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환 목사가 9일 오후 별세했다. [뉴시스]
문동환 목사가 9일 오후 별세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군부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을 한 문동환(98) 목사가 9일 오후 소천했다.

고인은 1921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독립신문 기자로 일한 목사 문재린(1896~1985)과 여성운동가 김신묵(1895~1990)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목사 문익환(1918~1994)의 동생이다.

서울의 조선신학교(현 한신대)를 나온 고인은 웨스턴신학교, 프린스턴신학교를 거쳐 하트퍼드신학대학에서 종교교육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신학대학 기독교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울의 수도교회에서 목회했다. 1975년 한국신학대학에서 해직된 뒤 해직 교수·민주 인사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실험교회인 갈릴리교회를 공동 목회로 꾸렸다.

1961년 한신대 교수가 된 이래 군부독재에 맞서 해직·복직을 반복하며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왔다. 1976년 명동성당에서 긴급조치 철폐, 의회정치의 회복을 요구한 '3·1민주구국선언문' 사건으로 투옥돼 2년 가까이 복역했다. 감옥에서 민중신학에 입각한 민중운동에 천착했다. 동일방직·와이에이치 노조원의 투쟁을 지원하다 다시 옥고를 치렀다.

197910·26으로 유신정권이 막을 내리자 한국신학대학에 복직했다. 하지만 신군부의 등장으로 해직된다. 이후 미국으로 망명해 목회생활을 했다. 1985년 한국에 돌아와 한신대에 복직, 민주화 활동을 했다. 김대중(1924~2009)의 권유로 1988년 정치에 발을 들이고 평화민주당 부총재를 지냈다. 국회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91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뒤 미국에서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성서 연구에 주력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혜림(헤리엇 페이 핀치백), 아들 창근·태근, 딸 영혜·영미(이한열기념관 학예실장)씨가 있다. 영화배우 문성근(66)씨가 조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 12일 오전 8, 장지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02-2227-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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