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수석대변인" "먹튀정권" "한미동맹 별거" 등 민감 발언 쏟아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뉴시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 대변인'에 빗댄 연설이 청와대는 물론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나 원내대표의 '독설'은 두 달 만에 해소 국면을 맞은 정국을 다시 얼어붙게 만들었으나 당내 일각에서는 나 원내대표의 입장에서 잃은 것 보다는 얻은 게 더 많은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제1야당 원내 수장의 존재감을 되살리고 리더십 부재 논란도 일축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안보 실정을 작심한 듯 비판하면서 "김정은 수석대변인", "먹튀정권", "한미동맹 별거" 등 민감한 발언을 연이어 쏟아냈다.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은 위헌"이라는 나 원내대표의 발언에민주당 의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먹튀 정권, 욜로 정권, 막장 정권이란 이야기를 들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폄훼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항의했다. "진짜 비핵화라면 자유한국당도 초당적으로 돕겠다. 하지만 가짜 비핵화라면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대목에서는 여당 의원들의 실소나 야유가 흘러 나오기도 했다. 

"한·미간 엇박자가 점차 심해지고 있다", "한미 양국이 '별거' 수순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별거 상태가 언제 이혼이 될지 모른다" 등 한미 관계를 '별거', '이혼'으로 비유하며 동맹 균열을 부각시킬 땐 여당 의원들이 불쾌한 반응을 나타냈다.

민주당 의원들의 불만은 다음 대목에서 절정에 달했다. 나 원내대표가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하자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고성이 터져나왔고 일부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퇴장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단상 쪽으로 걸어가 사과를 요구하면서 민주당 이철희 원내수석부대표와 자유한국당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가 삿대질과 고성을 섞어가며 대치했다.

산발적으로 중단된 나 원내대표의 연설은 1시간만에 가까스로 마무리됐고, 민주당과 한국당의 희비는 본회의가 끝난 후 극명하게 엇갈렸다.

나 원내대표는 본회의장을 빠져 나오면서 미소를 띤 채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유한국당 다른 의원들도 승기를 잡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여당 측 강력 항의에 대해 "반대편의 이야기를 안 듣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며 도리어 역공했다.

반면 민주당 지도부는 나 원내대표에게 공식적으로 해당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국회 윤리위 제소로 엄포를 놓았다.

본회의 직후 열린 민주당의 긴급의원총회는 나 원내대표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대한민국 국가 원수에 대한 모독죄"라며 당 차원에서 "즉각 국회 윤리위에 회부하라"고 지시했고,홍 원내대표는 "더 이상 참을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며 "도를 넘은 것을 떠나 정말 용납할 수 없는 망언이었다"고 맹비난했다.

청와대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대통령에 대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나 대표의 발언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과 청와대의 반응을 두고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편 3월 임시국회에서 여당과 야3당이 선거제 개혁을 연결고리로 합세해 '4대1 구도'로 한국당이 수세에 몰리자, 나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연설에서 의도적으로 초강수를 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당내에서는 실질적으로 든든한 우군이 없는 나 원내대표가 강한 야성을 발휘해 '투사'로 변신하며 원내 동력의 결집을 시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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