전 시장과 친한 권영진 대구시장도 친이계 인사로 분류된다.

현재 자유한국당 내에 친이계 의원은 그 영향력이 미미하다. 지난해 3선 김영우 의원이 원내대표 선거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김 의원은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3선의 권성동 의원은 당에서 사개특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정치적인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 이른바 우파 세력에서는 ‘탄핵3적’으로 불리며 보수통합의 걸림돌로 지적받고 있는 상황이다. 

특이 권 의원은 강원랜드 채용 청탁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 구설에 휩싸였다. 그결과 권 의원은 지난해 12월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발표한 인적쇄신 명단에 포함됐다.

친이계 의원들의 세력 약화 속에 좌장격인 이재오 전 의원은 지난 1월 15일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한국당 입당 당시 “황 씨가 당대표에 출마한다는 것은 당의 역사를 거꾸로 쓰는 것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전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황 씨는 탄핵 정국에 중심에 있었다. 당은 이미 역사가 된 탄핵을 거꾸로 돌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한국당이라고  해서 개인의 자유가 역사에 반하는 것까지 용납한다면 이 당은 국민에게 미래를 약속 할 수 없다”며 “황 씨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당을 역사 뒤 편으로 거꾸로 끌고 가는 어떤 행위도 당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이어 “친박을 업고 당대표에 나오면 친이를 업고 당대표에 나올 수도 있다”며 “그러면 당은 수렁에 빠진다”고 했다. 

이 전 의원은 “당은 개인의 영달의 자리나 출세의 도구가 아니다. 당은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져야 한다. 당이 어려울 때 일수록 모두가 정도를 걷기를 바란다”고 쓴소리를 했다. 

친박계와 친이계의 악연은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정부와 여당의 입장에서는 호기다. 최근 20~30대 청년층 지지율이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전카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 석방의 배경을 두고 ‘이이제황(以李制黃)’ 전략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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